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대통령 독대시 경영권 승계 관련 대화 없었다는 사실만 부각미전실 아닌 삼성전자 소속…합병 등 계열사 업무 안해대통령 독대 당시 '청탁-대가' 합의 없었다 대답'승마-재단' 실무진 결정…불미스러운 일 막지 못해 아쉬워
  •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데일리DB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피고인신문이 이틀 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 부회장이 공소사실과 관련된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서 공판은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문이 기존 내용을 확인하는 절차로 진행되면서 공소사실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언은 찾을 수 없었다. 되려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대화가 없었다는 사실만 부각되면서 특검의 어깨는 무거워졌다.

    이 부회장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김진동 부장판사)의 심리로 진행된 50~51차 공판에서 나섰다. 지난 2일 오후 시작해 3일 점심께 종료된 셈이다.

    그는 ▲미래전략실과의 관계 ▲삼성그룹을 대표해 대외활동에 나선 배경 ▲삼성물산 합병에 대한 입장 ▲삼성생명의 금융지주사 전환 추진 경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진행한 세 차례의 독대 내용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을 인지했는지 여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통화한 이유 ▲최순실을 인지한 시점 등 1000여 개의 질문을 받았다.

    특히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과의 관계와 그룹 총수로써 역할 및 임무, 경영권 승계 과정을 집중 추궁받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장시간의 신문에도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는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였다. 더욱이 특검의 질문이 길어지자 '질문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재질문을 요청하는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미전실 아닌 삼성전자 소속…계열사 업무 개입 안해

    이재용 부회장은 그룹의 전반적인 업무에 개입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다며 "처음부터 삼성전자 소속이었고, 맡은 업무 역시 삼성전자와 해당 계열사에 관한 것이 95%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특검은 2014년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와병 이후 이 부회장이 대외업무에 적극 나선 점을 들어 사실상 총수역할을 대행했다고 주장했다. 경영권 승계가 삼성의 중요한 현안이었단 점을 강조하기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그룹을 대표해 참석하는 대외업무가 늘었고 미전실의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본 업무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경영과 관련해서도 "최 전 실장이 실권을 갖고 있었다"며 "필요에 따라 정보를 공유받고 조언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 부회장은 "회장님의 와병 후 다른 계열사 업무에 대한 관심이나 책임감은 늘었지만, 와병 전후로 각 계열사 및 미전실과의 관계가 크게 변화된 것은 없다"며 "각 사에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깊이 고민해 본 적도 없다"고 일축했다.

    ◆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계열사 주도로 진행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서도 양사 경영진이 주도로 진행된 사안이라 말했다. 자신은 삼성전자 소속으로 해당 업무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어떤 사업을 하고 있었고 업계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며 "양사 경영진과 미전실의 주도로 진행됐다. 제가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다만 삼성물산 주식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합병에 적극 나선 이유에 대해서는 "삼성 임원의 한사람으로서 합병 성사를 위해 돕고 싶었다"며 "국민연금이 삼성 모든 계열사의 최대주주인 상황에서 그들의 요청을 거절하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엘리엇 사태가 발생한 것과 관련해서는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사를 밝혔다고 진술했다. 다만 최 전 실장을 포함한 미전실 관계자들의 권유로 합병에 따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 대통령 독대 '부정한 청탁-대가관계 합의' 없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의 경영권 승계 과정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대가관계 합의를 진행했다는 주장에 '사실과 다르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특히 세 차례의 독대 모두 대가관계를 맺을 분위기가 아니었다며 '대통령의 질책을 받고 지시를 받는 자리에 가까웠다'고 회상했다.

    그는 다른 기업들을 비춰볼 때 삼성도 독대 전 기업현안, 투자계획, 해외진출 계획, 애로사항 등을 준비했을 거라는 특검의 주장에 '전혀 아니다'며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또 실무 총 책임자인 최지성 전 실장이나 장충기 전 사장으로부터도 이같은 내용을 전달받지 못했다며 '승마지원과 관련된 내용이 독대의 절반을 차지했다'고 진술했다.

    더욱이 메르스 관련 삼성서울병원 감사 조치와 면세점 신규 면허 취득 등이 안종범 수첩에 기재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메르스사태의 경우 사회적 이슈였기 때문에 대통령에게 사과의 말씀은 드렸지만 후속조치 등의 언급은 없었다"며 "금융업의 경우 잘 알고 있는 내용도 아니라 함부로 꺼낼 수 없었다. 안 전 수석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면담 때는 제가 있었다"고 잘라 말했다.

    ◆ '승마지원-재단출연', 최지성 실장 결재로 진행돼

    이 부회장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단독 승마지원과 재단출연 등에 대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지 못했다고 항변했다. 특히 승마지원과 관련된 질책을 받았음에도 직접 챙기지 않았다는 지적에는 '최 전 실장이 실권을 갖고 진행하던 일이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다만 "정유라 승마지원이 이렇게 커질지 상상도 못했다"며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 최 전 실장은 자신의 피고인신문에서 재단출연을 포함한 승마지원이 자신의 책임하에 결정된 일이라고 증언해 눈길을 끌었다. 이건희 회장 와병후 경영권 전반을 책임지던 상황에서 후계자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으려 했다는 주장이다.

    최 전 실장은 "이 부회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승마지원의 개요 등 단순한 사항을 간략히 말해 준 적은 있지만, 정씨에 관한 이야기는 끝내 하지 않았다"며 "최씨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부회장에게 보고해 봤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는 시작하는 후계자가 구설수에 휘말리는 것이 옳지 않아도 판단했다"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만약 부회장에게 보고했다면 부회장이 스톱이라도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도 있다"고 말했다.

    ◆ 작심발언 나선 '이재용'…"소중한 시간 일하지 못해 안타깝다"

    이 부회장은 작심한 듯한 발언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검찰 및 특검조사에서 말하지 못한 생각이나 감정, 박 전 대통령과의 독대 내용을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진술하며 자신의 의사를 적극 표현한 셈이다.

    먼저 회사의 장기적인 미래를 위해 노력해야할 시점에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관돼 안타깝다는 심정을 수 차례 내보였다. 정치권력이나 외부 세력에 얽메이지 않고 사업에 집중하고 싶은데, 자신의 불찰로 이같은 상황이 발생했다는 자책이다.

    안종범 수첩 등을 들어 독대 상황을 유추하는 특검을 향해서는 '독대에는 제가 있었습니다'고 받아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2016년 2월15일 진행된 세 번째 독대에서 박 전 대통령이 JTBC 보도에 불만을 드러낸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그는 "대화 말미에 JTBC 보도가 거론됐다. 대통령께서는 '홍석현 회장이 외삼촌이지 않느냐. 중앙일보 자회사인 JTBC의 뉴스프로그램이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다'고 말씀하시며 이적단체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다"며 "굉장히 강한 불만을 얘기하시길래 제가 계열사 분리된 지 오래고 독립된 언론사며 손윗분이기 때문이라고 (뭐라 말하기) 힘들다는 뉘앙스를 보였더니 더 강한 불만을 보이셨다"고 증언했다.

    이 부회장이 이같은 사실을 알린 것은 부정한 청탁이 있었다는 특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함이다.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부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선택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의 연락을 문제 삼는 것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특검이 공개한 것보다 훨씬 많은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나눈 대화 대부분이 가족 문제와 관련된 이야기라는 주장이다.

    이 부회장은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주장하는데, 생각한 적도 없고 필요해도 대통령께 부탁할 생각도 안했다"며 "회장님이 생존해 계신 상황에서 아들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을 한다는 건 도리가 아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