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해진 통근버스 배차시간...출퇴근길 스트레스 감소일과 가정 양립 가능한 문화 정착 '청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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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는 근로시간 단축 시행을 한달 앞두고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겪게 될 삶과 근무환경의 변화를 미리 살펴본다.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 등 부정적 영향도 예상되고 있지만, 워라밸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기대반 우려반이 공존하고 있는 곳도 있다. 주52시간 시행이 가져올 각 분야별 변화를 기획 시리즈로 짚어본다. <편집자주>

    LG그룹 입사 15년차인 A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과 요새 부쩍 친해졌다. 집에서 7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학교까지 딸을 데려다주고 방과 후 미술학원에 다녀온 딸을 다시 마중나가기 시작하면서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되기 전부터 주40시간 근무를 해왔던 A씨는 LG그룹 다른 계열사에 다니는 아내와 새로운 '룰'을 만들어 육아와 교육에 조금 더 공을 들이기로 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나눠 2주씩 서로 돌아가며 아이의 오전과 오후를 책임지는 형태다. 이번주와 다음주는 A씨가 오전 10시에 출근하기로 해 아침에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챙겨서 학교까지 바래다 준다. 대신 아내는 아침에 일찍 나가고 오후 4시면 퇴근해서 딸과 시간을 보낸다.

    이런 제도를 누구보다 반기는 것은 아이다.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서라기보단 당장 학교 끝나고 많게는 5개씩 다니던 학원을 2개로 줄였기 때문이다. 미술학원은 아이가 계속 다니기를 희망해서 방과 후 주 2회 수업을 듣고 있고 아내의 강력한 주장으로 독서토론수업도 계속 이어가고 있다.

    무엇보다 퇴근 후에도 딸과 함께 놀아줄 에너지가 남아있다는게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다. 출퇴근 시간 교통체증에 시달리며 소모하는 체력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퇴근시간에는 러시아워를 피해 일부러 동료들과 술을 마시러 가거나 자발적으로 야근을 한 적도 많을 정도로 스트레스였다.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처가 동네인 경기도 성남시에 터전을 잡는 바람에 그동안 여의도 트윈타워를 오가는 출퇴근길은 스스로 만든 고생길 같았다.

    회사에서는 기존에 운영하던 통근버스 시간표를 대폭 수정했다. 아침에 출근하는 시간이 각자 달라진 것은 물론이고 10시 이후에 출근하는 사람도 많아져 배차가 여러번 이뤄지는 방식이 됐다. 퇴근버스도 오후 6시 20분에 출근하는게 첫 차였지만 이제는 5시부터 이용할 수 있게 됐다.

    A씨처럼 사내 카풀을 이용하던 사람들도 출퇴근 시간대별로 팀을 다시 꾸렸다. 교통체증 때문에 운전을 맡아야 하는 당번이 되면 출퇴근길이 더욱 두려웠는데 이제는 한시간 내로 집에 도착할 수 있어서 부담이 훨씬 줄었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유류비가 줄어든 것도 장점이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집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면서 카풀로 오가는 출퇴근길의 대화 주제도 완전히 달라졌다. 남자들끼리도 육아나 생활정보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동네 주민이라는 공감대까지 더해져 동네 맛집에 대한 품평회도 열린다.

    대신 업무시간 중엔 예전보다 빡빡하게 업무를 처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들 각자 업무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A씨는 예전보다 효율적으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 중간에 미뤄뒀던 은행업무를 처리하거나 병원에 가는 일 등을 이미 출근 전에 해결했거나 일찍 퇴근해 하면 되기 때문에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팀원들이 각자 다른 스케줄로 움직이고 있어서 모두 모인 회의자리를 갖기는 어려워졌다. 원래 오전시간에 주로 이뤄졌던 회의는 시간이 뒤로 조금 밀리거나 압축적으로 진행됐다. 부족한 의사소통은 담당자끼리 사전에 최대한 처리하는 방향으로 대체됐지만 여전히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A씨는 그동안 집안일에 대한 참여도가 낮아 받았던 스트레스를 덜었다는 점에서 주52시간 근무제도에 만족하고 있다. 집안에서의 평화를 얻은 덕에 앞으로 제도가 정착되면 업무에서도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