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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하락에도 꿋꿋하게 버티던 서울 아파트 전세시장이 침체 분위기로 기울어지고 있다. 최근 9500여가구 규모의 송파 '헬리오시티' 입주가 마무리되면서 안정세를 찾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경기 불황 등으로 거래량이 뒷받침되지 않자 침체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6월 이후 강동구 등에서 입주 폭탄이 기다리고 있어 위기감이 더욱 짙어지고 있다.
7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4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1만4845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 1만6923건에 비해 12.2% 감소한 수치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지난해 12월까지 꾸준히 상승세를 이어오다 2월 1만9801건을 기록한 후 석 달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최근 입주물량이 많은 송파구와 강동구 일대는 전월세 거래건수가 줄어듦과 동시에 전셋값 하락세가 깊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송파구의 경우 2월 2662건, 3월 2128건, 4월 1705건으로 집계됐으며 강동구는 2월 808건, 3월 707건, 4월 648건으로 조사됐다.
특히 강동구는 6월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1900가구)'를 시작으로 9월 '고덕 그라시움(4932가구)', 12월 '고덕 센트럴 아이파크(1745가구)', '고덕 롯데캐슬 베네루체(1859가구)' 등 연내 약 1만가구의 아파트가 줄줄이 입주할 예정이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2020년 2월 입주하는 '고덕 아르테온(4057가구)', 그 다음해 2월 입주하는 '고덕 자이(1824가구)' 등까지 더하면 강동구에서만 모두 1만6000여가구가 입주한다"며 "단기간에 소화되기 어려운 물량인 만큼 전셋값 하락세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넘치는 입주물량에 비해 세입자 구하기가 어려워지다 보니 입주 예정인 단지는 물론, 일대 전셋값은 벌써부터 약세를 보이고 있다.
실제로 6월 입주하는 '래미안 명일역 솔베뉴'의 경우 전용 59㎡가 4억원대, 전용 78㎡는 5억원 초반대에 전셋값이 형성돼 있다. 이는 3월과 비교하면 한 달 새 1억원가량 떨어진 것이다.
명일동 A공인 대표는 "전세 호가는 대출을 끼지 않은 집도 4억원대까지 내려앉은 상황"이라며 "요즘 같이 세입자를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적도 드물다"고 말했다.
강동구 '고덕 래미안 힐스테이트' 전용 84㎡ 전세는 지난 1월 5억원에 거래됐지만, 4월에는 4억5000만원에 손바뀜됐다. 한국감정원 조사 결과 강동구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11월부터 26주 연속 하락하고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전세시장은 매매시장과 달리 '국지적 수급상황'을 그대로 반영한다"며 "물량이 쏟아지면 인접한 지역 전셋값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역전세난에 깡통전세 주의보까지 내려졌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입주일이 가까워지면서 급매가 쏟아지자 전셋값이 추락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세입자 역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입주 잔금 마련이 어렵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전셋값 하락세에 매매가 역시 동반 하락하면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셋값 비율)도 추락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부동산 시계열 조사를 보면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9.3%다. 이는 지난해 2월 68.5%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올 1월 소폭 상승세를 보인 뒤 다시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1월 반짝 상승을 제외하면 2016년 6월 75.1% 이후 꾸준히 하락하고 있는 셈이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정부가 대출 규제를 풀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올 연말까지 입주물량이 꾸준히 이어질 예정인 만큼 급매물 소화에 따른 전세가율 하락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전문가들은 서울 전세시장이 장기 침체에 접어들었다고 평가한다.
장재현 본부장은 "서울 주요 지역 전셋값 하락이 6개월이나 지속되면서 전세시장이 안정됐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부에서는 늘어난 입주물량이 소화되지 않으면서 불안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헬리오시티 학습효과로 전셋값 하락세가 단기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일선 중개업소에서는 경기 불황 등으로 이사수요가 예전 같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