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속도·경제성·투명성 등 효율성에 관심↑불안한 사업진행·부동산 경기침체 '리스크'
  • ▲ 대전 용운주공아파트 조감도. ⓒ한국토지신탁
    ▲ 대전 용운주공아파트 조감도. ⓒ한국토지신탁


    "과거 조합이나 시공사 지원으로 추진하던 사업방식이 최근에는 잘 운영되지 않거나 여러 변수로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신탁사에 맡겨 사업을 빠르게 진행하는 신탁 방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시장 반응이 좋은 것을 감안하면 신탁사가 주도하는 사업은 늘어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에서 신탁사들 입지가 공고해지고 있다. 2015년 수주액이 8000억원대로 뛰더니 2016년에는 1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빠른 사업속도와 경제성·투명성 등의 장점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토지신탁은 대전 동구 용운주공아파트 재건축사업 사업대행사로 지정 고시됐다. 그동안 부동산신탁사가 500가구 미만 소규모 단지를 수주한 적은 있었지만, 2000가구가 넘는 대단지 재건축사업을 수주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54개동·1130가구 규모의 이 단지는 18개동·2244가구로 탈바꿈될 예정이다. 사업비는 4200억원에 달하며, 시공은 대형건설사 중 한 곳인 대림산업이 맡았다.

    이에 앞서 한토신과 함께 부동산신탁업계 '투톱'을 형성하고 있는 한국자산신탁은 지난 1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 주민총회에서 신탁사로 선정됐다. 조합방식에 비해 절차가 간편해 사업기간을 2년 이상 단축할 수 있어 주민 96.3%가 신탁방식 재건축에 찬성했다.

    여의도 공작아파트도 재건축을 신탁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 아파트의 재건축사업 추진위원회가 최근 신탁방식 재건축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제안서를 받은 결과 KB부동산신탁이 단독으로 입찰에 참여했다.

    추진위는 이달 주민투표를 실시, 신탁사를 최종 선정할 계획이다. 또 여의도 광장아파트와 대교아파트도 지난달 신탁사 대상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신탁방식 재건축에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신탁방식 재건축은 부동산신탁사가 아파트 소유주로부터 권리를 넘겨받아 재건축 사업을 추진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3월부터 신탁대행 방식으로 부동산신탁사가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단독시행이 가능해졌다.

    신탁사 재건축 방식은 기존 '조합설립→건설사 수주→책임준공' 방식에서 벗어나 '조합설립 생략→자금신탁(자금)→건설사(단순시공)' 방식으로, 조기진행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로 추진위 구성과 조합설립인가 단계를 거치지 않아 사업기간이 최대 1년까지 단축되는 데다 정비·설계·시공을 맡을 시공사 선정도 초기에 가능하다.

    또한 조기에 자금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로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따르는 불확실성도 사라진다. 건설사와는 단순도급 형태로 계약을 맺기 때문에 미분양 위험을 반영해 공사비를 높게 책정하는 부담도 피할 수 있다. 조합방식에 비해 공사비를 10% 이상 절감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동안 정비사업에서 조합이나 시공사 등 여러 주체간 갈등과 유착관계 등으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엎어진 경우가 많았는데, 조합이 신탁하면 신탁사가 시행자 역할을 맡아 사업비 조달에서 분양까지 모든 과정을 일괄 책임지게 된다.

    이로 인해 그간 시행 주체의 부족한 자금력·전문성 미비 등의 문제로 사업 진행이 지연됐던 사업장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탁사들은 올해로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만큼 시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초과이익 환수제가 내년에 부활할 경우 조합원 1인당 평균 이익이 3000만원을 넘으면 초과금액의 최고 50%를 분담금으로 내야 한다. 재건축을 통해 얻은 수익을 지켜야 하는 재건축 조합원 입장에서는 사업 속도가 빠른 신탁방식 재건축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것.

    내년 부활하는 이 제도를 피하기 위해서는 올 연말까지 관리처분 신청을 해야 한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신탁사가 사업자로 나서게 되면 조합설립 없이 시공사 선정과 건축심의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으며 시공사는 중도금 대출을 받지 않아도 돼 여러모로 장점"이라며 "현재 재건축을 추진 중인 단지에서는 초과이익 환수제 폭탄을 피하기 위해 신탁사와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신탁사가 수주한 정비사업은 △대한토지신탁 인천 계양구 신라아파트(282가구) △코람코자산신탁 경기 안양시 성광호계신라아파트(203가구)·인천 동구 송림5구역(470가구) △코리아신탁 안양시 진흥로얄아파트(345가구)·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성아파트(121가구) 등이다. 한성아파트의 경우 서울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신탁방식 재건축이 시공사 선정 직전까지 진행됐다.

    전체 주택시장에서 신탁 시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면서 신탁사들의 실적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 통계를 분석한 결과 11개 신탁사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은 3627억원으로, 2015년 3분기에 비해 65%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이들 신탁사의 신규수주는 3분기까지 8182억원으로, 4분기까지의 수주액이 집계되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11개사의 신규수주는 2011년부터 꾸준히 증가하면서 3000억~4000억원대까지 올라섰다가 2015년 8000억원으로 크게 늘면서 전년대비 77.6% 급증한 바 있다.

    B증권 건설 담당 애널리스트는 "부동산개발과 관련한 자금조달, 신용관리, 사업관리를 수행하는 데 있어 신탁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며 "부동산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자본력과 역량을 갖춘 신탁사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신탁방식 재건축은 전체 소유주의 75% 이상의 동의를 받고 전체 토지의 3분의 1 이상 토지신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는 점이 난제로 꼽힌다. 보통 오래 거주한 주민들 중에는 재건축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상당수 주민이 반대하기 마련이다.

    중견건설 C사 관계자는 "종전에 신탁사가 다른 사업에서 하던 방식대로 위탁자 겸 수익자를 사업자로 해서 진행하기에는 정비사업에 토지 등 소유자가 너무 많다"며 "특히 재건축의 경우 토지소유자 전체회의의 의결을 받아야 사업 추진이 가능한 만큼 신탁사는 이 같은 전체회의 운영에 대한 노하우를 집적시키는 것이 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경기침체도 문제다. 이미 정부의 부동산 대책과 집단대출 규제로 부동산 경기 둔화가 이미 감지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이 지난달 1년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했으며 추가로 2~3차례 더 올릴 것으로 예고하기도 했다.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대출 이자부담도 커져 사업장이 부실화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 과거 이른바 '저축은행 사태'를 촉발시킨 원인도 부동산 PF 관련 우발채무였다.

    D신용평가 관계자는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실사업장이 늘어나면 신탁사가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며 "리스크가 커진 상태인 만큼 무작정 수주를 늘릴 경우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