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에 발목… 혼선 초래·면허취소 회피 악용 소지
  • ▲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연합뉴스
    ▲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연합뉴스
    국토교통부가 항공 면허 취소와 관련해 사실상 '취소'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진에어 외국인 등기이사 불법 재직 사태와 관련해 명확하지 않은 항공 관련 법률 정비로 법리해석에 혼선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을 받고도 안이하게 법령 개선에 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14일 항공안전과 면허관리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항공산업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면허관리 제도 중 면허 결격사유에 대해 제재 수단을 다양화하고, 매출액의 3%까지 과징금을 매겨 실효성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외국인인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진에어 등기이사 불법 재직 사례처럼 외국인 임원, 임원의 범죄경력, 파산 등은 면허 결격사유에 해당한다. 현행법은 면허취소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토부는 이를 면허취소 또는 6개월 내 사업정지, 위법기간 배분한 운수권 환수로 고치기로 했다.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위법행위가 이뤄진 기간의 매출액에 대해 3%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안도 신설했다.

    문제는 면허취소 개선 내용에 포함된 '또는'이라는 표현이다. 외국인 임원 등 면허 결격사유가 발생했을 때 면허취소가 아닌 사업정지, 운수권 환수 등으로 대신할 수 있는 길을 명문화해 열어준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기존에는 면허 결격사유 때 면허취소가 유일하고 다른 제재수단이 없었다"면서 "면허취소도 무조건 면허를 취소한다는 게 아니라 행정법상 이익 형량하도록 돼 있어 면허취소가 안 될 수도 있고, 이 경우 걸맞은 제재수단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법률전문가는 면허취소와 사업정지 등을 하나의 조문에 함께 담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토부 법률자문단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또는'은 법령에서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해석된다"며 "문맥대로 해석하면 면허취소가 안 될 경우에 결격사유에 상응하는 (사업정지 등) 다른 제재를 한다는 게 아니라 면허취소 대신 다른 제재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다"고 했다. 가령 법을 어겨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이 내려졌다면 징역을 살거나 아니면 벌금을 대신 내는 '선택'의 문제이지, 징역을 살지 못하니 그렇다면 벌금을 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지적한다. 국토부의 제도개선 취지는 이해 가지만, 법 조문에 담길 표현이 혼선을 주거나 결격사유에 해당함에도 면허취소를 피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법률전문가는 "실제 법령에는 국토부가 밝힌 표현대로 담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토부 관계자는 "법령에도 이날 보도자료에 적힌 표현대로 개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토부는 진에어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항공 관련 법령을 명확하게 정비하지 않아 현장의 법리 해석에 혼란을 부추긴 책임이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진에어 측은 청문 과정에서 외국인 임원과 관련해 항공사업법 9조와 항공안전법 10조1항5호가 이율배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 ▲ 진에어 면허취소 관련해 의견 전하러 국토부 방문한 직원 등 이해관계자.ⓒ연합뉴스
    ▲ 진에어 면허취소 관련해 의견 전하러 국토부 방문한 직원 등 이해관계자.ⓒ연합뉴스

    국토부는 이날 운수권 신규 배분 제한이나 항공사 임원의 자격 강화와 관련해서도 모호한 표현으로 지적을 샀다.

    국토부는 앞으로 사망 등 중대 사고가 발생하거나 항공사 또는 임원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최대 2년간 운수권 신규 배분 신청자격을 박탈하겠다고 밝혔다. 중대 사고는 사망사고 등으로 구체성을 띠지만, 사회적 물의에 대해선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토부는 보도자료에서 관세포탈, 밀수출·입, 외국인 불법 고용 등 항공사가 저지르기 쉬운 범죄에 한정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제도 개선의 빌미를 제공했던 대한항공 조 전 전무의 소위 '물컵 갑질'이나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파동 등을 연장선에서 봤을 때 판단기준이 모호하다는 견해가 잇따랐다. 도덕적 지탄의 대상을 운수권 배분 자격 박탈로 대응하는 게 옳으냐를 두고도 이견이 제기됐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련 사안의 경중을 따져 신청자격을 1~2년 제한할 것"이라며 "사안의 경중은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별도의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운수권 배분과 관련해선 "운수권은 국가 자산이므로 지난 9월 개정한 배분규칙에서 추가된 '사회적 기여도' 평가항목을 통해 불이익을 주는 게 문제 될 것은 없다"는 태도다.

    한편 국토부는 이번 제도개선 방안에 독점노선에 대한 재평가와 개선 명령 불이행 시 운수권 회수, 중국·프랑스 등 선호 노선에 대한 연간 40주 이상 운항 의무화 등 소비자 편의 향상을 위한 방안을 담았다.

    슬롯(항공기 이착륙 가능 시각) 배분을 공정하게 하려고 관련 업무를 서울지방항공청에서 국토부로 가져오는 내용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