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풀려졌는지 확인할 검증절차 없어국토부 "잔존수명 확인해 안전 문제없어"… 철도전문가들 "사용환경 따라 수명 달라"
  • ▲ 새마을호 열차.ⓒ연합뉴스
    ▲ 새마을호 열차.ⓒ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낡은 열차에 대한 내구연한을 없애면서 기대수명이란 개념을 도입했지만, 기대수명이 철도사업자 주문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어날 수 있어 제도 도입의 취지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발주자와 공급계약을 맺은 차량 제작사가 기대수명을 밝히게 돼 있으나 기대수명이 터무니없이 부풀려졌는지 검증하는 절차도 없는 실정이다.

    21일 국토부에 따르면 철도차량 운행 수명에 관한 내용이 지난해 3월부터 기존 내구연한에서 기대수명으로 바뀌었다.

    국토부는 2012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철도 내구연한을 폐지했다. 한 번 발주한 열차를 언제까지나 무한정 사용할 수 있어 철도안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자 도입한 게 기대수명이다.

    기대수명이란 철도차량의 제작 또는 철도시설을 설치할 때 기대했던 성능을 유지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말한다.

    국토부는 최근 행정 예고를 통해 철도사업자가 철도차량을 등록·인수 취득한 지 20년이 되면 해당 차량에 대해 최초 평가를 벌여 남은 수명(잔존수명)을 구하고, 잔존수명을 넘어 차량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설령 잔존수명이 차량 기대수명보다 길어도 기대수명을 넘겨 사용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등록한 지 20년 된 철도차량의 최초 평가 결과 잔존수명이 7년으로 나와도 해당 차량의 기대수명이 25년이면 5년을 초과해 쓸 수 없게 한 것이다. 기대수명이 사실상 낡은 열차의 무한 사용을 막는 안전 문턱 구실을 하는 셈이다.

    기존 내구연한은 디젤기관차 25년, 전기 동차 25년, 전기기관차 30년 등으로 획일적으로 제한돼 있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등 철도사업자 처지에선 유지·보수를 잘해 현역으로 더 달릴 수 있는 열차를 퇴출해야 하는 불합리한 점이 있었다. 기대수명은 열차마다 다를 수 있어 열차 운행의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차량 제작사가 밝히게 돼 있는 기대수명은 사실상 차량을 구매하는 발주자 주문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내구연한은 철도사업자로선 불합리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면서 "기대수명은 근본적으로 발주자가 기대수명을 제시해 주문하면 제작자가 이에 맞게 생산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가령 철도사업자가 100년 이상 운행할 차량을 주문해도 제작사가 차량을 공급하며 해당 차량의 기대수명이 100년이라고 밝히면 그만인 것이다.

    제작사가 제시한 기대수명이 부풀려졌는지를 검증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철도안전관리체계에 관한 연구용역은 교통안전공단이 수행했다.

    공단 관계자는 "내구연한을 폐지하면 열차를 무한정 사용할 수 있게 되므로 일종의 안전장치 개념으로 기대수명을 도입하게 됐다"면서 "다만 현재는 제작사가 밝힌 기대수명을 따로 검증하지는 않는다"고 부연했다.

    그는 "애초 내구연한 폐지가 규제 완화를 위해 이뤄졌는데 기대수명을 검증하는 것은 이런 목적에 배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규제 완화 측면에서 접근한 내구연한 폐지로 말미암아 열차 안전문제가 제기되자 이를 무마하려고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대수명 개념을 도입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국토부는 안전성·성능 등에 관한 평가를 통해 열차의 잔존수명을 구하므로 안전운행에는 문제가 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사용환경에 따라 열차의 잔존수명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안전이 담보되지 않은 낡은 열차들이 선로를 달릴 가능성은 여전한 상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등 철도 전문가들은 "운행 횟수, 지형조건 등 다양한 사용환경 변수에 따라 같은 열차라도 수명에 차이가 날 수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