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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한국 오페라의 수준이 굉장히 많이 발전했어요. 해외 각지에서 유학하면서 풍부한 문화 경험을 두루 갖춘 같은 핏줄을 가진 한국인들이 만들어낸 오페라 '라보엠'은 그런 점에서 다양성과 실력을 겸비했다고 자신합니다."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되는 라벨라오페라단(단장 이강호)의 오페라 '라보엠'의 연출을 맡은 연출가 이회수는 이번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로마, 프라하 등 유럽에서의 성공적인 무대연출에 이어 한국에서도 그 명성을 널리 알리고 있는 연출가 이회수는 이번 공연을 통해 따뜻한 사랑이야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그는 한겨울이면 어김없이 공연되는 '라보엠' 연출을 맡았을 때 처음엔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인 만큼 '이회수만의 라보엠'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기 때문이다.
"올해도 유난히 라보엠 공연이 많았어요. '어떻게 만들어야 관객들에게 특색 있는 라보엠으로 다가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가 지금까지 봤던 라보엠은 우울한 부분이 많았어요. 음산한 겨울을 배경으로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을 다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들이 어렵고, 가난한 예술가이긴 하지만 자기가 쓴 원고를 불태우면서도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미래나 예술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기존의 공연보다 밝고 경쾌한 라보엠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자신처럼 예술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던 주인공들을 생각하며 '새로운 라보엠'에 대한 부담감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다.
"제가 연출한 이번 라보엠을 보고 몇몇 사람들은 '가난한 주인공들이 부자처럼 보이지 않아?'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현실적인 삶에 포커스를 둔 게 아니라 그들이 꿈꾸는 미래와 현실, 그들이 지향하는 예술과 이상의 '실현'에 중점을 두고 무대를 연출했어요. 그래서 기존의 라보엠보다 훨씬 더 컬러가 다양하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오페라를 보실 수 있을 거에요." -
오페라 라보엠은 크리스마스이브 파리를 배경으로 보헤미안들의 삶과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써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아온 푸치니의 작품이다.
'이회수의 라보엠'으로 새롭게 탄생될 이번 오페라는 스태프 전원이 국내 인재들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클래식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오페라 공연은 '문화의 다양성'을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참 중요한 부분이긴 해요. 그래서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공연이 더 풍부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지금은 해외 각 나라에서 유학하는 한국인들이 대부분이니 각 나라의 경험과 문화를 가진 한국인들이 모여서 공연을 하게 되는 거죠. 문화의 다양성도 갖추고 오랫동안 '호흡'을 유지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一石二鳥)라고 할까요. 구성원들끼리 통하면 관객들끼리도 통하지 않을까요."
연출가 이회수의 열정은 기자가 한눈에 봐도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예술에 대한 사랑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품어온 진정한 '예술인'이었다.
오랜 기간 연출가의 길을 향해 달려왔을 것만 같았던 그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연출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회수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이탈리아로 떠나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그러던 중 연출로 전공을 전향했고 끝없는 노력 끝에 로마 국립 예술원 연출과를 최고점수로 졸업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데 어떤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16년 가까이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다양한 예술적인 부분을 많이 경험하게 됐죠. 어떻게 보면 '성악'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혀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시야가 넓어졌다고 할까요? 이탈리아가 워낙 조각이나 미술, 패션 등 예술이 발달했잖아요. 삶 자체가 예술적인 건축물 안에 살고 있는 거랑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성악 외에 것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로마 국립 예술원 연출과를 최고 점수로 졸업하고 난 후 그녀는 로마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세계적인 연출가들과 함께 일하며 학문으로써 접근이 아닌 실질적인 무대를 경험했다.
"전 처음에 '극장'이라고 하면 네모난 상자 안에 보여 지는 게 다 인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멀찍이 바라보니 뒤에 있는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무대 미술, 의상, 조명, 분위기 등등. 전체적인 무대를 보다 보니까 갇혀있는 제 삶이 뚫리는 것 같더라고요. 그때부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죠. '무대디자인은 어떨까', '연출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등 많은 고민과 관심 끝에 연출가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거죠. 그 후에 로마에서 최고의 연출가들과 함께 작품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배우면서 지금의 '이회수'가 된 것 같아요."
그는 프라하 STATNI 오페라극장주체 연출 콩쿨에서 아시아 최초로 입상한 클래식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다. 그는 유럽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라보엠', '카르멘', '호프만의 이야기', '손양원' 등을 연출했다.
연출가로서 승승장구 하고 있는 그의 행보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 성악에서 연출로 전공을 바꿀 때 부모님은 미쳤다고 하셨어요.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반대가 심하셨죠. 그래서 '학교 시험이나 봐보자' 생각하고 부모님께 시험 얘기도 말씀 안 드렸어요. 그랬는데 시험에 딱 붙은 거죠. 그런 후에야 부모님께 말씀 드렸어요. 아르바이트 해서 학비도 스스로 내고 제가 열정을 쏟아 붓는 모습에 그제서야 인정해주시더라고요. 지금은 굉장히 만족해하세요. 저 또한 연출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 정도로 아쉬움이 없어요."
그는 자신의 작품들 중 어느 하나 대충하고 덜 노력한 작품이 없어 '어느 작품이 제일 마음에 기억에 남냐'는 질문에 답하기 참 어렵다고 말했다.
"부모한테 어느 자식이 제일 예쁘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저도 똑같아요. 제 작품이 제가 사랑하는 아들이고 딸이에요. 그래서 큰 작품이건 작은 작품이건 동일한 애정을 쏟아 부었기 때문에 딱 하나 꼽기 참 힘들더라고요."
이회수는 2012년 제5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대상 수상작인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연출에 이어 오페라 '손양원', ‘카르멘' 등으로 제6회 대한민국오페라대상 연출상을 수상하는 등 맡는 작품 모두 하나같이 관객들과 전문가들에게 인정받아 왔다.
그는 오는 21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되는 라보엠 공연에 이어 새로운 작품들도 연이어 맡아 내년 초까지 바쁜 나날을 보낼 예정이다.
"올해에는 라보엠이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고요. 오는 2015년 2월 제1회를 맞는 '대한민국창작오페라페스티벌’에 '선비'라는 창작오페라로 인사를 드릴 것 같아요. 또 바로 6월에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에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연출을 맡아 관객들에게 선보일 예정입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이번에 같이 라보엠을 맡은 라벨라오페라단 이강호 단장님과도 새로운 작품을 또 한 번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끝으로 그는 연출가로서의 작은 꿈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제 위로 많은 연출가 선생님들이 계세요. 그런데 선생님들 중 한 분이 저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내가 어느 순간 노동자가 된 느낌이야' 라고요. 그때는 제가 귀국한지도 얼마 안 돼서 그 말이 와 닿지 않았는데 세월이 지나보니 알 것 같았어요. 물론 저희들도 돈을 벌어야 하고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일반 샐러리맨과는 다른 직업을 선택했기 때문에 '일을 위한 일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동자가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로 예술을 느끼고 즐기면서 일을 하고 싶어요. 제가 작품을 하면서 진심으로 즐겁고 사랑해야 관객들에게도 그 부분들이 전달이 될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의 순수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그의 두 눈에는 예술에 대한 '진실한 갈망'과 '간절한 소망'이 묻어 있었다.
한편 라벨라오페라단의 오페라 '라보엠'은 이강호 라벨라오페라단 단장이 예술총감독을 맡고 양진모 지휘, 이회수 연출,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연주로 무대가 꾸며진다. 미미 역에는 소프라노 이윤아와 김지현, 로돌포 역에는 테너 이원종과 지명훈, 마르첼로 역에는 바리톤 장성일과 박경준 등 최정상급 실력파 성악가들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