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가 속 경기침체… 디플레이션 우려 높아져세계 각국 잇단 금리인하… 환율전쟁 격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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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재훈 사진기자

    기준금리가 사상 처음 1%대로 떨어졌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12일 열린 본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2.00%에서 1.75%로 0.25%포인트 낮추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2.25%에서 2.00%로 내린 이후 5개월 만에 다시 내린 것이다. 이로써 기준금리는 사상 최초로 1%대에 진입했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디플레이션 우려 탓에 경기부양 필요성이 높아진 데다 세계 각국의 잇단 금리인하에 따른 여파로 수출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가계부채 증가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 경기 부양 위한 수단으로 금리 인하 ‘카드’ 꺼내

    국내 경기는 2015년 들어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월 경상수지는 35개월 연속 흑자행진을 이어가긴 했지만 수출보다 수입 감소폭이 큰 데 따른 결과였다.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0.52%로 3개월 연속 0%대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 담뱃값 인상분을 제외하면 사실상 마이너스인 셈이다.

    이처럼 경기 부진이 지속되자 한국은행이 금리인하 카드를 단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금리인하의 주요 원인으로 ‘경기 하방 위험’을 꼽았다. 지난 1월과 2월의 실적 및 일부 지표를 모니터링 해본 결과 내수회복이 미흡해 선제적으로 대응키로 했다는 입장이다.

    이주열 총재는 금리 인하에 대해 "다음 달 추가 확보되는 자료로 다시 되짚어보겠지만, 두달의 자료를 보니 내수회복이 미흡했다"며 "다음달 (경기지표가) 다시 나오겠지만, (금리인하로) 선제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5% 내린 적이 있지만, 추가인하를 통해 경기회복 모멘텀을 살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금리인하폭을 0.25%포인트로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실물경제 회복을 도울 수 있는 충분한 수준이라는 입장도 밝혔다. 

    이주열 총재는 "이전에 기준금리가 실물경제를 제약하는 수준이 아니라고 말한 바 있다"며 "이번 0.25%포인트 인하는 실물경제 회복을 뒷받침하기 충분한 수준"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주열 총재는 1%대 금리를 언제까지 유지할 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통화정책은 거시경제 정책이기 때문에 경기와 물가를 최우선적으로 감안해 운용할 것"이라며 "앞으로 경기 회복세가 본격화되기 전까지 물가와 경기를 우선으로 해 통화정책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주열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 결정은 금통위원의 만장일치가 아니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두 명의 금통위원이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주열 총재는 이번 금리인하폭을 결정하는데 있어 0.25%포인트보다 크거나 작은 인하 폭의 주장이 제기됐는지에 대해서는 "향후 금융통회위원회 의사록을 참고하기 바란다"고 짧게 답했다. 

    그동안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금리인하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기준금리 인하 조치는 늦은 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조치였다”고 평가했다.

    성태윤 교수는 “지난번 인하를 했기 때문에 지금 이만큼이나마 버티는 것으로 본다. 지금처럼 실물 경기 지표가 계속 악화되는 상황에서는 인하는 반드시 필요했다”는 견해를 밝혔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경기 활력이라는 측면에서 금리를 내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물가와 민간부문의 활력이 상당히 줄어든 만큼 지금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적기"라고 강조했다.

    공동락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통화당국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많이 풀고 있다”며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가 이같은 ‘환율전쟁’에서 예외일 순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이같은 주장과 뜻을 같이해 금리를 인하한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지난 10일 공개한 ‘2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일부 금통위원은 유럽·일본 등의 통화완화정책으로 나타난 원화 강세를 방어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고 피력했다.

    ◇ 경기는 안 살고 빚만 늘어날라… 우려 목소리도

    그러나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가장 먼저 나오는 우려가 가계부채 증가 문제다. 가계부채는 이미 지난해 말 1000조원을 초과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지금은 금리 인하로 유동성을 확대해도 돈이 실물이 아니라 부동산으로 가고 있다. 소비와 투자가 미약한 것이 기업과 국민에게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다른 구조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내리면 돈이 부동산으로 흘러 주택담보대출이 늘어나 가계부채만 심각해질 것이다. 앞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준금리 인하 만으로 경기부양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윤창현 한국금융연구원 원장은 “기준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그 자체가 경기부양책으로서 가지는 의미는 약할 것”이라며 “오히려 기준금리 앞자리가 ‘2’에서 ‘1’이 되면 상당한 위기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한국은행 인사 역시 “이론적으로는 금리를 인하하면 1~2분기 후 경기가 부양돼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현재의 경기 침체는 워낙 그 원인이 복잡해 금리인하로 인한 경기부양 효과를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논란과 관련, 이주열 총재는 기준금리 인하로 가계부채 증가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에 대해 "가계부채는 금리를 내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계부채는 이번 금리 인하 때문이라기 보다 우리 경제가 해결해 나가야할 과제"라며 
    한국은행 뿐 아니라 금융당국과 정부 등 관계 기관이 가계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금리인하로 인해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주열 총재는 "금리를 인하하면 1차 효과는 금융시장에서 파급된다"고 설명했다. 시장금리와 예대금리가 금리조정폭만큼 인하됐고 은행대출이 상당폭 조정되고 있음을 보면, 1차적 파급경로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금리인하가) 소비투자로 이어지는 것은 2분기 정도 이후에 효과가 난다고 보고 있다"며 "금리인하 효과가 얼마정도인지 계측하기는 어렵고 제약 요인이 있기 때문에 과거보다 금리인하 효과가 못하지 않냐는 분석은 가능하지만, 하나의 추론이고 계량적으로 검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구조적 요인과 글로벌 요인으로 인해 금리인하 효과가 제약적이긴 하지만 
    실물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며 "이번에 금리 0.25%포인트를 내리면 소비와 투자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시간이 흐르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 바닥 친 기준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은?

    한은이 이날 기준금리를 인하함에 따라 연내 추가 금리인하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박형민·강승원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이 총재는 추가 기준금리 인하에 매우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기자회견에서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정책 정상화를 가장 우려하는 모습이었다”며 “늘어나는 가계 부채 문제도 부담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성욱 SK증권 연구원은 “금통위원 2명이 금리 동결을 주장한 것은 단기적 시계 내에서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올해 성장률이 작년 3.3%에서 2.5%로 낮아지고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1.3%에서 0.8%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이 때문에 올해 7월 1.50%로 0.25%포인트 추가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