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B 아르헨티나의 FATH 위한 장기이식 권유 광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가 아니라 개 한 마리와 함께. 개는 늘 할아버지와 함께 한다. 기다리기도 잘 한다. 할아버지가 식품점에 들어가도, 카페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문 밖에 얌전히 앉아 몇 시간이고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쓰러진다. 개는 응급차를 따라가지만 병원 안엔 들어가지 못한다. 개는 병원 밖에서 평생 해온 것처럼 또 할아버지가 나오기만 기다린다. 

  개들은 왜 그렇게 인간에게 우호적인 걸까? 사냥개, 목양견이나 썰매개로 봉사하는 것만도 부족해 인간에게 정서적인 교감까지 제공해주니 말이다. 과학자들도 그 점이 궁금했던 모양인지, 개와 늑대가 똑같은 염색체를 갖고 있는데 유독 개만 인간에게 순종적인 이유를 연구해왔다. 여러 가지 실험을 거친 결과 개와 늑대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밝혀졌다. 늑대와 달리 개는 평생 ‘강아지’ 상태로 머물며 보살펴주는 사람을 부모처럼 생각한다는 것이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이미 많은 가정에서 개를 막내아기 취급하며 키우고 있다. 수의사들이 개의 주인을 ‘엄마’, ‘아빠’라 부르는 건 이제 희귀한 일도 아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도 개들을 자기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자식’은 이제 욕으로서 효용을 다 한 것 같다. 


  •   핵가족이나 일인가구가 늘어나면서 개를 키우는 경우는 점점 늘고 있다. 특히 혼자서나 단 둘이서 사는 노인들에게 개는 자식보다도 좋은 벗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내가 먼저 죽으면 저 녀석은 누가 돌볼까. 

      다시 광고로 돌아가자. 개는 비바람 속에서도 여전히 기다리지만, 할아버지는 끝내 병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며칠이 지났을까? 병원 밖에 나온 것은 할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휠체어 탄 여자다. 슬픈 표정으로 엎드려 기다리던 개가 벌떡 일어나 여자에게 달려간다. 개와 여자는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것처럼 서로를 반긴다. 그리고 자막이 나온다. ‘장기 기증자가 되세요.’ 여자에게 이식된 노인의 장기가 자기 개를 알아본 것이다. 

      사실 사람은 자기 죽은 후 다른 사람까지 걱정할 만큼 이타적이지 않다. 생판 모르는 남들의 생명보단 홀로 남은 자기 자식의 외로움을 더 걱정하는 게 보통 사람이다. 이 광고는 몸의 일부로나마 더 살아야 할 이유를 사람들에게 말해준다. 죽은 후에도 내 장기나마 이 세상에 남겨서 사랑하던 사람이 사는 세상을 계속 사랑할 수 있게 하라고 말이다. 

      개의 연기력(?)은 물론 시나리오부터 연출까지 모두 매끄러워 마지막 태그라인이 나올 때야 비로소 광고라는 걸 알게 만드는 이 작품은 아르헨티나 간 이식 재단(FATH)을 위해 만든 캠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