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상석 경제부 기자
    ▲ 유상석 경제부 기자
    [취재수첩] 금융당국이 ‘기술금융’을 강조하더니, 급기야 실적별로 성적을 매겨 줄세우기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8일 발표한 ‘은행혁신성 평가’ 결과 이야기다.

신한은행이 82.65점, 부산은행이 79.20점을 받아 일반은행과 지방은행 부분에서 각각 1위를 거둔 이 성적의 평가기준은 △기술금융 확산(TECH) 40점 △보수적 금융관행 개선 50점 △사회적 책임이행 10점이었다. 

항상 해오던 대로 부동산 등 다른 재산을 담보삼아 돈 빌려주는 일에만 매달리지 말고, 새로운 형태로 영역을 넓히라는 의도일 것이다. 기술금융 활성화를 통해 우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자금 걱정을 하는 벤처·중소기업의 자금 고민을 덜어주자는 의도도 있을 것이다.

“정부 말 따르다가 금융사고 발생하면 어떡하느냐”는 은행원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방어 장치를 마련했다. 금융당국은 여러 차례의 브리핑과 보도자료 배포를 통해 “기술금융으로 인한 금융사고가 발생한 경우, 담당 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까지의 내용을 보면 일견 문제될 게 없어 보인다. 혁신을 하자는데, 벤처기업이 돈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기술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돕자는데, 그리고 잘못될 경우 은행원에게 문책도 않겠다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빠진 게 하나 있다. ‘은행’ 그 자체에 대한 대책은 없다는 것이다.

당국의 정책에 열심히 따르다가 손실을 입을 경우, 은행은 어떻게 보상을 받아야 할 것인가? 정부가 보상하자니, ‘국민 혈세를 왜 사기업에 퍼붓느냐’는 비난 여론에 휩싸일 테고, 보상 안하자니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 환경에 처한 은행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명령할 명분이 없다.

명분 없는 정책은 ‘관치금융’, ‘관피아’ 등의 논란을 촉발시킬 뿐이다.

  • ▲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8월 '기술금융 현장방문'을 실시하던 중, 취재진에게 기술금융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유상석 기자
    ▲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8월 '기술금융 현장방문'을 실시하던 중, 취재진에게 기술금융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 유상석 기자
      
  • 현장 직원들은 기술금융 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그렇지 않아도 저금리와 인터넷 뱅킹의 발달로 개인 고객 확보도 어렵고, 불경기의 장기화로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라 기업고객 확보 역시 어렵기만 한 상황인데, 기술금융이라는 과제가 하나 더 생겼으니 말이다. 

    어떻게든 할당량을 채워야 하는 현장 직원들이 편법을 동원할 우려 마저 있다. 일반대출을 받으려고 찾아온 개인사업자나 기업고객을 기술금융으로 유도하는 식의 ‘돌려막기’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꼼수’다.

    기술금융의 도입 의도는 분명히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줄세우기까지 해 가며 은행들을 압박할 일은 아니다. 과도한 독려는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금융당국이 빨리 깨우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