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일본 시장은 한국 기업들에게 쉽지 않은 성이었다. 10년도 넘은 '한류(韓流)'로 기대감이 높아지자 일본을 두드린 한국 기업들이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실패가 잇따랐지만 일본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었다.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문화도 비슷한 일본은 전세계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시장 규모를 가지고 있다. 미식과 패션 등 다방면으로 발달해온 일본, 그리고 수도인 도쿄(동경). 다국적 기업이 몰려든 치열한 경쟁 속, 한국 기업 역시 다시 일본으로 향했다. 일본의 심장, 도쿄에서 국내업체들의 현재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도쿄 = 임소현 기자] "아모레퍼시픽이 처음 일본에 진출했을 때, 같이 일본에 왔습니다. 이후 사업부진으로 철수해야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갔다 다시 준비해서 일본에 오게 됐습니다. 성급했던 진출이었지만 이번에는 더 잘해야죠."
지난 15일, 이니스프리 일본 1호점 앞에서 홍재영 아모레퍼시픽재팬 이니스프리 팀장을 만났다. 아모레퍼시픽 글로벌 분야에서만 일한 홍 팀장은 일본에 다시 오게 됐다. 4년 전, 아모레퍼시픽 뿐만 아니라 국내 화장품 업체들이 앞다퉈 일본에 진출할 당시 홍 팀장 역시 일본에 있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일본에서 고배를 마시고 말았다. 이어 올해 초 이니스프리 브랜드를 통해 다시 일본을 공략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는 하라주쿠 거리를 함께 걸으며, 힘든 시간만큼 '재정비'를 마친 이니스프리 일본 공략을 진두지휘하는 홍 팀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홍 팀장은 이니스프리 매장이 오모테산도에 위치하게 된 배경이 '상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니스프리 일본 1호점이 위치한 곳은 오모테산도힐즈 부근이다. 패션의 거리 하라주쿠 메인 거리가 가까운 곳에 있고, 이니스프리가 위치한 거리를 따라 오모테산도 역쪽으로 걷다보면 럭셔리 브랜드가 쭉 펼쳐진다. 이니스프리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아이덴티티와 일본인에게 신뢰감있는 인상을 전달하기 위해서란다.
홍 팀장은 "지금 단계에서는 브랜드 자체를 알리는 것이 먼저다. 일본 사람들은 '믿어야 쓰는 사람들'이다. 우리나라 고객들도 마찬가지지만, 훨씬 보수적이다. 일본은 신뢰감이 바탕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이니스프리 일본 베스트 셀러인 시드세럼, 노세범, 화산송이 등 주요 제품을 중심으로, 고객들을 유인한 후 브랜드 신뢰를 쌓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그는 "제품을 써본 사람들이 더 살수 있도록, 제품을 사고 순서적으로 브랜드 다른 제품도 소비하는 그런 그림을 위해 노력 중"이라며 "제품도 제품이지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먼저고, 그래서 오모테산도에 매장을 냈다"고 전했다. -
그는 "한류 때문에 일본에서 한국 화장품은 익숙한, 거부감이 없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라고 전했다. 에뛰드하우스가 일본 내에서 선방하고 있는 점도 한 몫했다. 2011년 일본에 진출한 에뛰드하우스는 한국 화장품으로서는 흔치 않게 꽤 오랜 시간 일본 충성 고객을 잡고 있다. 에뛰드하우스가 일본 시장 내에서 가진 입지가 아모레퍼시픽, 나아가 한국 화장품의 진출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감도는 이유다.
에뛰드하우스는 2011년 일본 도쿄에 에뛰드하우스 1호점을 론칭한 후 현재 일본에서 24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에뛰드하우스는 2015년 27%, 2016년 32% 등 매년 높은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홍 팀장은 "에뛰드하우스가 아무래도 일본에서 좋은 이미지를 가져 주면, 이니스프리 역시 좋은 이미지를 얻기 좋다(수월해진다)"며 "에뛰드와 이니스프리는 공생, 상생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홍 팀장은 특히 자연주의 시장이 커지는 일본 내에서 이니스프리의 성공 가능성이 무한하지만, 일본 시장을 쉽게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홍 팀장은 "자연주의 시장이 커지는 단계이지만 시세이도 등 자국 브랜드가 시장을 꽉 잡고 있는 상황이라 외국계 브랜드가 (성공하기는) 힘들다"라며 "록시땅이 대표적으로 일본 시장 내에서 입지가 크긴 하지만 (일본은) 전세계가 노리는 시장이다보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니스프리는 이달 오사카에서 오픈하면서, 연내 총 일본 4개 매장으로 확대된다. 내년에도 4개 매장 등 순차적으로 매장 수를 늘려 나가는 것이 목표이지만 당분간은 공격적으로 외형을 확장하기 보다는 고객 반응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지난 2006년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로 일본에 진출했으나 영업환경 악화로 일본 매장을 순차적으로 정리한 바 있다.
홍 팀장은 당시 매장 수 늘리기에 급급했던 것이 위험했다고 평가한다. 브랜드를 통해 일본 시장에 신뢰를 얻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는 계획을 세운 이유다. 그는 "당시에 일단 들어가자는 분위기가 강해 아모레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기업들이 일단 매장을 내고 보는 경우가 있었다"라며 "이번에는 외형 확장에 주력하기보다는 천천히, 자연스럽게 일본 화장품 시장에 스며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리스크도 과거에 비해 많이 해소됐다고 전한다. 충성 고객층을 확보하지 못하면 정치적 리스크에 민감할 수밖에 없지만 요즘에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외적인 위험은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그는 "정치적 리스크에 대해 요즘 소비자들은 크게 반응하지 않는다"라며 "신뢰가 있고,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바탕이 된다면 정치적 리스크는 과거에 비해 비교적 줄어든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