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VISION 한국경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로 조직 슬림화를 꾀한 국내 증권사들이 새해에도 부진한 업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군살을 뺀 증권사들이 비용 절감으로 겨우 흑자전환을 달성하긴 했지만 일시적인 효과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군살 뺀 증권사들, 새해에도 M&A 추진 '러쉬'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현재 국내 59개 증권사의 임직원 수는 3만6972명으로, 직전년(4만1222명)대비 10.31% 줄었다. 앞서 증권사들은 2013년에도 총 2561명의 임직원을 떠나보낸 바 있다.

    이는 장기불황으로 수년째 이어진 적자행보 탓이다. 최근 3년새 총 64개에 달했던 증권사들은 인수합병(M&A)과 적자로 폐업하면서 59곳만 남게 됐다. 올해에도 M&A가 추진될 예정이어서 증권사들은 대형화를 꾀하는 한편 개체 수는 줄어들 전망이다.

    앞서 지난해 말 NH농협증권과 우리투자증권이 합병되면서 초대형 증권사인 NH투자증권이 공식 출범했다. 자기자본 4조4000억 규모의 NH투자증권은 출범과 동시에 단숨에 KDB대우증권을 밀어내고 업계 1위에 올랐다.

    또 동양사태를 겪으면서 매물로 나왔던 10위권의 동양증권은 대만 유안타그룹에 인수되면서 유안타증권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고, 메리츠종금증권과 아이엠투자증권의 합병안이 통과되면서 업계 중위권 판도 변화도 예고된 상태이다.

    올해는 현대증권과 KDB대우증권 등 업계 5위권 내 증권사들의 M&A도 예정돼 있어 업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또 매각이 여러차례 불발된 리딩투자증권과 이트레이드증권 등 중견사들도 다시 올해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대증권 매각은 현대그룹이 지난 2013년 12월 발표한 3조3000억원의 자구안에 포함된 계획 중 하나이다. 현대그룹은 유동성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현대증권 등 금융사 매각방식을 확정, 오는 26일 본입찰이 진행된다.

    KDB대우증권의 최대주주인 산은지주는 지난 1일 통합 산은을 출범시키고 대우증권을 포함한 자회사 매각에 본격 시동을 건다. 업계 M&A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KDB대우증권은 자본총계가 지난해 3분기말 기준 현재 약 4조1000억원에 달해 NH투자증권 출범 전까지는 줄곧 업계 1위를 맡아왔다.

    한편 M&A를 한 증권사들을 중심으로 올해 여의도를 떠나게 될 증권맨들이 추가적으로 나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경영 효율화 및 지점 통폐합에 따른 인력감축이 불가피할 것이란 설명이다.

    ◇증권업계, '업황 부진' 지속

    한국신용평가는 올해 증권산업에 대한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금융시장 불확실성 지속 등 비우호적인 영업환경 △투자심리 위축에 따른 실적 저하 △우발부채 증대에 따른 재무안정성 저하가능성 등이 그 요인으로 꼽혔다.

    윤태림 한국신용평가 수석 연구원은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유동성 축소 및 자금 이탈 가능성 △이에 따른 투자심리 위축 △환율강세에 따른 국내 주요 기업의 실적부진 전망 △고착화된 위탁매매 중심의 영업구조 등을 고려할 때 국내 증권사들의 실적 개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증권업 특성상 수익창출능력은 거시 경제요인과 같은 외생적인 변수에 상당히 종속적이기 때문에 금융시장 환경이 변화되지 않는 한 단기간에 개선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증권사를 이끌고 있는 CEO들도 이 같은 전망에 동의하는 눈치다. 국내 주요 증권사 대표들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녹록치 않은 증권시장 환경을 진단했다.

    김원규 NH투자증권 대표는 지난 2일 신년사를 통해 "새해 경영환경도 여전히 어려울 것"이라며 "유가하락이 글로벌 경기 회복에 다소간 도움이 되겠지만 여전히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의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은 수출 중심에서 내수위주의 안정적인 성장기조로 변하고 있어 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며,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폭과 시기를 두고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봤다.

    홍성국 KDB대우증권 대표도 "국내 증권업은 시장 침체는 물론 지속된 과당경쟁으로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라며 "이러한 위기가 경기 사이클의 한 구간이 아닐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윤용암 삼성증권 대표 역시 "주식시장 거래대금의 뚜렷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금융상품시장 역시 수요증가 보다는 온라인 판매경쟁의 가속화로 가격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윤경은 현대증권 대표는 "올해 직면하게 될 증권사들의 경영환경은 △미국의 금리인상 △일본의 양적 완화에 따른 엔저현상 지속 △유가급락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 침체우려"라며 "그 어느 때보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증권사들에게 있어 올해는 본격적인 차별화 원년이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승창 KB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이후 지속적으로 정부가 추진해 온 대형화, 전문화를 중심으로 한 제도개선이 실행되면서 브로커리지에서 기업금융, 자산관리 등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라며 "이에 적응하는 회사의 실적차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