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VS 반대 명분은 모두 '환자'…"결국 밥그릇 싸움"
  • ▲ 성분명처방 제도 도입을 놓고 의료계와 약계가 다시금 격돌하고 있다. 약사회 조찬휘 회장(왼쪽), 의사협회 추무진 회장. ⓒ연합뉴스
    ▲ 성분명처방 제도 도입을 놓고 의료계와 약계가 다시금 격돌하고 있다. 약사회 조찬휘 회장(왼쪽), 의사협회 추무진 회장. ⓒ연합뉴스


    성분명처방 제도 도입을 놓고 의료계와 약계가 다시금 격돌하고 있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나 반대하는 입장에서나 환자를 위한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밥그릇싸움이라는 지적이다.


    14일 의약계에 따르면 최근 성분명처방 도입 공방이 재점화되는 모습이다. 대한약사회는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 중인 세계약사연맹(FIP) 행사를 '성분명처방' 제도화의 모멘텀으로 삼고 있다. FIP는 바이오시밀러 등을 포함해 성분명처방과 대체조제를 권고하는 선언문을 채택했고, 성분명처방 정책 방향 등을 논의하는 콘퍼런스를 준비했다.


    대한약사회 조찬휘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성분명처방을 시행하면 건강보험재정에서 약가 지출을 줄이고 투약 시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보험재정 안정화, 환자안전, 소비자 선택권 확대, 의약품 리베이트 근절 등 다양한 이유로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프랑스 등 27개 국가에서 이미 의무화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FIP의 조사결과 확인됐고 그 추세는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의료계는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 성명을 내고 "약사회는 성분명 처방 등 망언을 즉각 철회하라"며 "약 처방은 의사가, 조제는 약사가 맡는 원칙은 의약분업제도 근간이다. 대체조제 활성화, 성분명 처방 등은 의사 진료 판단을 무시하고 환자 위해를 키울 수 있다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약사회도 성명을 통해 즉각 되받아쳤다. 약사회는 "동일성분조제와 성분명 처방은 의사는 환자 치료에 최적의 치료약 성분을 제시하고 약사는 의약품과 성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환자는 자신이 복용할 의약품을 선택하는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단체의 주장은)국민이 아닌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증거"라면서 "리베이트 수수나 중단하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의료계와 약계가 성분명처방에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명분으로 환자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밥그릇싸움이다. 성분명처방에 이토록 의료계가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약 처방 방식에 따라 의약품 선택의 주도권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


    특정 제품명을 콕 집어 처방내리는 현재의 '제품명처방' 방식에서는 의사가 처방을 내리면 약사는 처방전 그대로 특정 제품의 약을 조제하도록 돼 있다. 처방 의약품이 없을 경우 동일 성분의 또다른 의약품으로 조제해주는 '대체조제' 제도가 있지만 사전·사후에 처방 의사에게 의무 보고해야 하는 탓에 제도 안착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약사회 주장대로 성분명처방이 이뤄지면 의사에게는 의약품 선택권이 없어진다. 같은 성분의 다양한 의약품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은 약사의 몫이 된다. 제약사와 의사 간 불법 리베이트 고리가 끊기지 않는 이유도 바로 이 처방 주도권 탓이다.


    오랫동안 정부와 국회에서도 제도 논의를 이어왔지만 직능 간 첨예한 대립 탓에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성분명처방은 환자에게 의약품 선택권을 주는 등 소비자 편의성을 증대하는 장점이 있다"면서도 "다만 처방방법의 결정은 환자 안전과 편의 증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므로 이해관계자간 협의를 통해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환자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성분명처방에 대한 입장을 내놓기를 꺼리고 있다. 의료계와 약계가 밥그릇싸움을 하면서 환자를 볼모로 내세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비자단체 한 관계자는 "의료계와 약계가 주장하는 성분명처방의 장단점은 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면서도 "그러나 시민단체들도 어느 한편에 서서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없다. 환자는 명목상의 이유에 불과하고, 속내는 자신들의 밥그릇을 챙기기 위함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