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구조조정·노사화합 한진重
해양플랜트 부실에 노조발목 현대重
  • 수년째 침체일로를 걷고 있는 국내 조선업계는 올해 어느 때보다 힘든 시간을 보냈다. '황금알 낳던 거위'로 불리던 해양플랜트 사업에서 조(兆)단위 적자가 터져 나왔고, 조선업종노조연대가 만들어지는 등 노사갈등도 유독 심했다. 부실이 본격화되자 각 업체들은 각종 비핵심 자산 매각은 물론 고참급 사무직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희망퇴직까지 진행하는 처지다.

    세계 1위 조선사로 통하는 현대중공업의 사정은 특히 좋지 못하다.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3조2000억원대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 회사는 8분기째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노조도 경영정상화의 발목을 잡고 있다.

    반면 한진중공업의 경우 2년 만의 영업이익 흑자가 기대되고 있다. 앞선 희망퇴직, 저가수주 지양 등 선제적 구조조정이 빚어낸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 심각한 노사대립으로 회사 존폐위기를 경험했던 만큼, 경영정상화를 위한 노사화합도 어느 때보다 끈끈한 상태다.

    ◇한진重, 2년 만의 흑자전환 기대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쭉 고난의 시기를 보냈던 한진중공업은 최근 적자늪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 순환 유급 휴직 등 인력조정과 저가수주 회피 등으로 진열을 재정비한 결과다. 국내 대형 조선사들이 올 들어 해양플랜트 부실로 조 단위 적자를 쌓으며 각종 자산매각, 희망퇴직 등을 진행하는 것과 상반되는 모습이다.

    이 회사는 지난 3분기 565억원의 이익을 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누적 영업적자를 62억원 수준까지 낮췄다. 업계는 한진중공업의 흑자기조가 지속돼, 2년 만의 영업이익 흑자도 기대되는 상황으로 관측하고 있다.  

    김현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진중공업의 재무구조개선 과정 이후 첫 흑자 기록은 의미가 있다"며 "수빅조선소와 건설부문의 수주 호조, 영도조선소의 실적 안정화 등으로 2분기 연속 영업흑자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필리핀 수빅조선소는 높은 가격경쟁력을 통해 한진중공업의 경영정상화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아직 국내 조선사들과 비교해 기술 수준은 뒤쳐지지만, 1인당 월 30만원 가량의 낮은 인건비가 이를 상쇄해준다. 지난 4월에는 세계 최대 규모인 2만600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컨테이너선 3척을 수주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노사화합은 한진중공업의 가장 큰 무기다. 한때는 노조가 300열일 간의 타워크레인 농성을 펼치는 등 가장 극심한 노사갈등을 빚던 한진중공업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문 닫기 직전 상황에 놓이자 위기의식을 공감한 이 회사 노사는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고 경영정상화에 집중하고 있다.

    이 회사 노조는 지난 9월 있었던 조선업종 노조연대 공동파업에도 불참했다. 회사정상화에만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영도조선소의 가동률(상선부문)은 지난 2013년 0%에서 지난해 11.7%, 올 상반기에는 73.4%까지 올랐다.

    ◇현대重, 2년째 적자지속…발목잡는 노조도 문제

    현대중공업은 최근 사장단 전원이 급여를 반납하는 등 전사적 긴축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지난해 회사 임원의 30%를 내보냈고, 올 초에는 과장급 사무직원과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도 실시했다.

    유동성 확보를 위해 각종 보유주식을 내다팔고 있고, 최근에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자사주 매각까지 단행했다. 호봉제로 운영된던 임금체계를 과장급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연봉제로 뜯어고치는 등 내부 정비도 한창이다. 각종 시설투자 및 사내외 행사 등도 흑자 전까지 전면 중단됐다.

    그러나 다수의 저가수주 선박과 남은 해양플랜트 물량은 여전히 골칫덩어리다. 설계능력 부족과 공기 지연으로 누적되는 손실액도 문제지만, 최근 유가 급락으로 발주사들이 해양설비 인도를 회피하고 있다는 점도 뼈아프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0월 노르웨이 한 선사의 일방적 반잠수식 시추선 건조계약 해지 통보로 1억6700만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현재 런던해사중재협회(LMAA)에 중재신청을 한 상태지만, 그 과정만 1년 이상 소요되는 데다 현대중공업 측에 유리하다는 보장도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다.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도 비슷한 사유로 5억7000만 달러 규모의 시추선 계약을 취소당했다.

    이 회사 노조도 경영정상황의 발목을 잡고 있다. 대부분 조선사 노조가 어려운 회사상황을 감안해 올 임금동결에 합의했지만, 현대중공업 노조는 여전히 12만원대 기본급 인상을 요구 중이다. 이 과정에서 수차례의 부분파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내년 세계 선박 발주 전망도 밝지 않은 상황이라 국내 조선사들의 실적 반등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대다수 회사 노사가 위기의식을 공유하고 경영정상화에만 집중하는 가운데, 현대중공업 노사의 경우도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서로간 전향적 자세가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