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인사 개입에 국민연금 독립성 '흔들'지분 5% 이상 300여 곳, 100개 이상 상장사10% 이상 보유

  • 약 635조원을 굴리는 '자본시장 큰 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연금을 관리·감독하는 보건복지부가 17일 금융투자협회에서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후 오는 26일 예정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하면 곧바로 시행된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으로, 주인을 대신해 모든 일을 꼼꼼하게 돌보는 집사(Steward, 스튜어드)처럼 고객과 수탁자가 맡긴 돈을 자기 돈처럼 여기고 최선을 다해 관리·운용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기관투자자가 주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불러왔다'는 반성에서 출발해 2010년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이후 미국과 일본, 캐나다 등 20개국으로 확산돼 국제 규범으로서의 위상을 갖췄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부터 금융당국에서 논의를 시작해 2016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기본 7개 원칙을 공포하면서 시행에 들어갔다. 기본 원칙은 △수탁자 책임 정책 공개 △이해 상충 방지정책 공개 △투자 대상 회사에 대한 지속적 점검 △수탁자 책임 활동 수행에 관한 내부지침 마련 △의결권 정책·의결권 행사 내역과 사유 공개 △의결권 행사·수탁자 책임 이행 활동 보고 △수탁자 책임의 효과적 이행을 위한 역량 ·전문성 확보 등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7월 고려대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발주하면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목전으로 다가오면서 그 영향에 대한 업계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에 131조원을 투자하고 있고,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만 300여곳에 달한다. 삼성전자(9.9%), 현대자동차(8.02%), SK하이닉스(10%), 포스코(10.82%), 기아자동차(7.08%) 등 국내 주요 기업의 1·2대 주주로 올라 있다.

    100개 이상 상장사 지분을 10% 이상도  보유하고 있다.  만약 이 지분을 활용해 경영 개선을 요구하거나 이사 선임과 해임 등을 요구하면 파장이 커질 수 있다. 낙하산 인사로 민간기업이 공기업처럼 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는 이유다.

    또 국민연금의 기준은 다른 연기금과 공제회에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도 기업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고 있다.

    게다가 국민연금이 움직이면 국내 자산 운용사들도 보폭을 맞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민연금이 약 60조원을 국내 자산운용사 등에 위탁해 운용하고 있어서다. 그만큼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할 수 밖에 없다.

  •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경. ⓒ뉴데일리DB
    ▲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전경. ⓒ뉴데일리DB

    문제는 국민연금의 독립성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전문성뿐 아니라 독립성에서도 낙제점을 받고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 이사장이 취임 일성으로 내세운 "외부의 부당한 간섭과 개입을 막아내겠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실제 최근에는 8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기금이사, CIO)을 뽑는 인사에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를 두고 청와대에서는 "부탁한 것일 뿐 인사 개입은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가 않다.

    국민연금 CIO는 국민연금 기금을 운용하는 최고 투자책임자로, 주식이나 채권을 포함한 자본시장에서는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해 '자본시장의 대통령'으로도 불린다.

    결국 CIO 인사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것은 기업을 통제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앞둔 시점에 인사 개입 문제가 벌어진 점도 이같은 해석에 무게를 싣는다.

    우리나라는 독립적으로 기금 운용이 이뤄지는 외국과 달리 국민연금 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을 복지부 장관이 맡으면서 국민연금 이사장도 임명하는 구조다. CIO는 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이사장이 임명한다. 때문에 복지부 장관을 임명하는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모든 시선이 쏠릴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을 무기로 기업을 압박할 수 있다며 '연금 사회주의'까지 우려하는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에 종속돼 있는 상황에서 배치되는 의견을 내놓기는 힘들지 않을까 한다"며 "정부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이사회에서 배제하거나 친정부 인사를 선임하는 식으로 정부 입김을 반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이에 복지부가 내놓을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에는 △사외이사 및 감사 후보 추천 △의결권 대리행사 권유 등 국민연금의 경영권 참여와 관련된 내용은 제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도 단계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를 추진키로 했다. 현재는 의결권 행사 내역을 주주총회 후 14일 이내에 공시한다.

    그동안 시행하지 않았던 주주대표소송은 시행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다. 합리적 배당정책을 요구하는 기업 숫자를 지금보다 2배 늘어난 매년 8~10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비공개 대화를 하되 대한항공 사례처럼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등의 주주권 행사도 이어간다는 구상이다.

    배당에만 한정했던 중점관리사안은 횡령, 배임 등으로 확대된다. 경영진 일가의 사익 편취도 중점관리사안으로 분류한다.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방안 역시 내년도 추진 사항이다. 2020년에는 중점관리사안을 의결권 행사와 연계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