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직원 자기매매 제재, 업계의 선제적 자율규제로 수위 낮아져'선제적 자율 규제', 퇴로·숨통 확보위한 '한 수'
  • 증권사 임직원 자기매매에 대해 결국 금융당국이 칼을 뽑아들었지만 우려만큼의 격한 반발은 없었다. 당국과 업계 모두 새롭게 마련된 규정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방안을 스스로 찾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민감한 이슈에 대해 증권업계가 먼저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당국에 보여줬고, 당국이 이에 화답해 계획보다 규제수위를 조절했기 때문으로 평가하고 싶다.


    금감원이 '금융회사 임직원 제재 합리성 제고방안'을 발표하기 전날인 지난 2일 한국투자증권은 지점 영업직원의 자기매매 거래실적을 이달부터 성과급 산정에서 제외키로 결정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이튿날 삼성증권도 "자기매매 실적의 성과 반영으로 과도하게 자기매매가 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지난 10월부터 성과급 산정에서 빼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NH투자증권과 한화투자증권도 자기매매를 성과에 반영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바 있고, KDB대우증권도 임직원 자기매매 성과보상체계를 점검 중이다. 이들은 모두 "신뢰를 깎아 먹는 일부 영업 행태를 스스로 개선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이같은 증권사들의 발표는 칼을 휘두르려던 금융당국의 마음을 가라앉히게 만든 선제적 조치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금감원 역시 '상식적인 수준'의 규제방안을 발표했고, 업계는 당국이 제시한 적정 수준의 상식을 받아들였다.


    당국의 강제적인 규제보다는 증권사가 자율성을 기반으로 업계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반드시 규제를 해야만 하는 입장인 당국과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업계가 한발씩의 양보를 통해 도출해낸 결과물이다.


    임직원 자기매매 외에도 증권업계는 지금 각종 규제와 통제에 발이 묶여있다. 가뜩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운 상황에서 임직원과 회사는 모두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고싶지만 투자자 보호라는 대전제 아래 생존전략은 제한적이다.


    하지만 투자자의 보호를 무시하고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앞장설 만큼 심장이 큰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규제의 장벽을 아예 허물기 보다는 높이를 낮추는 것이 합리적인 방법일 수 있다.


    증권사들이 자율적으로 자기매매 규제를 강화하자 금융당국도 한발 물러서줬고, 업계는 기존에 비해 통로가 좁아졌을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숨통과 퇴로는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수개월째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홍콩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주가연계증권)발행 문제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이 쏠림현상에 우려를 표하고, 경고의 목소리를 보내고 있지만 증권사들은 여전히 "H지수 아니면 방법이 없다"라는 입장만을 고수해왔다.


    당국의 우려와 업계의 버티기가 지속돼오고 있는 시점에서 결국 업계가 고개를 숙이는 모양새다. 현재 36조억원 수준의 잔액을 2017년까지 25조원대로 10조원 이상 감축한다는 업계 차원의 자율규제안을 마련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자율규제안은 자율을 가장한 타율 규제에 불과해 보인다. 이미 금융당국은 칼을 뽑을 준비를 마치고 시기조율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행비중이나 발행금액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넌지시 업계에 흘리기도 했다.


    업계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원격조정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홍콩증시가 폭락했던 2달전 일부 증권사들은 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ELS 발행을 잠정 중단하기도 했지만 대다수 증권사들은 발행을 지속했다. 오히려 "우리회사는 발행을 멈춘 적도 없고, 멈출 생각도 없다"며 당당했던 모습을 당국이 곱게 봤을 리 없다.


    금융당국이 규제를 발표해 확정한 이후에는 당국 역시 물러서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늘 그래왔듯이 '갑'은 당국이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서로 한발씩 물러나 퇴로를 열어주면서 자신들의 숨통 역시 확보해 두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