미 진출 글로벌 톱5 초석…영국 언론 호평에 반전드라마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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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1년초, 전문가들은 현대차를 근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다. MK(정몽구 회장의 영문애칭)가 해외공장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특히 가장 큰 시장인 미국 상륙에 대한 우려가 컸다.

    당시 미국 시장의 경기침체와 산업수요의 감소를 전망하면서 현대차의 미국 진출과 판매계획이 고전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1980년대 캐나다에 진출했다 실패한 뒤 해외 진출에 소극적이었던 현대차가 ‘부르몽 악몽’을 떨쳐버리고 해외에서도 성공할지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
     
    하지만 우려는 기우(杞憂)였다. 앨라배마 공장건설을 결정지은 2002년 MK는 사업계획을 8%포인트 초과한 34만6000대의 판매실적을 올렸다. 기아차도 1994년 1만5000대에 머물던 실적이 동기에만 23만대라는 경이적인 미국내 판매를 기록했다.
     
    MK는 2002년 4월 앨라배마 공장 건설을 위해 첫 삽을 뜨던 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시장에서의 도전과 성공은 오랫동안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쌓아온 시장전략의 노하우가 이제는 흔들리지 않는 자산이 되어 현대·기아차를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만족감을 피력했다.  

    호랑이를 잡기위해 호랑이굴(미국)로 들어간 MK의 세계 시장 도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 ▲ ⓒ경향신문 광고 캡처
    ▲ ⓒ경향신문 광고 캡처


     
    ◆ 포니정신과 북미대륙 상륙작전

    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MK에 물려준 경영철학 중 가장 큰 유산은 우리 나라 최초의 독자 브랜드인 '포니의 정신'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다국적기업은 우리에게 수출길을 열어주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의 진정한 발전을 돕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협소한 국내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수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유일한 길이 우리 브랜드의 개발이라고 판단했다.

    MK는 그 정신을 잘 계승했고, 철저히 밀고나갔다. 특히 2002년 착공, 2005년 양산에 돌입해 글로벌 톱5의 초석이된 앨라배마 공장은 40여년의 짧은 역사를 갖고 있는 국내 자동차 업체가 세계 최대 자동차시장인 북미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글로벌 경쟁국으로 본격 진출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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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북미공장 태스크포스팀 총괄사장을 지낸 김동진 전 현대차 부회장은 "생산지가 아닌 소비지인 해외 선진국에 자동차 공장이 들어 선 것은 당시 큰 의미였다"며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가 국제화 될 수 있는 시금석이 되는 일대 전환점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와함께 2000년대 중반 시달려온 미국의 자동차 통상압력이 대폭 완화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점도 주목할 일이다. 현대정공 출신의 안병모 당시 기아차 미국법인장은 “앨라배마 주정부가 1억2800만달러의 대규모 지원과 20년간 법인세를, 10년간 재산세를 면제해주는 조건을 제시하자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앨라배마 공장은 자동차업계에서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하버리포트의 생산성 조사에서 북미 35개 공장 가운데 2010년부터 3년째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공장에서 '자동차 1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총 시간(HPV·hours per vehicle)'은 14.6이다. 한국 공장의 평균 HPV가 31.3이란 점을 감안하면 앨라배마 공장의 생산성이 얼마나 높은지 쉽게 알 수 있다.
     
    기아차는 2010년 2월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연산 3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공장을 세우고 순항중이다. 이를 기반으로 현대차 그룹은 해외 현지생산을 통해 2009년 국내 350만대, 해외 150만대 등 연간 500만대 이상의 생산규모를 갖춰 세계 5대 자동차 메이커로 급부상했다.

    ◆ 만리장성 넘어 유럽으로…

    중국 본토 입성은 2002년말이다. '베이징 현대기차'의 EF쏘나타 생산을 시작으로 대륙을 품은 현대·기아차에게 중국은 미래성장을 결정짓는 최대 승부처가 됐다.

    현대차는 중국 진출 11년 만인 지난해 10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현재 현대·기아차는 중국에서 10%대 점유율을 기록하며 폴크스바겐, 제너럴모터스(GM)와 3강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MK의 '현대속도'가 돋보인 시장으로 평가 받는다. 

    이처럼 순풍을 탄 배경에는 대만 화교출신인 설영흥 전 현대·기아차 중국사업 총괄 부회장의 역할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설 전 부회장의 중국내 탄탄한 네트워크는 1996년 6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MK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과의 회동을 성사시키면서 진가를 발휘했다. 현대차 진출을 위한 핵심 교두보를 만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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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K는 대중국 전략을 1600cc급 이하의 소형차 라인업으로 가져갔다. 내륙 저소득층을 주요 타깃으로 삼았다. 사실 베이징 현대는 처음에 자동차 판매 중심지인 상하이 등 연해지에서 판매망을 확보하려 했다. 하지만 대리점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내륙으로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현재 4공장이 유력한 충칭도 내륙이다.

    이같은 전략은 미국 리먼쇼크 직후 중국 시장에서 대형차대신 소형차 판매가 살아나면서 현대차는 날개를 달게 된다. 주력모델이 중국형 아반떼 '위에둥'이었다.

    만리장성을 넘은 MK는 2000년 초반부터 유럽 진출을 도모해왔다. 그는 현대·기아차가 세계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도약할 수 있느냐 여부는 유럽시장에서의 안착이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토요타 혼다 닛산과 같이 한수위인 매이커들이 포진해 있는데다, 소비자들의 자부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해프닝이 있다. 현대차가 유럽 진출 초기인 2004년 영국에서 받은 평가다. "액센트란 액시던트(Accident : 사고)를 의미하는가?(BBC방송)" 영국 언론의 호된 비판이 매정하기도 하지만, 당시 현대차는 치욕적인 평가에 와신상담(臥薪嘗膽)하게 된다. 

    5년뒤 상황은 반전된다. 2009년 현대차에 '사고차'란 오명을 붙인 영국 시장에서 기아차가, 2010년에는 현대차가 현지 권위있는 자동차전문지 AM(오토모티브 매지니먼트)이 주최한 '올해의 자동차 메이커'를 수상했다. 당시 이 상은 전년도에 렉서스와 스즈키가 수상한바 있어, 현대‧기아차에 대한 평가가 일본차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2009년 현대차의 약진은 폴크스바겐 르노같은 유럽 강자에게도 위협적일 정도였다. 경쟁사인 토요타는 현대차보다 열세를 보이고 있다. 

    MK는 향후 유럽 시장 공략에 '올 인'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유럽은 전통적으로 소형차가 많이 팔리는 데다, 올해부터는 현지 시장의 수요가 증대되고 있는 만큼 MK의 현지 점검도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의 소형차 경쟁력이 높을 뿐 아니라 독자개발한 승용차용 디젤엔진도 현지서 호평을 받고있기 때문이다.

    MK의 강점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와 축적된 기술력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현장경영'에서 발휘된다. 유럽 자동차 수요의 본격적인 회복에 대비해 중장기적 기초체력을 갖추는데 집중한다는 올해 구상도 맥을 같이한다.

    체코, 슬로바키아 공장에서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EU역내 수출 판매 증대와 러시아 공장가동으로 동유럽까지 공급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토요타나 현지 메이커들이 긴장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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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현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