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접근성 외 싼 요금 등 언급 안 해
  • ▲ KTX산천-SRT.ⓒ연합뉴스·SR
    ▲ KTX산천-SRT.ⓒ연합뉴스·SR

    국토교통부가 올해 안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수서발 고속철(SRT)을 운영하는 ㈜에스알(SR)의 통합 여부를 결론 낼 방침인 가운데 일부 단체의 편향된 여론몰이가 눈총을 사고 있다. 객관적으로 이뤄져야 할 통합논의가 벌써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녹색교통운동은 지난 13일 자체 설문 조사한 내용으로 '일반 시민 절반 이상이 분리 운영 중인 KTX와 SRT 통합운영에 찬성한다'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단체는 지난 9일 여론조사기관(더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 남녀 500명의 답변을 분석했다며 '정부의 고속철도 통합운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66.2%가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반대하거나 모르겠다는 응답은 각각 18.4%와 15.4%에 그쳤다고 했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38이다.

    이 단체는 KTX나 SRT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로 '출발지·도착지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서'라는 대답이 각각 60.5%와 64.5%로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대부분 이용자가 요금이나 서비스보다 역 접근성을 고속철도 선택의 이유로 꼽았다고 강조했다.

    주로 이용하는 고속철도는 KTX 59.1%, SRT 18.4%로 나타났다. 상황에 따라 선택해 이용한다는 응답은 22.5%로 조사됐다.

    이 단체는 "다수 이용자가 역 접근성으로 고속철도를 선택한다"며 "경쟁체제 도입 효과가 미미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SR을 포함한 철도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설문조사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본격적인 통합논의를 앞두고 편향적인 여론몰이가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들은 녹색교통운동이 코레일-SR 통합을 찬성하는 '철도공공성시민모임'에 참여하는 단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철도경쟁을 반대하고 철도노조 주장에 찬성하는 단체여서 이미 중립성을 잃었다는 견해다.

    설문조사 내용도 통합 찬성을 유도하는 식으로 질문이 짜 맞춰졌다는 의견이다.

    이 단체는 응답자의 성별·나이·직업 등을 묻는 기본질문을 제외하면 어느 고속철도를 주로 이용하는지 물은 뒤 바로 통합운영에 대한 답변을 듣는 방식을 취했다.

    하지만 경쟁체제 이후 서비스 개선 효과나 경쟁의 이점 등에 대한 예시나 설명은 배제한 채 '정부가 경쟁을 목적으로 KTX와 SRT를 분리 운영해 왔으나 지금은 운영의 효율성을 위해 통합운영을 검토한다'며 '정부의 이런 통합운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물었다.

    질문에 통합이 운영을 효율화하는 방안이고, 이게 정부의 방침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셈이다. 대면방식이 아닌 무선전화 ARS(자동응답서비스) 방식을 택한 점을 고려하면 통합 찬성 쪽으로 답변을 유도한 편향된 질문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토부는 통합 논의에 앞서 SR 출범에 따른 경쟁·서비스 개선 효과 등을 공정하게 평가한 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다는 태도여서 비교된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는 SRT 도입과 관련해 일부 눈에 띄는 의견도 확인돼 주목된다.

    SRT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와 관련해 '철도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라는 답변이 28.0%로 '근처에 기차역이 있어서'라는 응답(64.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특히 직업별로는 학생 응답자의 81.8%가 저렴한 요금을 SRT 이용의 이유로 들었다. 가계부를 작성하는 가정주부도 41.7%가 상대적으로 싼 요금을 선택 이유로 꼽았다.

    지역별로는 대전·충청·세종, 대구·경북, 광주·전라 지역에서 값싼 요금 때문에 SRT를 이용한다는 대답이 각각 60.0%, 75.0%, 50.0%로 나왔다.

    이는 천안·아산~부산·목포 등 천안·아산역 이후 구간에서는 승객이 가격 등을 비교해 고속철을 골라 탄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코레일과 철도노조가 현 고속철 경쟁체제를 무늬만 경쟁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반면 KTX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 중 '철도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해서'라는 응답은 3.7%에 불과했다. '열차 운행 횟수가 많아서'라는 대답이 15.8%로 두 번째로 많았다.

    '상황에 따라 고속철을 선택해 이용한다'는 응답의 경우 57.6%가 역 접근성을 꼽았지만, '열차표 구매 가능성에 따라'와 '기타'가 각각 17.8%와 24.6%로 집계됐다. 돌려 말하면 역 접근성 말고 다른 이유로 고속철을 선택한다는 의견이 42.4%로 나온 것이다.

    이번 설문 결과에서 녹색교통운동은 역 접근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업계는 철도사업 성격상 지역독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KTX를 주로 이용하는 이유로 60.5%가 역 접근성을 꼽은 점을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통합에 반대하는 의견을 낸 응답자의 나이와 지역을 분석한 결과도 눈여겨볼 만하다.

    통합에 찬성하지 않는 의견이 33.8%로 나타난 가운데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18.4%다. 반대 의견을 낸 응답자의 특성을 살펴보면 성별로는 남성(20.9%), 나이별로는 30대(25.0%)와 20대(21.8%), 지역별로는 부산·경남·울산(24.4%)과 서울(21.0%), 경기·인천(20.1%), 직업별로는 사무직(23.1%)·자영업(21.0%)에서 상대적으로 반대 의견이 많았다.

    녹색교통운동도 보도자료에 언급하진 않았으나 조사결과 분석에서 "이용이 많은 층에서 (통합) 반대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한편 SR이 출범 이후 KTX보다 나은 고객서비스를 외쳤으나 이번 설문조사에서 SRT 이용 이유로 '고객서비스 품질 우수'를 꼽은 답변이 없는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