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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발생한 강릉선 KTX 탈선 등으로 철도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철도 당국이 메스를 들었다. 철도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여기저기 흩어진 철도안전 관련 업무·기능을 한데 모으고 체계화해 전문성을 극대화하는 게 처방의 핵심이다.
철도업계와 관련 기관들은 벌집을 쑤신 듯 발칵 뒤집혔다.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도 감지된다. 철도안전 확보 방안과 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총 3회에 걸쳐 들여다본다. <편집자 註> -
가칭 '철도안전기술원'처럼 철도안전을 책임지는 컨트롤타워(지휘소)를 두는 것은 유럽연합(EU) 등 철도 선진국에선 이미 시행하는 정책이다. 철도안전을 확립하는 데 있어 벤치마킹할 만한 족보(?)가 있는 대안이라는 얘기다.
철도안전 전문 집행기관의 설립은 철도안전 시책을 충실히 시행하면서 사고조사·분석을 통해 관련 제도를 지속해서 개선하기 위한 충분조건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EU는 지난 2004년 개별국가가 관리하던 철도안전 규정을 철도안전지침(RSD)으로 일원화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철도안전법에 해당한다.
철도안전지침의 특이점은 각 회원국에 철도안전전담기구(가칭 철도안전청)를 설치하도록 의무화한다는 점이다. 철도안전청은 선로변 관제나 신호·전력 등 설비의 허가, 철도차량의 시장 출고 허가, 안전승인증 발급, 열차운전면허 발급, 철도사업자·철도시설관리자 감독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임무를 달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사와 감사를 벌일 권한이 있다. 필요하다면 철도사업자와 시설관리자의 사용 기술, 시설·장비에 대한 접근권도 갖는다. 철도안전을 위해 전폭적인 권한을 위임받는 셈이다.
철도안전청에 권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업무 추진 시 모든 의사결정은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해야 한다. 모든 대상기관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의사결정의 근거를 알려줘야 한다. 또한 활동내용을 담은 연차보고서를 발간해야 한다. 보고서에는 회원국별 철도안전 현황과 제도 변경사항, 안전승인·허가 추이, 철도사업자와 철도시설관리자를 감독한 결과 등이 담긴다.
한 철도전문가는 "유럽철도청은 회원국 철도안전청의 독립성을 강조한다"며 "법적 구조는 물론 철도사업자나 철도시설관리자, 계약과 관련된 어떤 기관으로부터도 독립적이어야 한다. 이는 철도사업자보다 이용자를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철도안전지침은 단순 사고조사를 넘어 '사고징후'에 대해서도 철도안전청이 조사에 나설 수 있게 했다"면서 "이는 연차보고서 작성 의무화와 함께 철도안전이 지속해서 개선될 수 있도록 유도한 조치"라고 부연했다. -
철도의 발상지인 영국은 철도안전지침이 만들어진 2004년부터 철도안전전담조직을 두어 왔다. 철도에 대한 독립적인 안전과 경제규제를 위해 철도규제국(ORR·Office of Rail Regulator)으로 출발했고 2016년 고속도로 등 전략적 도로망에 대한 책임을 맡아 철도·도로청(ORR·Office of Rail & Road)이 됐다. 철도·도로청은 철도운영사와 시설관리자, 도시철도·노후철도·트램(노면전차), 철도산업 공급망을 대상으로 승객안전, 사고 및 위험징후 조사, 철도차량·시설물 안전, 철도종사자 건강, 철도안전 허가·승인 등의 업무를 한다.
고속열차 TGV(테제베)로 유명한 프랑스는 2006년 철도안전청(EPSF)을 설립했다. 프랑스 철도망은 남한의 6배가 넘는 국토를 촘촘히 연결한다. EPSF는 철도안전·점검, 차량 및 신규사업자 승인 등의 업무를 맡는다. EPSF는 교통부 업무를 대행하며 재무적·행정적 독립성을 보장받는다. 조직의 예산은 철도운영자가 내는 철도시설사용료와 철도안전 허가업무 수수료 등으로 충당한다.
독일은 철도와 철도산업에 관한 안전·면허 감독기관으로 연방철도국(EBA)을 둔다. 독일 내 모든 철도의 3분의 2가 EBA 감독을 받는다. 연방교통국의 한 부분이지만, 독립적인 기관으로서 철도시설에 대한 계획 승인이나 차량·시설에 관한 허가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아울러 EBA는 독일 내 유럽 승객의 소비자 권리 강화에도 힘을 쏟는다.
한국교통대학교 서광석 명예교수는 "철도안전 업무는 전문성을 가진 제3자가 객관적·독립적으로 해야 하고, 그에 걸맞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가령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철도시설의 안전과 관련해 개선사항을 지적해도 의무가 아닌 권고사항일 뿐이어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이를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