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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유·패션 업계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젊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섬유 업계 종사자 중 72%가 40대 이상이다. 대한민국의 2·30대가 세계적으로 성장 추세에 있는 의류업을 외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섬유패션산업연합회(이하 섬산련)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유인책을 펼치고 있다.
섬산련이 운영하는 장학재단은 전문대학, 4년제 대학교, 특성화 고등학교 등에서 섬유나 패션 분야를 전공하는 학생들 중 일부를 대상으로 학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섬유·패션 산업에 관심이 있는 젊은 인재에게는 무상으로 교육을 진행해 취업을 알선하기도 한다.
하지만 90% 이상 중소기업인 섬유·패션 업계에는 젊은 인력이 쉽게 모여들지 않는다. 중소기업을 외면하는 청년을 비난할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은 미래가 있다면 바닥이라도 길 각오로 세상에 나온다.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외면하는 것이 아니다. 비전이 보이지 않기에 청년이 미래를 걸지 않는 것이다.
섬산련이 학비 지원과 무상 교육 등으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고 젊은 인력들이 업계로 뛰어드는 것은 아니다. 섬유·패션 분야를 청년이 외면하는 이유는 성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지난 40년간 고성장의 기회가 있었지만 위기와 같은 뜻인 기회 보다 안정적인 러닝머신 위를 제자리 걸음했던 섬유·패션 산업계 종사자들의 책임이다.
1970년대 영국·프랑스·독일 등 유럽의 섬유기업들이 인건비가 저렴하고 지대가 싼 대한민국을 생산기지로 선택하면서 섬유산업이 이 땅에서 처음 시작됐다. 1980년대 미국과 일본 등이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생산한 화학섬유로 섬유산업의 주도권을 획득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여전히 생산기지였다.
세계적 섬유·패션 기업들이 탄생하면서 1990년대 대한민국 보다 더 저렴한 인건비와 지대를 자랑하는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길때도 2000년대 중국 보다 저렴한 인건비와 지대를 내세운 베트남으로 옮겨갈 때도 우리는 생산기지에서 조금 벗어나 세계적인 섬유·패션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일했다.
에티오피아라는 아프리카 국가가 저렴한 인건비와 지대, 물류에 용이한 입지조건 등을 내세우며 세계적인 섬유·패션 기업들을 불러 모으고 있는 상황으로 시간은 흘렀다. 40년간 대한민국은 의류 제품에서 화학섬유까지 생산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한 나라로 발전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섬유·패션 대기업은 탄생하지 못했다.
섬유·패션 산업은 크게 원료 생산-실 제조-옷감 만들기-최종 의류 생산 등 네 가지 단계로 나뉜다. 원료와 실을 생산하는 업스트림(Up Stream)에는 섬유공학을 전공한 연구자가 필요하고 의류를 생산하는 다운스트림(Dowm Stream)에는 저렴한 인건비와 창의적인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은 40년간 인건비 올리는데는 열성적이었지만 연구자와 디자이너 육성에는 소극적이었다.
현재 섬유·패션 산업에서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다운스트림 분야는 유능한 디자이너를 보유한 글로벌 섬유·패션 대기업과 이들이 선택한 생산기지국이 장악하고 원천 기술을 보유한 글로벌 섬유·패션 대기업이 업스트림까지 꽉 잡고 있기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가장 돈이 안되는 미들스트림(Middle Steam) 뿐이다.
미들스트림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업과 다운스티림을 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섬유공학도를 패션 디자이너를 길러야 하며 브랜드 만들어 관리하는 마케팅에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섬유·패션 업계에서 대기업 출연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영세한 기업이나 글로벌 섬유·패션 업체의 하청업체는 연구자, 디자이너를 길러낼 수 없고 또 필요도 없다. 게다가 브랜드를 만들어 마케팅에 적극 나설 비용도 마련하기 쉽지 않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섬유·패션 대기업이 출연하면 미들스트림에서 벗어나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으로 가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대기업이 없는 현재 상태로는 미들스트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도 없다.
가능성이라는 도전이 없는 산업에는 비전이 없다. 섬유-패션업계에 대한 청년들의 외면은 젊은 인력들의 문제가 아닌 희망의 빛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업계 종사자들의 문제인 만큼 그동안 러닝머신 위를 제자리 뛰기를 벗어나 미래 성장성 등 비전 제시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