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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생명이 국내 오피스 빌딩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10여개 넘는 업무용 건물을 잇따라 매물로 내놓으면서 시장이 크게 출렁인다. 상반기만해도 을지로 페럼타워를 4200억원에 매입하는 등 오피스 빌딩 시장의 '큰손'으로 자리 잡았던 삼성생명은 하반기 들어 돌연 자산 매각의 빅 셀러가 됐다.
배경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삼성측은 "의례적인 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단순히 시장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본사 건물을 매물로 내놓았다는 삼성의 얘기는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걸음 더 나아가 삼성생명이 지난 2009년 매입한 삼성 본관 마저 다른 계열사에 넘길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내 최대 6조원대 업무용 빌딩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의 자산 매각러시가 어디까지 이어질 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
◇ 삼성물산, 삼성 본관의 새 주인될 듯
최근 태평로 본사 사옥을 매물로 내놓아 화제를 모은 삼성생명이 그룹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삼성본관 마저 다른 계열사에 넘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 주체는 태평로 재진입이 확정적인 삼성물산이다. 본사 사옥을 파는 대신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물산에 본관을 넘겨 그룹의 '태평로' 상징성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은 최근 그룹 임원회의에서 계열사 이전과 관련된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면서 태평로 삼성본관 문제도 함께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본관에 입주해 있던 삼성카드와 삼성증권 등은 서초동으로 이동한다.
삼성생명은 지난 2009년 서초동으로 떠난 삼성전자로부터 5048억원에 삼성본관을 사들인 바 있다. 1976년 준공된 삼성본관은 대지 6595㎡에 건물 연면적이 8만3640㎡에 이르는 지상 26층, 지하 4층 건물로 40여년간 삼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일부에서는 인근 삼성생명 빌딩과 더불어 1조원대의 패키지 딜 설도 나돌았지만 생명측은 본관의 타 회사 매각은 있을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
◇ 태평로 사옥 6000억~7000억 전망...신한금융 "관심없다"태평로 삼성생명 본사빌딩은 연내 매각이 목표로 잡혔다. 생명측은 현재로서는 매각과 본사 이전 등이 최종 확정된 것이 아니고 시장가치와 매각 가능성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항변하지만 옹색하다.
자산규모 200조인 초대형 금융회사가 단순히 시장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본사 사옥을 매물로 내놓는다 것은 쉽사리 납득이 되질 않는다. 이웃인 신한금융 등에 매입의사를 타진했다가 보기좋게 거절당한 것도 볼썽 사납다.
삼성생명빌딩은 전신인 동방생명 사옥으로 1984년 준공된 이래 생명의 상징이었다. 지하 5층, 지상 25층 규모로 연면적이 8만7000㎡에 달하는 초대형 건물이다.
오피스부동산 업계는 대략 6000억~7000억원 사이에서 매각가가 결정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워낙 대형 매물이라 삼성그룹이 매각가를 낮추지 않는 한 인수자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시세대로 건물이 매각될 경우 올해 최고가 매각 케이스가 된다. 앞선 상반기 최고가 건물은 삼성생명이 동국제강으로 부터 사들인 4200억의 페럼타워였다. -
◇ 프리미엄급 빼고 모두 판다
사실 삼성생명은 지난해부터 회사가 보유하고 있던 중소형 빌딩들을 잇따라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울산, 순천, 포항, 김해, 원주, 강릉, 전주, 대전선화, 구미, 익산 등 10개의 지방사옥은 1년 넘게 매각작업이 진행중이다. 올들어서는 프리미엄급 빌딩을 제외한 수도권의 빌딩들이 줄줄이 시장에 나왔다.
지난 8월 서울 동교동빌딩을 시작으로 제일모직이 본사로 썼던 종로 수송타워와 '국세청 건물'로 잘 알려진 종로타워, 대치타워, 송파빌딩이 차례대로 매물이 됐다.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에 위치한 동교빌딩은 지하 4층~지상 17층 건물로 건축연면적은 1만3990㎡다. 지난달 미국계 투자회사인 인베스코에 팔렸다.
수송타워는 지하 6층~지상 16층 건물이다. 건축연면적이 4만4747㎡에 달할 정도로 크다. 전층을 임대해 사옥으로 쓰고 있는 제일모직 패션사업부가 도곡동 군인공제회관으로 이전하면서 공실이 우려됐지만 최근 SK D&D에 2300억~2600억원 선에 팔렸다.
종로의 랜드마크로 잘알려진 종로타워는 16년만에 매물이 됐다. 이건희 삼성회장이 유독 애착을 가졌다던 종로타워는 삼정KPMG가 매각 주관사로 선정돼 외국의 큰 손들과 접촉을 갖고 있다. 수송타워의 우선협상 대상자로도 선정된 이지스자산운용과 연내 본계약 예정이다.
강남구 테헤란로 동부금융센터 옆에 위치한 대치타워는 지하 6층~지상 20층 규모다. 건축 연면적은 4만4827㎡로 시장에서 평가하는 매각가는 1500억원 내외다. 대부분 층의 오피스를 임대해 사용하던 SK하이닉스가 분당구 정자동으로 이전하면서 새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 인근에 위치한 송파빌딩은 지하 5층~지상 15층 건물로 접근성이 좋아 인기를 끌고 있다. -
◇ 배경은...'오리무중'
배경에 대한 해석은 분분하다.
1차적으로는 삼성생명의 자산 포트폴리오 재구성에 있다. 사실상 3세 경영시대에 돌입한 삼성그룹은 대내외 리스크에 대비해 현금 마련에 중점을 두고 있다. 10여개의 건물 매각을 통해 최대 2조원대의 현금을 보유할 전망이다.
삼성생명의 재무구조 개선에도 목적이 있다. 삼성생명은 올 상반기에 1957년 창사 이래 가장 낮은 3.8%대의 자산운용 수익률을 기록했다. 생보업계 빅3 중 가장 낮은 규모로 그룹 내부의 충격파가 적지 않았다.
투자수익률이 5% 미만인 국내 보다 10% 안팎을 맴도는 해외 부동산 투자에는 적극적인 이유다. 지난달 간접투자를 통해 미국 BMO해리스은행 본사를 사들였으며, 독일과 호주 등지의 오피스빌딩 매입을 검토 중이다. 1%대의 초저금리시대 역마진 공포에 시달리는 보험사들은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에 사활을 걸고 있다.
2020년부터 시행되는 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를 대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부채를 장부가격 대신 시장가격으로 평가하는 2단계가 시행되면 보험사의 지급여력(RBC)비율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해외·대체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RBC비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내 부동산 자산을 줄여야 한다.삼성생명이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은 팔 수 없기 때문이다.
전체 계열사의 사옥 및 조직 재편을 추진중인 그룹 전반의 밑그림과도 맞닿아 있다. 일각에서는 전용기까지 판 이재용 부회장의 실사구시 경영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