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산책] Merkley & Partners 대행·코헨 형제 감독 '이지 라이더' 메르세데스벤츠 AMG 로드스터, 스피드 그리워하는 미국 베이비부머 시장 겨냥


미국은 자동차왕국이다. 현대 자동차의 기원을 어디에 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자동차가 대중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분명 헨리 포드가 바로 미국에서 대량생산 방식을 도입하면서부터였다.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토반이 전략상 매우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을 깨달은 미국은 1950년대 본격적으로 미국 전역을 아우르는 하이웨이와 프리웨이를 건설하고 정비했다. 여기에 대도시 주변에 교외 주택가가 발달하면서 드라이브인시어터, 대형 쇼핑몰, 드라이브인 패스트푸드 식당 등이 출연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미국의 자동차 문화가 정착했다. 

차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이 나라의 틈새시장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은 일본제 자동차였다. 독일(폭스바겐 AG, 1949년 수입 개시)이나 영국(1950년대 오스틴 힐리, MG, 재규어 수입 개시) 차는 워낙 일찍부터 수입을 시작한 데다가 포드 자동차 등이 일찍이 유럽 차와 합병하거나 유럽에 공장을 세운 일이 있어 별 거부감이 없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쳐들어온’ 경제적인 일본 차를 받아들인 것은 고육지책이었을 뿐, 큰 차에 대한 향수를 미국인들은 그러나 쉽게 버리지 못한다. 특히 1946~64년 사이 태어난 베이비부머들은 더욱 그렇다. 이들은 웬만한 소형차 배기량을 훨씬 웃도는 할리데이비슨 바이크를 타고 일리노이 주에서 캘리포니아 주까지 66번 국도를 달리던 사람들이다. 

미국의 ‘수입차’ 마케터들은 그런 미국인들의 마음을 얻으려 애쓰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더욱이 이제 중년이 지나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 베이비부머들은 아직 포드 머스탱, 쉐보레 카마로, 닷지 챌린저 같은 머슬카(muscle car)를 그리워하고 있다. 미국 텔레비전 채널들만 봐도 창고 안에 버려진 1950-60년대 모델 자동차들을 복구하고 튜닝하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인기다. 매끈하게 잘 빠진 신형 독일차, ‘여자들이나 탈 것 같이’ 생긴 그런 ‘아담한’ 일본 차를 어떻게 가죽점퍼를 입고 헤비메탈을 듣던 베이비부머 ‘아재’들에게 판단 말인가? 특히나 너무나도 미국적이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은 이해하기도 힘든 슈퍼볼 경기 기간에? 

  • ▲ 유튜브 화면 캡처
    ▲ 유튜브 화면 캡처


  • 미국에서도 가장 광고단가가 비싼 슈퍼볼 기간, 메르세데스-벤츠 AMG는 미국역사상 최고의 로드무비 중 하나로 꼽히는 ‘이지 라이더(Easy Rider)’의 추억을 빌리기로 했다. 코헨 형제(남매?)가 감독한 이 광고는 한 ‘아재’가 구식 바에서 낡은 쥬크박스로 스테픈울프(Steppenwolf)의 ‘본 투 비 와일드(Born to be Wild)’를 트는 것부터 시작된다. 헤비메탈의 원조라고도 알려진 이 노래는 영화 이지라이더에서 사용된 이후 미국 바이커들의 ‘주제곡’이 되어버렸다. 잠시 후 한 ‘아재’가 황급히 바에 들어오며 감히 누군가가 이들의 바이크들을 가로막았다고 전한다. 그 건방진 차주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몰려나간 베이비부머 아재들은 멋지게 늙은 영화배우 피터 폰다가 영화 이지 라이더에서 입었던 바로 그 가죽 슈트를 입고 나타나 AMG GT 로더스터에 올라타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다. 

    건방진 차주를 혼내주러 몰려나온 아재들과 아줌마들은 너무도 멋있는 광경에 ‘아직 멋지네(Still looking good)’이라고 중얼거릴 뿐 지켜보기만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이 AMG GT 로드스터는 머슬카를 그리워하는 베이비부머들 취향에 딱 맞는 차로, 제로백이 4초가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분명 누가 봐도 멋지지만, 마케터들이 ‘밀레니얼 세대’로 분류한 젊은 층에겐 그림에 떡이다. 두둑한 통장에 시간마저 남아돌아도 왕년에 잘 나가던 시절처럼 바이크를 다시 타기엔 어쩐지 껄끄러운 그런 터프한 아재들에게 오히려 맞는 차다. 실제 최근 호평을 받은 럭셔리 스포츠카 대다수는 젊은이들이 아닌 베이비부머들을 겨냥해 마케팅 되고 있다. 지난 해 칸 라이언즈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필름 부문에서 수상했던 아우디의 필름광고 ‘사령관(Commander)’이 달탐사선을 쏘아 올리던 미국 황금기에 대한 베이비부머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R8 모델을 알린 것과 매한가지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어 새로운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하면서, 미국 내에서는 무엇이 미국적인 것이고 무엇이 아닌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 논의에 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일단 미국에 무언가를 팔려고 하는 사람, 특히 자동차와 같이 미국이 ‘종주국’이라 생각되는 상품을 팔려 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미국인들이 공유하는 추억이나 역사와 같은 정서야말로 틀림 없이 미국적인 것이다. 특히 그것이 미국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시절의 추억이라면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