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감정평가사 희화화·모욕적… 채미옥 前감정원 연구원장 명예훼손 고소할 것"퇴임 전 기자간담회서 감평방식 개선 설명하다 설화로 번져
  • ▲ 채미옥 전 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 채미옥 전 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이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감정평가사협회(감평협)와 한국감정원의 골 깊은 감정(憾情)싸움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달 29일 퇴임한 채미옥 전 감정원 부동산연구원장의 감정평가방법 개선 관련 발언을 두고 업계 일각에서 그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3일 감정평가업계에 따르면 채 전 원장은 지난달 3일 퇴임을 앞두고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감정평가에 감정평가사의 주관이 반영될 수 있다며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빅데이터 기반으로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채 전 원장은 감정평가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며 "과거엔 (토지가) 간선도로보다 낮으면 저지대, 높고 올라갈 때 숨이 덜 차면 완경사, 숨이 차면 급경사, 그 이상이면 고지대 이런 식으로 조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주관적 요소가 반영됐으나 당시의 수준이었기에 틀렸다고 말할 순 없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정보지능 기술을 활용해 선진적인 공시지가 조사·산정업무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언을 두고 감정평가업계 일각에선 채 전 원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A 감정평가사는 "감정평가사를 공개적으로 희화화하고 모욕감을 준 발언"이라며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려고 준비 중이며 현재 변호사를 선임해 고소장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채 전 원장은) 토지조사를 위해 때론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을 확인하는 감정평가사들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 감정평가사는 "채 전 원장의 발언은 개인을 넘어 모든 감정평가사가 분개할 사안"이라며 "고소인을 개인으로 할지, 감평협 차원에서 협회장 이름으로 할지를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감평협은 '검토하겠다'는 견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감평협과 감정원 갈등의 골이 깊은 만큼 법정 다툼으로 번질 가능성을, 다른 한편에선 감평협이 시끄럽게 사태를 키우지는 않을 거라는 회의론을 제기한다.
  • ▲ 궐기대회.ⓒ감정평가사협회
    ▲ 궐기대회.ⓒ감정평가사협회
    A 감정평가사는 "채 전 원장의 발언 배경에는 감정평가사나 관련 자격제도는 더 필요 없으며 감정원이 조직의 힘으로 얼마든지 전국의 토지가격 등을 평가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이 깔려있다"고 비판했다. 시계를 2014년으로 되돌려보면 국토부는 지가변동률이 낮은 지역은 표본을 추려 기본조사를 하고 그 외 지역은 기존대로 정밀조사하는 방식으로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평가방법을 변경하겠다고 했다. 새 표준지 공시지가 조사방법은 감정원이 국토부에 건의했다. 국토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내세웠다. 하지만 기본조사 관련 예산을 감정원에 몰아주면서 감정원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일었다.

    채 전 원장의 발언은 이런 연장선에 있다는 게 A 감정평가사의 지적이다. 최근 공시가격 상승률과 현실화율이 주택, 단지별로 들쑥날쑥하고 정부가 가격 산정에 개입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일각에선 주택 공시업무를 감정평가사에 맡기거나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채 전 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공시가격제도 도입 초기에는 정부가 시장가격을 평가할 방법이 없어 감정평가사를 통해 가격을 조사했다. 지금은 실거래가 자료가 매년 200만 건씩 쌓이고 매주·매월 주택가격을 조사해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다"며 "수치지적도 전산화 등 여건도 과거와 달라졌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과거 방식을 고집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일정 기간 전국의 부동산 가격을 일시에 조사하는 것은 '대량산정'의 영역"이라며 "그동안 많은 인력을 투입해 공시업무를 진행하면서 막대한 국가 예산을 썼는데 이런 고비용 저효율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강조했다. 대량산정은 감정평가사가 일일이 개별 물건의 공시가격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각종 정보·자료를 토대로 분석해 가격을 산정하는 것을 말한다.

    일각에선 감정원과 감정평가업계가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지적도 나오는 가운데 뿌리 깊은 양측의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비화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