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재건 계획 성공 여부는 체질개선 위한 '중장기 전략'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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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으로 해운업 부활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지만, 공급 과잉을 부추긴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초대형선 신조 투자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정부 지원이 채산성 없는 선대 확대와 불필요한 유동성을 지원한다는 지적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세계 컨테이너선 시장이 치킨게임으로 진행 중인 상황에서 대규모 신조발주가 운임 경쟁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 5일 정부는 한진해운 청산 이후 위축된 해운업을 되살리기 위해 3년간 국적선사에 선박 200척 발주를 지원한다는 내용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수출입은행도 민간 은행들을 대신해 8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들여 적극 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우선 업계에서는 정부가 강력한 해운업 재건 의지를 보여준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있다. 다만, 원가경쟁력 차원에서 초대형선 확보의 중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기업평가가 발표한 보고서 '해운, 가고 싶은 길, 갈 수 없는 길, 가야만 하는 길'에 따르면 현 시점에서의 대규모 신조발주는 치킨게임을 더욱 격화시킬 수 있다. 한기평은 "초대형선의 부재는 원가경쟁력의 하락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초대형선 확보는 반드시 필요하다"면서도 "현재 선복규모와 집하력 대비 단기간 내 투자규모가 너무 크다는 점은 부담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현대상선은 정부 계획에 따라 따라 2만TEU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 12척과 1만4000TEU급 대형선 8척 등 20척을 신규 발주하겠다는 방침이다. 한기평은 총 35만TEU에 달하는 신조 발주 규모는 현대상선의 현재 운용선복량과 동일한 규모이며, 사선에 대비해서는 3배가 넘는 규모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글로벌 선사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선대와 집하력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지만, 대규모 신조발주는 화물 확보를 위해 운임 경쟁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수합병과 신조발주는 엄연히 다르다는 얘기다.

치킨게임 재발 가능성도 염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선사들의 초대형 선박들이 오는 2020년까지 인도되고, 이 선박들이 유럽과 미주 항로에 배치되면 운임 경쟁이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정부의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의의와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 지원이 선박 공급 과잉과 그에 따른 해운사 적자 우려를 야기할 것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고 언급했다. 

KMI는 다만 "이미 치킨 게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외국 경쟁선사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라며 "해운산업이 필요한 산업이라면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서라도 치킨 게임에서 국적선사를 생존시켜 기간 항로의 시장점유율을 지켜나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정책방향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계획 성공 위해서는 체질개선 위한 '중장기 전략'이 관건

업계에서는 해운업 재건계획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해운기업의 체질 개선을 위한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KMI는 이번 보고서에서 "그동안 처방은 국내 해운산업의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위기를 임시적으로 보완하는 수준에서 진행되면서 시황 침체기마다 위기를 겪어 왔다"며 "해운 불황기에도 견딜 수 있도록 저비용 구조 정착, 해운기업의 선종 및 수익사업 다각화, 세계해운 여건변화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체제 구축 등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한기평도 "정부의 노력들이 한국 해운 재건의 마중물이 되기 위해서는 선사들의 체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며 "철저한 비용분석을 통해 수익구조를 효율화해 정상적 경영성과를 회복하고, 신용도 관리와 재무건전성 개선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봉균 한국기업평가 전문위원은 "현재 글로벌 선사들의 초대형선 확보 경쟁이 한창 진행 중인데, 우리 국적선사가 여기에 합류하면서 다른 경쟁사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또 다시 치킨게임이 격화될 수 있기 때문에 당장 초대형선을 많이 확보하는 것에 열중하기 보다 천천히 가져가는 게 옳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비슷한 시각의 얘기가 나온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적선사의 점유율이 워낙 낮아서 선박 확보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지만, 배만 커지게 되면 부작용이 생긴다"며 "배를 키우면서 우리 국적화물 적취율도 올리는 작업을 같이 해줘야 해운업 부활을 위한 청사진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