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대책 재건축 연한 기준 완화, 집값 상승 결정적 요인"기준 재조정해 재건축 추진에 따른 집값 불안 잠재울 필요"수급불균형 등 연한 강화 따른 부작용 발생 우려 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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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준공 30년차를 맞이하게 되는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8단지. ⓒ뉴데일리 DB
재건축 연한이 40년으로 늘어나게 될까. 정초부터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재건축 연한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재건축 연한을 늘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지만, 시장에서는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 집값이 치솟고 있는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단기적 효과는 있을 것으로 판단하지만, 공급 위축과 같은 부작용이 장기적으로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부동산114에 따르면 1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 변동률은 0.57%로, 지난해 8·2대책이 나오기 직전인 7월 마지막 주(0.57%) 수준으로 돌아갔다.
서성권 부동산114 선임연구원은 "대출 규제, 양도소득세 중과 등으로 다주택자들에 대한 압박이 지속되자 소위 '똘똘한 한 채'로 투자수요들이 집중되면서 강남권 아파트값 상승 랠리가 지속되고 있다"며 "똘똘한 한 채 중에서도 지역 랜드마크 단지 격인 잠실주공5단지, 개포주공, 압구정현대 등 재건축 아파트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재건축 아파트는 1.17% 상승하면서 2006년 11월10일 주간 변동률 1.99%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재건축 단지의 상승세는 2014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주택 경기 부양책으로 9·1대책을 통해 재건축 허용연한을 기존 40년에서 30년으로 줄인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제도 변경으로 최소 2년에서 최장 10년까지 재건축 허용연한이 단축된 강남권 아파트 단지(1987년 이후 준공)에 투자세력이 대거 몰리면서 인근 집값 상승까지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종전까지는 준공시점별로 연한이 제각각이었다. 1981년 이전 준공 단지는 일괄적으로 준공 후 20년 기준을 적용받았고, 1982~1991년 사이에 지어진 단지는 준공연도에서 기준연도를 뺀 숫자에 2를 곱하고 여기에 기본 22년을 더해 재건축 연한을 정했다. 1992년 이후 준공 단지에는 연한 기준 40년을 일괄적으로 적용했다.
가령 1942년 준공했다면 기본 22년에 4년을 더해 26년이 되는 셈이다. 이에 따라 1987~1990년 준공된 아파트는 재건축 가능 연한이 2~8년 줄었고, 1991년 이후는 10년 단축됐다.
이때부터 강남권을 중심으로 재건축 사업이 탄력을 받았으며 그 열기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동산114 분석 결과 2014년 말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간 서울 재건축 아파트는 28% 올랐고, 이 중 강남3구(강남·서초·송파) 단지는 29% 뛰었다. 이 기간 일반 아파트는 13% 오르는데 그쳤다.
올해도 준공 30년차를 맞아 재건축 연한을 채우게 된 단지들을 중심으로 호가가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준공 30년차에 접어드는 곳은 67개 단지·7만3000여가구로 집계됐다.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7·11~14단지, 노원구 상계동 보람아파트, 주공4·6·7·9·10·15·16단지,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 훼밀리타운, 서초구 서초동 삼풍아파트 등이 대상지다.
이들 지역의 중개업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들 단지 호가는 지난해 말에 비해 최소 5000만원에서 최대 1억원가량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아파트 전용 84㎡의 경우 지난해 10월 10억원이 채 안 됐지만, 이달 들어 최고 13억원을 넘어선 매물이 나오고 있다.
인근 A공인 대표는 "올 상반기 안전진단 신청을 계기로 재건축 사업이 본격화된다는 소식이 투자자들의 매수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며 "매수 대기자는 넘쳐나는데 매물이 없어 '부르는 게 값'일 정도"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업계 일각에서는 재건축 연한 규제를 돌려놓아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준공 후 30년 기준을 다시 40년으로 늘려 재건축에 대한 열기를 식힐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정준호 강원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과 같은 정부 규제로 똘똘한 한 채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면서 '강남 불패' 믿음만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며 "재건축 허용연한을 재조정하거나 안전진단을 강화해 무분별한 재건축 추진에 따른 집값 불안을 차단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연한이 40년으로 늘어나면 이 같은 흐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재건축 사업이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 사업인데, 올해 준공 30년차 단지의 경우 20년 후인 2040년 이후를 바라봐야 해 투자가치가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연한이 예전재로 늘어난다면 단기적으로는 집값 안정화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재건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전에 선진입했던 투자자들은 물을 먹는 셈"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연한 확대와 관련한 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진화에 나섰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지난 9일 "아직까지 재건축 연한 확대는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일부 지역에서 집값이 불안한 상황이지만, 지난해 이후 마련한 부동산 대책이 차질 없이 시행되면 안정을 되찾을 것"이라며 "저금리 시대도 마무리되고 있고, 수도권에 공급되는 주택 물량도 예년과 비교해 훨씬 많아 올해 집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재건축 사업이 집값을 끌어올린다는 이유만으로 연한 규제를 도로 강화해 사업을 지연시키는 것은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신규주택 공급 감소나 노후주택 안전성 문제 등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만큼 근본적인 처방책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남권 진입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급등의 원인인 만큼 공급 문제를 선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재건축 연한을 늘릴 경우 공급 부족을 야기해 재건축 대상 단지들의 희소성만 더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게다가 서울 내에서는 더 이상 빈 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재건축 사업은 새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양지영 R&C 연구소장은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강남 집값 상승세는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며 "재건축 허용연한을 다시 늘리는 것은 궁극적으로 서울 주택 공급량을 더욱 줄이게 돼 집값을 더 뛰게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재건축 연한 강화는 단기적으로는 재건축 심리를 위축시킬 수는 있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을 줄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입 이후 매매가가 더 오를 수 있다"며 "차라리 용적률 완화 등 재건축 장려책을 통해 수요자들이 선호하는 지역에 새 아파트를 꾸준히 공급하고, 소형 및 임대주택 공급도 확대하는 것이 주택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평가도 있다.
남진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는 "재건축 허용연한을 늘리고 줄이고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하나의 아파트 단지만 개발할 것이 아니라 광역 단위의 재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공공기여 부분까지 감안해 단계별로 하면서 수급 조정을 해줘야 집값 급등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