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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에 안전성 논란이 잇따르고 있다. 거의 유일하게 소비자들이 인식하고 있는 식품인증 시스템 '해썹(HACCP)'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에,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3일 해썹 인증을 받은 순대 제조업체에서 일한 불법 체류자가 무더기로 적발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충격을 줬다. 9명의 불법 체류자들은 보건 인증도 없이 순대를 만드는 일에 투입됐다가 지난달 23일 적발됐다.
이 업체는 2014년 해썹 인증을 받은 곳이다. 해썹은 식품의 원재료 생산에서부터 최종소비자가 섭취하기 전까지 각 단계에서 생물학적, 화학적, 물리적 위해요소가 해당식품에 혼입되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관리 시스템으로,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인증한다.
문제는 해썹 인증을 받은 이 업체가 수년간 이처럼 보건증이 없는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했다는 것이 드러난 점이다. 일부는 도주했을 것으로 예상돼 정확한 인원조차 파악이 불가능하고, 적발이 쉽지 않은데다 적발될 경우에도 시정명령이나 과태료 처분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식품 안전을 진짜로 위협하는 것은, '해썹 인증'이라는 면죄부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수년간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았던 큼지막한 식품 안전 논란을 살펴보면, 해썹 인증을 받지 않은 업체를 찾는게 더 힘들 정도"라며 "대기업이고, 해썹 인증을 받았다고 해서 믿고 먹었던 소비자들에게는 큰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 1995년 도입된 해썹은, 식품업체들의 마케팅에도 종종 쓰여왔다. 해썹에 의해 엄선된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을 들어 소비자들로 하여금 깨끗하고 인증받은 재료를 사용한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5년간 해썹 인증을 받고도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업체는 전체의 약 2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식약처로부터 2014년부터 지난 6월까지 해썹 인증업체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해썹 인증업체 5403개 중 977개(18%) 업체가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바 있다.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해썹 업체에 대한 식약처의 조치는 ‘시정명령’이 전체(1258건)의 절반에 달하는 618건(49.1%)이었다. 다음으로 ‘과태료 부과’ 229건(18.2%), ‘품목제조 정지’ 181건(14.4%)이었다. 처벌 수위가 강한 ‘영업정지’의 경우 100건(7.9%) 정도였다.
최근만 해도 해썹 인증 재료만 사용한다던 큰맘할매순대국 육수에서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해당 제품에 대한 판매중단, 회수 조치를 내렸다.
앞서 발생한 풀무원 식중독 초코케이크 사태 역시 제조업체가 해썹 인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전해지며 충격을 줬고, '살충제 계란 파동'때는 문제가 된 농가 10곳 중 6곳이 해썹 인증 농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해썹 인증을 받은 업체의 제품에서 안전 이슈가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이정도면 해썹 인증을 대대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업계 안팎의 우려섞인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기 의원은 “상습적으로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해썹 업체에 대한 지도·단속을 강화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정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는 해썹 인증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인증 제품의 사후관리와 품질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법 위반 시 처벌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