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업계, 부동산 경기 호황에 사상 최대 실적 '랠리'"부실완충력·유동성 강화로 리스크 관리해야 할 시점"
  • ▲ 자료사진.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부동산신탁업계는 최근 몇 년간 지속된 부동산 경기호조에 편승해 2015년 이후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서 내년 이후 부동산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되면서 이 같은 성장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나 성장세의 발판이 된 차입형 토지신탁 수주가 사업장 관리 부담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조짐이 보이면서 사업장별 건전성 및 유동성 관리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23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부동산신탁업계는 2015~2016년 연 평균 총자산 성장률 27.9%, 순이익증가율 60.0%를 기록하는 등 유례없는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 역시 전년대비 112.6% 증가한 3933억원을 기록하며 2015년에 이어 사상 최대실적을 다시 경신했다.

    이 같은 폭발적인 성장의 배경에는 부동산 경기호황이 있다. 부동산 경기는 신탁사의 수주 규모와 부실 사업장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다. 경기가 호황일 때는 높은 분양률에 따른 개발사업 이익이 증가하고 시공사 부도 위험이 감소하지만, 불황일 때는 반대다.

    2015년과 2016년 주택 인허가 실적은 각각 76만5000호·72만6000호로 1990년(75만호)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고, 주택 착공실적은 각각 88만2000호·105만9000호를 기록했다.

    주택공급 확대로 개발사업이 증가하면서 부동산신탁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공급물량 증가에도 미분양주택이 6만호 안팎 수준에 머물면서 부동산시장 호조세가 지속된 점도 신탁업계 실적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부동산 개발방식의 하나로 차입형 토지신탁이 각광을 받으면서 신탁업계는 성장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공사비 등의 자금을 신탁사가 우선 조달하고 조달한 자금에 대한 이자와 높은 수준의 신탁 수수료(통상 4~4.5%)를 받는 것이다.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해 신탁사업을 진행하는 관리형 토지신탁사업보다 리스크가 많지만 사업이 성공하면 그만큼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 15.5%에 그쳤던 차입형 토지신탁 신규수주 비중은 2016년 50.6%까지 뛰었다. 과거에는 △관리형 토지신탁 △분양관리와 처분 △담보신탁 등 개발사업의 '보조역할'을 담당했지만, 차입형 수주를 확대하면서 개발사업을 직접 수행하게 되자 수주잔고가 크게 증가하고 수익성도 대폭 개선됐다.

    부동산신탁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는 한국토지신탁 경우 올 3분기까지 성과만으로도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한 지난해 실적을 넘어섰다.

    연결 기준 3분기 누적 매출은 1845억원으로 지난해 연간 실적보다 3.7% 많다. 영업이익은 1259억원·순이익은 1352억원으로 각각 10.5%, 57.4%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매출과 영업이익·순이익은 각각 45.6%, 54.5%, 113% 불어났다. 영업이익률은 68.3%로 4%p 뛰었다.

    실적 추이를 고려하면 10~11월 중에 매출이 2000억원을 넘어섰을 것으로 관측된다. 증권가에서도 한토신의 올해 매출이 2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1년 문주현 회장이 이끄는 MDM그룹에 인수된 후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한국자산신탁도 지난해 성과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대실적을 목전에 뒀다.

    한자신의 연결 기준 3분기 누적매출은 157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6.8%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173억원·순이익은 894억원으로 각각 77.7% 늘었다. 영업이익률은 74.3%로 4.6%p 증가했다.

    문제는 내년 이후다. 연말부터 향후 1~2년은 입주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해 조정기가 예상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부동산 규제책을 쏟아내고 대출을 옥죄면서 시장을 냉각시키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고, 주택공급 감소는 곧 신탁사 신규수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나 양적·질적 성장의 베이스가 된 차입형 토지신탁의 경우 사업진행 과정에서 대여금 회수와 투입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리스크 익스포저가 신탁계정대 장부금액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사업장에 직접 자금을 투입하게 되면서 신탁계정대가 빠르게 늘어 재무 레버리지가 확대됐고, 대손위험과 유동성 위험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정효섭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최근 수년간 신탁업계가 보여준 고속 성장은 수주 증가에서 사업 재투자, 역량 제고라는 선순환이 있었지만, 높은 위험을 부담한 대가로 얻은 것"이라며 "차입형 토지신탁은 성장과 수익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기회를 줬지만, 이면에는 신탁계정 대여금과 차입부채의 급격한 증가, 부실완충력 지표 저하 등 더 많은 리스크 부담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향후 부동산 경기가 하락 추세로 접어들면 신탁업계의 위험관리능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업계에서는 부실 완충력과 유동성 강화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금투입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체적인 유동성이 부족하거나 투입자금 규모가 자기자본 대비 적정수준을 넘어설 경우 정상적인 영업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우수한 완충력은 대외적으로 수주 경쟁력을 차별화할 수 있고, 내부적으로는 수주 가능 여부를 판단할 때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는 만큼 수주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 운영하기 위해서는 완충력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것이다.

    정효섭 선임연구원은 "성장일변도의 전략에 집중하다보면 리스크 관리에 소홀해질 수 있다"며 "이제는 수주 사업장을 관리해야 하고, 주택시장 침체로 인한 수주 감소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곳간을 채워 기초체력을 정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