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우리금융
    ▲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우리금융
    금융은 흐름입니다. 막힌 데 없이 구석구석 흘러가야 합니다. '이승제의 금융通'은 국내 금융권에서 일어나는 돈과 정보의 흐름을 좇아가려는 시도입니다. 딱딱한 형식주의를 벗어나 금융 속에서 자유롭게 노닐고자 합니다.  

    #"한빛은행(우리은행 전신)에 입행한 신입직원이 행장될 날이 머지않았다. 그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통합·단일 은행을 향한, 오랜 여정의 마침표가 찍힐 것이다"(우리금융 전직 고위 임원·옛 한일은행 출신 )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살림을 합쳐 한빛은행으로 출범한 때가 1999년이다. 그해 신입 행원으로 입사한 사람은 이제 26년차 직원이 됐다. 만 28살에 입사했다고 치면 그의 나이는 올해로 52세다. 은행 '짬밥'으론 임원급인 본부장을 맡을 시기다. 능력 있고 운이 따랐다면 부행장 또는 부사장을 넘볼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전직 임원의 말을 살짝 비틀면, 우리금융·은행에 드리워진 상업·한일은행의 그림자가 아직 걷어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요즘 부쩍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를 쓴다면, '잔재(殘滓)'! 말 그대로 쓰고 남은 찌꺼기다. 사전적 의미로는 '과거의 낡은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의 찌꺼기'.  

    #한빛은행 출범 이후 상업은행 출신과 한일은행 출신이 은행장을 번갈아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다. 임원들도 두 은행 출신을 되도록 동수로 구성했다. 경영진 나눠먹기 방식이다.  어느 한쪽이 우월권을 갖지 못한 두 은행의 수뇌부들은 이 같은 방식으로 갈등과 다툼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이런 조치로는 겉으로 드러나는 전쟁을 늦췄을 뿐 서로를 향한 경계와 질시, 그리고 불신을 잠재울 수 없었다. 상황에 떠밀리며 선택한 '임시방편'은 그렇게 관행이 됐고, 통합을 가로막고 은행 내부에 깊게 뿌리내려 널리 퍼진 문제들의 '씨줄'이 됐다. 

    우리은행은 정부의 공적자금으로 회생한 금융회사다. 지난 1997년 외환위기 과정에서 5대 시중은행이던 '조흥·상업·제일·한일·서울(조상제한서)'가 모두 부실화됐고 정부는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합병 과정에서 무려 3조2000억원가량을 쏟아부어 한빛은행을 출범시켰다. 국내에서 사상 첫 글로벌 100대 은행이 등장했다고, 정부는 자화자찬했다. 주인 없는 대형은행은 정권과 정치권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온갖 민원이 쏟아졌고 경영진 교체 시기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사람을 앉히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은 권력층에게 고급스런 민원 대행처쯤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다(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졌을까!) 이 같은 외풍은 우리금융의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가로막는, 강력한 '날줄'로 작용했고, 지금도 여전하다. 

    #'핑퐁식 나눠먹기' 관행이 깨진 건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때였다. 한일은행 출신인 손 전 회장이 차기 회장으로 유력한 가운데 상업은행 출신인 최병길 전 동양시멘트 대표가 경쟁자로 '소환돼' 경합을 벌였다. 손 전 회장의 회장 취임 후 상업은행 출신인 권광석 전 행장이 52·53대 우리은행장을 맡았다. 

    관행을 깨뜨린 건 손 전 회장 이전일지도 모른다. 47·48대 이순우 행장(상업은행 출신)에 이어 순서를 어기고 같은 상업은행 출신인 이광구 행장이 취임했다. 이광구 행장이 연임에 성공하며 사달이 났다. 한일은행 출신들의 참을성이 바닥났기 때문일까. 이광구 행장의 채용비리 사건이 터졌다. 채용 비리와 관련한 내부문건이 외부로 고스란히 유출됐고 공교롭게도 밝혀진 특혜채용 청탁자들이 죄다 상업은행 출신들이었다. 직위해제된 남기명 부행장을 비롯한 두 명의 인사 역시 상업은행 출신이었다. 한일은행 출신의 전직 임원이 국회에 제보했다는 설이 돌았다. 

    손 전 회장은 쫒겨난 이광구 행장의 뒤를 이었고 탄력받은 그는 회장까지 직행했다. 손 전 회장의 취임 후 권광석 행장에 이어 한일은행 출신인 이원덕 행장이 취임했다. 회장과 행장의 출신 은행을 달리해야 한다는 '불문율' '황금률'이 깨진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 같은 황금률이야말로 우리금융의 화학적 결합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돼 있는 대척 세력이니, 이렇게라도 잠재 평화, 혹은 휴전을 하자'는 타협 아닌 타협은 그토록 취약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 했던가. 모든 회장, 행장들은 후보 시절 또는 취임 초기 '탕평책'을 앞세웠다. 하지만 시나브로 같은 출신들을 주요 임원으로 등용하는 행태가 반복됐다.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생존을 위한 '패거리 행태'를 버릴 순 없었다. 생존해야 하니까, 나 혼자 짊어지고 가는 멍에가 아니니까. 동지도 적도 분명한 전선이었다. 

    #임종룡 회장의 취임을 바라보는 우리금융·은행 임원들의 시선은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형태 상 상업은행 출신인 조병규 현 우리은행장이 취임하며 황금률이 다시금 가동되는 듯했다. 이런 가운데 손 전 회장의 연임을 확신했던 한일은행 출신 임원들은 그야말로 멘붕에 빠졌을 것이다. 

    임 회장은 계파 갈등의 종식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취임 과정에서 이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한 경제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금융의 내부 통제를 가다듬는 데 내부 치유 방법도 있겠지만, 과도기를 맞아 외부 수혈을 통해 객관적이고 중립적 시각에서 (우리금융을) 다시 살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임 회장이 계파 갈등을 원천차단할 수 있는 CEO(최고경영자) 육성 및 승계 프로그램을 고안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임 회장은 한빛은행 출범 당시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금융정책국의 은행제도과장이었다. 한빛은행의 내부 사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 

    조병규 행장의 선임 과정에서 한일은행 출신들이 철저히 배제된 것도 의미심장하다. 우리금융에선 최종 후보군에 상업·한일은행 출신을 반드시 포함시켜왔다. 하지만 조 행장의 CEO 선입 최종 면접 리스트에 한일은행 출신은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임 회장에 대한 경계와 배척의 움직임이 은밀히, 때론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상업·한일은행 출신 임원들 사이에 혼란스런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임 회장이 끼어들었고, 1년여 지난 지금, 손 전 회장 친인척의 부당대출 사건이 불거졌다. 물꼬를 튼 건 짐작대로 우리금융 내부의 제보였다. 

    ps. 영화 '끝까지 간다'는 개봉 전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영화였다. 제67회 칸 영화제의 감독 주간에 초청되어 호평받았지만 그뿐이었다. 그러다 개봉 전 시사회 이후 '기대 하나도 안 했는데 의외로 꿀잼'이란 평이 쏟아지며 한 주 앞서 개봉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를 내려앉히고 일일 관객 1위를 탈환했다. 고 이선균 배우와 조진웅 배우에 대한 관객의 믿음이 강력한 밑거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종적으로 전국 누적 관객 344만8583명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 제목처럼, 끝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