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했다" vs "할 만큼 했다"… 제 논에 물대기式 논쟁 지긋
  • ▲ 말을 갈아 탄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의 등장으로 다시금 '경제민주화' 공방이 불붙고 있다ⓒ뉴데일리 DB
    ▲ 말을 갈아 탄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의 등장으로 다시금 '경제민주화' 공방이 불붙고 있다ⓒ뉴데일리 DB

     

    때아닌 경제민주화 공방이 다시 불붙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 당시 핵심 의제였던 점을 감안하면 시계추를 꼬박 4년전으로 되돌려 놓은 모양새다. 경제민주화의 전도사였던 김종인 전 의원이 더불어 민주당으로 옷을 갈아 입은 탓에 공수의 위치만 바뀌었다.

    경제민주화라는게 뭔가. 통칭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현상을 법으로 완화하자는 주장이다. 하지만 또 정치논리가 앞서니 공방 자체가 허허롭다.

    김종인 더민주 선대위원장은 "후퇴했다"고 일갈했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박근혜 정부가 또 다른 대국민 사기극을 벌였다"고 맹비난했다.

    발끈한 청와대는 안종범 경제수석이 나서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성과를 이루었다"며 자화자찬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80점을 줄 수 있다"고 거들었다.

    주무부처 격인 공정거래위원회는 "경제민주화 과제 20개 중 13개가 입법 완료되었고, 7개 과제에 대해서도 입법화 노력을 하고 있어 경제민주화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에 나섰다.

     

  • ▲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20개 과제 중 13개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자료=공정위
    ▲ 공정위는 경제민주화 20개 과제 중 13개가 완료됐다고 밝혔다 ⓒ자료=공정위

     

    헷갈린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인가.

    같은 기간 경제개혁연대가 "19대 국회에서 경제민주화가 얼마나 진전되었다고 평가하는가"라는 질문에 부정적 답변이 78.4%로 압도적이었다. 긍정적 응답은 13.7%에 불과했다. 경제민주화라는게 당장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닌 점을 감안하더라도 박한 평가다.

    예의 야당의 공세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지만 제 논에 물대기 격이다.

    부정적 응답자들을 대상으로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물어보니, 정부 43.2%, 야당 21.9%, 여당 15.1% 순이었다.

    계층별로 그 순위가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응답자들은 전체적으로 정부 다음으로 야당의 책임이 여당보다 더 크다고 보았다. 이쯤되면 야당도 딱히 할말이 없을 터다.

    김종인 선대위원장과 야당이 콕 찝어 지적한 '순환출자제도'만 해도 그렇다.

    김 위원장은 "처음에는 기존 출자까지 해소하는 식으로 법을 만들자고 했는데, 정부가 그걸 신규출자라고 말을 바꿨다"고 지적한다. 야당은 일찌감치 신규 출자만을 금지하는 대통령 공약의 한계를 걸먹이며 기존 순환출자까지 규제할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정부와 청와대는 "2013년 4월 1일 기준으로 9만7658개였던 대기업집단의 순환출자 고리 수가 지난 10월 말 기준 94개로 99% 축소됐다"며 항변한다.

    주 타깃으로 이같은 논쟁을 지켜보는 기업들은 허망하다.

    현재 공정위가 지정한 61개 대기업집단 중 순환출자가 있는 그룹은 8개에 불과하다. 그중 순환출자가 총수의 지배권 유지에 핵심 역할을 하는 그룹은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현대산업개발 등 3개뿐이다.  이쯤되면 기존 순환출자 해소가 경제민주화의 최우선 과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삼성·현대자동차 그룹의 예에서 보듯 기존 순환출자 해소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제민주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다.

    아무리 '슬로건 정치'라고 하지만 여야가 선명성만 앞세우기 보다 어려워진 경제현실을 감안해 실사구시로 자세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개혁연대를 이끌고 있는 한성대 김성조 교수는 칼럼을 통해 "야당이 당명 변경과 인재 영입만이 아니라 슬로건과 정책의 혁신도 필요하다. '진영 내의 안전한 정답'에만 머물러서는 선거에서 이길 수도 없고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도 없다"며 자세 변화를 촉구했다.

    박 대통령의 경제교사로 불렸던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거꾸로 정부 여당의 솔직함을 요구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성장의 결실을 골고루 나누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며, 균등한 기회와 정당한 보상이 이뤄지는 행복한 경제시스템'이라는 경제민주화 공약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미진하다고 느끼는 점을 인정하라는 얘기였다.

    김 원장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부의 국정과제가 140개 인지 20개 인지 기준에 따라 불분명하다"며 "할 것 다 했다고 말하기보단 차라리 노력했지만 경제여건이 나빠서 계획대로 못 했다고 하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정치와 경제의 만남은 늘 탈이 난다. 정치논리가 앞서면 경제에 멍이 들고 경제논리만 치우치면 정치가 부담이다. 경제민주화 해법찾기는 '슬로건' 보다 '실사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