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출신 공모 통해 선임 사례 여럿법 개정 후 금융위 제청권만 넘겨받아재발 방지 제시만이 현 사태 해결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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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선임된 지 보름이 됐지만, 아직 집무실에 발을 들이지 못하고 있다.

    노동조합은 여전히 윤종원 행장의 출근을 막고 있으며 이번 낙하산 인사의 책임을 정부에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의 요구는 이번 사태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다. 그러나 사과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적절한 인사였다는 대답으로 출구를 잃었다.

    이제 남은 협상 카드는 재발 방지만 남았다. 일각에선 정부와 노조가 한 발씩 물러날 수 있는 기업은행장 공모제 부활을 거론하고 있다.

    ◆과거에도 있었던 기업은행장 공모제도
    기업은행장 공개 모집은 10년 전까지 실시했던 제도다.

    학계, 중소기업 유관단체, 법조계 인사 등으로 구성된 행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를 모집하고 서류심사와 면담을 거쳐 적임자를 2배수로 압축해 재경부에 추천하면 재경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절차다.

    기업은행 직원들에게 존경받는 故 강권석 은행장도 관료 출신이지만 공모를 통해 선임됐다. 2007년 연임 당시에는 국책은행장 연임 불가라는 불문율을 깨고 재선임된 바 있다.

    강 행장의 최대 맞수는 장병구 수협 대표였다. 장병구 대표는 외환은행 부행장 출신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던 수협을 취임 1년 만에 회생시켜 경영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 신임도 두터워 강 행장의 연임이 힘들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정부는 관례보다 실적을 선택했다. 강권석 행장은 재임 기간 인수합병을 거치지 않고 자체 성장만으로 자산 100조원 시대를 열었다.

    강권석 행장 뒤에도 기업은행은 공모를 진행, 당시 윤용로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을 선임했다. 윤용로 은행장도 관료 출신이지만 노조는 환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사라진 공모제도, 내부인사로 잡음 없었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기업은행이 공모제를 시행했던 시기는 2007년까지다. 공모를 통해서 관료 출신이 선임됐지만, 후보자의 이력이 공개되고 검증 절차를 거치면서 반대 기류는 크지 않았다.

    기업은행이 공모제를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당시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2007년 4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으로 정부산하기관관리기본법이 폐지됐다.

    이후부터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을 따르고 있는데, 이 법에서는 기업은행장 임면 시 임추위 절차를 거칠 의무가 사라졌다. 이때부터 기업은행장은 금융위원장 제청, 대통령이 임명 순으로 바뀐 것이다.

    공공기관운영에 관한 법률 제25조와 26조에서 공기업-준정부기관 임원의 임면을 다루고 있고 임추위를 거치도록 규정돼 있으나 기업은행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의무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다.

    법이 바뀌면서 정부의 입맛대로 인사를 선발할 수 있었지만, 기업은행은 10년 동안 낙하산 논란에서 벗어나 있었다.

    조준희 행장부터 권선주, 김도진 은행장까지 3연속 내부 출신 인사가 행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형평성 결여된 기업은행 지배구조 위태롭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6년 ‘금융회사 지배구조 감독규정’을 통해 사외이사를 포함한 임원의 자격요건 검증과 이사회 권한 등을 강화했다.

    핵심 골자는 이사회 내 임원추천후보위원회 구성이다. CEO의 장기집권을 막고 후계자를 양성하는데 보다 힘쓰라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법은 국책은행에겐 제외된다. 국책은행은 일반은행법보다 한국산업은행법, 한국수출입은행법, 중소기업은행법이 우선 적용되기 때문이다.

    민주당도 빈틈을 메우기 위해 법 개정을 요구한 바 있다.

    2016년 박용진 의원이 기업은행 임원의 자격요건에 금융회사 재직 경력 등의 요건을 규정하고 부적격자가 임원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2017년에는 노웅래 의원이 기업은행장과 임원 임명을 위한 임원추천위원회 설치 등을 담은 ‘중소기업은행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며 뒤를 이었다.

    기업은행 노조가 현재 당·정·청에 사과를 요구하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정치권 행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융위 입장은 법 개정은 기재부 소관이라며 미루고 있다. 기재부 역시 주무기관인 금융위가 해결할 일이라며 떠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은행은 기타공공기관으로 임추위 설치 의무가 없지만 같은 기타공공기관인 예탁결제원은 현재 공모를 통해 사장 선임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법 개정을 통해 노조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은행 노조도 무조건인 반대에서 한발 뒤로 물러난 상태다. 채널을 열어두고 실리적인 대화를 하겠단 것이다. 단, 재발 방지를 위한 대안을 제시해 달라는 게 그들의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