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경쟁 탓 신도시에서도 핵심상권에서 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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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H농협금융지주의 맏형격인 농협은행은 늘 어깨가 무겁다.

    우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다른 은행에선 찾아볼 수 없는 수천억원의 농협 브랜드 사용료를 내야하고 '농민들을 위해 세워진 금융회사'라는 기본 덕목으로 돌아가 농업지원사업에도 적잖은 돈을 풀어야 한다.

    '명칭 사용료'라는 항목의 브랜드 사용료만도 해마다 4000억원이 넘었다. 지난해부터 2926억원으로 다소 줄긴했지만 올 상반기에만 벌써 1526억원을 냈다. 상반기 당기순이익 3008억원인 점을 감안하면 순익의 절반을 낸 셈이다.

    혹여 금융회사로서 제 역할을 다하겠다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라치면 돈벌이에만 혈안이 됐다는 비난이 날아든다. 다른 은행과 달리 엄정한 잣대의 공공성을 요구한다.

    그러다 수익이 떨어지면 이번엔 생산성 시비가 불거진다. 타 은행에 비해 자본금도 수조원이 적고 브랜드 사용료도 내야하고 수도권 점포가 적다는 항변도 해보지만 야속한 질책은 계속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농협은행은 때론 일반 시중은행으로 이따금은 특수은행으로 취급받으며 그때 그때 특별한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 ▲ 농협은행은 늘 사촌격인 농협상호금융과 점포 위치 조율을 벌여야 한다ⓒ뉴데일리 DB
    ▲ 농협은행은 늘 사촌격인 농협상호금융과 점포 위치 조율을 벌여야 한다ⓒ뉴데일리 DB

     

    이런 농협은행이 올들어 '많이 달라졌다'는 평가를 듣는다. 

    상반기에는 저금리.저성장 기조에서도 2008년 이후 7년만에 손익목표를 달성했다. 울컥한 김주하 NH농협은행장은 치킨 6000마리를 직원들에게 쏘며 "직원들의 노고에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겹도록 고맙다"며 감격했다. 그만큼 지난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더라도 풍년 농사가 가능한 수리답(水利畓)처럼 강한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김 행장의 구상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걸림돌이 수두룩하다. 시장경쟁력을 끌어올리려면 무엇보다 수도권 점포 증설이 시급하지만 수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농협은행의 수도권 점포는 387개로 전체의 40%에도 미치지 못한다. 서울권은 160여개에 불과하다. 국책은행인 기업은행 보다 적고 경쟁 은행들의 절반에 그치는 수준이다. 일반 시중은행 점포 70%가 수도권에 몰려 있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사람과 기업, 돈이 몰려있는 수도권에서 농협은행이 맹탕인 이라는 비판을 들었던 이유다.

     

  • ▲ 농협은행 수도권 점포 증설의 키는 농협중앙회가 쥐고 있다ⓒ뉴데일리 DB
    ▲ 농협은행 수도권 점포 증설의 키는 농협중앙회가 쥐고 있다ⓒ뉴데일리 DB


    옛 농협은행이 중앙회로 편입되면서 기업은행에 점포들을 넘겨준 것이 가장 컸다. 이후에는 회원조합과의 400미터 제한규정에 묶여 신규 출점이 어려웠다.

    신도시가 생겨도 택지개발지구에 사람들이 몰려도 일단 회원조합의 눈치를 보다 보니 다른 은행과의 경쟁이 되질 않았다. 핵심상권에서 밀려 결국 도심 외곽이나 입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5.5%의 부실점포가 발생하는 한 원인이 됐다.

    이같은 사정을 잘아는 김용환 농협금융회장은 연초 '공격형' 농협을 주창하며 "적어도 수도권 점포 비중을 50%까지는 높이기 위해 신도시 중심으로 진출할 계획"이라며 농협은행에 힘을 실어 줬다. 다만 중복 점포가 생기지 않도록 단위조합과 충분한 협의하고 기존에 수익이 안 나거나 영업권이 다른 점포와 겹치는 지점 30곳 가량을 통폐합한다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했다.

    수도권 영업인프라 확대에 대한 기대감이 풍성했고 금융회사로서 수익성 확보를 위한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됐다.

     

  • ▲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수도권 점포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뉴데일리 DB
    ▲ 김용환 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수도권 점포 비중을 50%까지 늘리겠다고 밝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뉴데일리 DB

     

    하지만 아직은 진전이 없다. 본점을 포함해 1266개 지점을 갖춘 상호금융 산하 도시 농축협과 업역이 중복되다보니 점포개설 위치를 두고 집안 내부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 지점만 66개에 달하는 도시 농축협은 400미터 거리제한에 양보할 의사를 갖고 있지 않다.

    결국 농협중앙회가 나서야만 풀릴 수 있는 숙제다.

    금융회사로서 제구실을 다하겠다고 선언한 농협은행. 리스크 관리에 팔을 걷어 붙혔고 핀테크와 자산관리, 글로벌化 등 미래 먹거리 창출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수도권 점포 증설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