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아비바그룹 철수, 씨티·SC은행 부진현지화 실패, 적극적 영업 판로 확보 못한 탓
  • ▲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지화 실패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 연합뉴스

    세계 시장을 석권한 외국 금융회사들이 한국에선 유난히 맥을 못추고 있다. 몸집 줄이기에 나서는가 하면, 한국 철수를 선언한 회사도 있다.

    전문가들은 급변하는 한국 금융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점, 우리나라에 특성화된 마케팅을 펼치지 않고 '글로벌 스탠다드'만 고집한 점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 한국에서 죽 쑤는 '글로벌 금융 그룹'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영국 최대 보험사인 아비바그룹은 농협금융지주가 우리아비바생명 인수를 마무리하는 오는 27일 국내 시장에서 전면 철수한다. 

이 회사는 한국 시장에 앞서 스리랑카 등 다른 아시아 시장에서도 철수를 결정했다. 유럽 경제위기 등으로 경영이 악화된데 따른 선택이다.

우리아비바생명 브랜드는 회사 철수 후에도 1년 간 볼 수 있게 됐다. 아비바 측이 농협에 상호를 1년간 사용할 수 있도록 상표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아비바는 우리아비바생명 지분의 47.3%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은 354억여원이라는 가격에 농협으로 넘어갔다. 투자 당시 금액이 988억원이었으니, 절반도 안되는 가격에 넘긴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수익과 한국 시장에서의 경험 등을 반영하면 '손해보는 장사'만은 아니라는 게 금융권의 평가다.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거나 몸집을 줄이고 있는 외국계 금웅사는 아비바 만이 아니다.

HSBC는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소매금융사업을 정리하고, 하나금융지주와 합작해 만든 하나HSBC생명보험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수익성과 성장성이 낮은 사업을 철수한다는 본사의 지침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 외국계 금융지주사들은 '탈지주'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한국씨티금융지주는 지난달 씨티은행과 합병하고 전국 56개 영업점을 통·폐합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같은달 29일엔 씨티은행이 희망퇴직을 공식 공고했다. 희망퇴직 관련 기준과 대상을 노조에 통보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SC금융지주도 저축은행과 캐피탈 등 계열사를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이 완료되면 계열사는 SC은행 하나만 남기 때문에, 더 이상 지주사의 존재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 "실패 이유? 한국을 너무 몰라서"

외국계 금융사의 본격적인 한국 진출은 2004년 시작됐다. 당시 씨티그룹이 한미은행을 인수하면서 한국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국내 은행들은 점유율 하락을 염려하면서도 선진금융을 경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보였다.

하지만 선진금융기법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고 점유율은 나날이 축소됐다. 한국 시장에서의 성적이 신통치 않자, 외국 금융사들은 구조조정이라는 회초리만 꺼내들었다. 인력과 지점규모는 점점 쪼그라들었고, 점유율은 계속 떨어져만 갔다.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외국계 금융회사들이 한국 시장에서 치욕적 결과를 얻고 떠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현지화의 실패를 꼽았다. 급변하는 한국 금융시장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 시장 특유의 특성을 무시한 데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진단이다. 

이윤석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이 은행들은 다를 것'이라는 금융권과 소비자의 기대감과 달리 실제 영업에서는 국내 은행을 앞설 만한 부분들이 없었다"며 "오히려 국내 은행 특유의 스킨십 영업을 멀리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시도하지 못해 한계에 봉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시장 특유의 대면 영업에 신경쓰지 않은 탓에 충성 고객을 확보하지 못한 결과라는 얘기다. 특히 기업 고객들을 멀리 보면서 키우지 못한 채 부실 채권 처리에만 급급한 것은 고객의 등을 돌리게 한 치명적 실책이란 평가다.

씨티은행과 SC은행은 소매금융과 주택담보대출에 주력해왔다. 소매금융의 경우 1금융권에서의 신용대출이 한계에 다다른 고객을 주된 타깃으로 잡았다. 선진금융은 꿈도 못꾼 채 ‘주워먹기’ 영업에만 몰입한 것이다. 이런 영업방식으로는 중소기업·대기업금융에서 활로를 찾을 수 없었다. 활로를 찾은 국내 시중은행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시중은행 지점장 출신의 한 금융권 인사는 "스킨십 영업·지인 영업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등,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한국법인 경영을 맡게 된 게 문제"라며 "비용 줄이기에만 골몰한 탓에 영업에 소극적이게 되고, 소극적 영업 탓에 이윤이 줄어들며, 이윤이 바닥을 치니 다시 비용을 줄이게 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지게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