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외국인·원거리 거주자, 통장개설 어려워금융전문가 "개인정보 과다 요구 등 '갑질' 빌미 우려"
  • ▲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한 금융권의 노력이 자칫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대포통장 개설에 악용된 도난 신분증. ⓒ 연합뉴스
    ▲ 대포통장을 근절하기 위한 금융권의 노력이 자칫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진은 대포통장 개설에 악용된 도난 신분증. ⓒ 연합뉴스

    금융당국과 금융기관들이 ‘대포통장과의 전쟁’에 나선 가운데, 각 금융사들은 대포통장 의심 계좌를 원천봉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과정에서 금융소비자들이 합리적 이유 없이 계좌 개설을 거부당하는 등 ‘잠재적 범죄자’로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은행권이 개인정보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등, 소비자에게 ‘갑질’을 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대포통장을 각종 금융사기의 주 원인이라고 인식해, 지난 2012년 대포통장 근절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이 대책에는 여권만을 소지한 외국인이나 혼자 방문한 미성년자, 단기간에 다수 계좌를 개설한 사람, 기존에 대포통장 개설이 적발된 사람 등에게는 신규 자유입출금 계좌 개설 시 반드시 금융거래목적 확인서를 받게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계좌 개설 신청 영업점이 자택·직장에서 멀거나 거래신청서를 불성실하게 작성하는 등 직원이 의심스럽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도 확인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다 보니, 의도와 다르게 피해를 보는 금융소비자들이 발생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온라인 펀드슈퍼마켓’ 거래를 위해 우체국·우리은행에 가입하려는 소비자, 농어촌 등에 거주하는데 금리 우대 상품 가입 등의 이유로 일부러 인근 농협 지역조합이 아닌 원거리의 중앙회를 방문하는 소비자 등이 거래를 거부당하거나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등 피해를 입고 있다.

해당 소비자들은 “잠재적 범죄자 취급 받는다”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대포통장 근절을 위해 통장 개설을 엄격하게 하려는 의도는 공감하지만, 이로 인해 금융소비자들이 또 다른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원장은 “대포통장범죄의 책임을 금융권에 묻기 때문에 금융권은 보수적으로 정책을 시행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잠재적 범죄자와 일반 고객을 판단하려 하지 않고 면피할 목적으로 응대함으로써 일반 고객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조 원장은 “이같은 조치는 은행이 ‘갑질’로 악용할 수 있는 빌미가 될 수 있다”며 “외국인, 청소년, 일반 서민 등 은행수익에 도움이 안되는 고객에게 정책을 빌미로 거래를 거부할 수 있으며, 향후에는 대포통장개설 예방을 빌미로 개설수수료나 유지보수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과도한 개인정보수집에 대한 염려도 나왔다.

조 원장은 “계좌 개설할 때마다 매번 신분증, 인감증명 등 요구. 대포통장 때문에 매번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며 “개인정보수집 금지, 규제 완화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데, 은행권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조치는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시행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포통장 개설 의심고객 분류 매뉴얼은 금융당국의 기본 지침을 바탕으로 각 시중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며 “선량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점에 대해선 각 은행과 논의해 계속 보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