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전시행정이 무리한 계약 부채질… 추석 전 투입 강행
  • ▲ 프리미엄 고속버스 내부.ⓒ국토부
    ▲ 프리미엄 고속버스 내부.ⓒ국토부

    국토교통부가 '프리미엄(초우등형) 고속버스' 출시 지연에 대한 책임을 차량 납품업체에 묻기로 했지만, 현대자동차는 계약서 특약사항 덕분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노조 파업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예외적인 면피성 특약을 두어 고객 서비스를 외면했다는 논란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국토부의 전시행정이 화근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는 지난 8월23일 프리미엄 고속버스의 운행을 잠정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현대차 파업 악화로 차량 납품·인수에 차질을 빚으면서 추석 예매를 불과 하루 앞두고 예매를 전격 취소하는 촌극을 벌였다.
    국토부는 24년 만에 새 고속버스 상품을 선보이며 홍보에 박차를 가했던 만큼 책임 소재를 따지겠다고 밝혔다. 국토부 관계자는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고속버스조합)에 정부 신뢰도 문제를 제기하고 (버스 공급계약을 맺은 현대차에) 법적 조처를 하라고 (주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속버스조합은 현대차에 납품 지연에 따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처지인 것으로 드러났다. 현대차와 발주계약을 맺을 때 노조 파업으로 말미암아 납품하지 못할 때는 책임을 묻지 않기로 특약조항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 고속버스운송업체 관계자는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처음 운행하는 만큼 고장 등에 따른 사후서비스에 대해 책임을 확실히 하고 싶었다"며 "당시 계약서에 노사분규 관련 내용이 있어 빼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기자단 시승행사도 진행하며 홍보에 열을 올렸던 국토부로선 책임 소재를 따져 추락한 정부 신뢰도를 수습한다는 복안이었으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된 셈이다.

    현대차는 별도의 손해배상 책임은 피하게 됐다. 다만 계약 당시가 노조 파업이 사실상 예고된 상태여서 고객 피해가 우려됐음에도 이를 외면했다는 지적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현대차에 따르면 노조는 지난 7월5일 올해 임금협상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제13차 협상이 끝난 직후였다. 고속버스조합과 현대차가 발주계약을 맺은 시점은 7월 초다. 현대차 한 관계자는 "노조의 임협 결렬 선언은 예고됐던 측면이 있다"며 "선언 이후 조정신청을 하면 열흘 후에는 합법적으로 파업할 수 있다. 일련의 과정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의 파업 일정에 따른 것"이라고 귀띔했다. 현대차가 7월19일 1차 부분파업 사태를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큰 대목이다. 특히 현대차는 상용버스 공급계약을 맺을 때 통상적으로 노조 파업에 관한 특약은 추가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버스는 통상 납기 기한이 6개월쯤으로, 계약할 때 노조 파업과 관련한 특약 사항은 넣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파업을 감지하고도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해 화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차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가 지난해 10조여원에 한전부지를 사들이며 통 큰 투자를 했지만, 이후 협력업체에는 단가 인하를 요구하는 등 소위 갑질을 하면서 올해는 임협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일찌감치 제기됐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고속버스운송업체 관계자는 "(계약 당시 현대차는) 한 달이면 차량을 출고할 수 있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의 전시행정이 무리한 계약을 부채질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국토부는 그동안 줄곧 프리미엄 고속버스 운행을 추석 명절에 맞춰 개시하겠다고 밝혀왔다. 고속버스조합은 애초 발주물량 27대 중 15대를 기아자동차와 계약했다가 현대차와 추가 계약을 맺었다. 기아차가 뒤늦게 전기과부하 문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버스 공급에 차질이 예상됐음에도 추석에 맞춰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선보이려다 보니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