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격제 시행 일주일, 주유소에 원성 쏠려소매점에서 가격변동 리스크 다 떠안기 어려워단순 폭리 프레임보다 구조적 맹점 우선해야단가 불확실성 키우는 사후 정산 제도도 발목27일 새 최고가 산정 기준 및 시장 반응 촉각
  • ▲ 17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연합뉴스
    ▲ 17일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연합뉴스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로 국제 유가가 요동치자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이어졌다. 개인 승용차부터 운수업까지 주유소 가격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유가가 오를 때는 주유소 가격표가 하룻밤 새 오르지만 반대로 규제가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인하 폭은 더디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주요 외신들도 이 현상을 조명하고 있다. 오타고 대학교의 경제학자 무라트 웅고르는 RNZ와의 인터뷰에서 "원가가 오를 때는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며칠 내로 재빨리 가격을 올리지만, 원가가 내릴 때는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싼 주유소를 찾아 나서지 않는 심리를 이용해 마진을 챙긴다"고 꼬집었다. 실제 뉴질랜드 상업위원회의 분석에 따르면, 주유소들이 가격 인하를 인상 속도만큼만 빠르게 반영해도 연간 1500만 달러의 소비자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경제학계에서 이른바 '로켓과 깃털' 효과라 부르는 이 비대칭적 가격 전이 현상은 글로벌 석유 유통 시장의 고질병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국내 상황도 로켓과 깃털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정부는 중동 사태로 급등한 유가를 잡기 위해 정유사 공급가에 30년 만에 최고가격제를 적용했다. 하지만 시행 일주일이 지난 현재, 정유사 공급가는 리터 당 109원가량 인하(1724원)되었지만 실제 주유소 소매가 인하 폭은 60원대에 머물고 있다.

    현장 주유소에서는 "먼저 들여온 재고를 소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하지만 유가 상승과 동시에 올라간 기름값을 고려하면 정유 4사가 지배하는 독과점 된 시장 구조와 주유소 간의 경쟁이 결합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상황에 정부는 행정력을 동원해 시장 압박에 나서고 있다. 범부처 합동 점검단을 꾸려 암행 단속과 함께 이른바 착한 주유소와 나쁜 주유소를 가르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처럼 담합 프레임을 씌운 행정력 동원과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한다. 주유소들의 더딘 가격 인하 이면에는 폭리로만 보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 주유소의 평균 마진은 2%가 채 안 되는 수준"이라며 "여기에 1.5%에 달하는 카드 수수료와 인건비, 수송비 등 고정 부대 비용을 제외하면 실제 주유소가 챙기는 이익은 크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1724원이라는 정부 통제 공급가에 이런 필수 비용들이 더해져야 하므로 소비자가 체감하는 소매가와는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유가 변동기에 매입 단가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사후 정산 제도도 주유소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나중에 정유사로부터 받을 단가가 얼마일지 모르는 불확실성 속에서 가격 결정권이 가장 적은 주유소가 모든 리스크를 떠안고 가격을 내릴 순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전국 주유소들이 1~2원 단위의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중에 단속 위주의 정책은 오히려 시장 경쟁을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 ▲ 한 주유소에 붙은 안내문.ⓒ뉴데일리
    ▲ 한 주유소에 붙은 안내문.ⓒ뉴데일리
    한 주유소에 붙은 안내문은 이런 현장의 고충을 보여준다. "저희 주유소는 2월 재고가 소진되어 어제 입하된 기름이라 가격이 상당히 높습니다. 아직 (저렴한) 재고가 있는 다른 주유소에 가시는 것을 권장해 드립니다. 가격이 안정화되면 다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결국 현장 단속과 공급가 지정보단 유통망의 투명성을 높이고 시장의 자율 경쟁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는 분위기다. 오는 27일 발표될 새로운 최고가격 산정 기준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단기적인 최고가격을 예고함으로써 소매자가 물량 조절을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정유사의 손실 보전을 병행하고 있는 만큼, 유류세 인하, 비축유 방출, UAE 등 원유 공급망 확대와 같은 거시적인 수급 대안들이 함께 맞물려야 로켓과 깃털 현상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