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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가 1000억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짓는 국립박물관에 중앙부처로는 처음으로 민간전문가인 '공공건축가'를 위촉한 가운데 뒷말이 무성하다. 문재인 대통령 고교 동창으로, 현 정부 들어 관련 업계에서 '건축대통령'으로 불리는 승효상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이하 국건위) 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일각에선 공공건축가 제도가 인맥을 통한 자리나눠먹기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0일 국토부에 따르면 오는 2025년 개관하는 국립도시건축박물관을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건립하기 위해 지난해 12월20일 중앙부처 최초로 공공건축가가 위촉됐다. 위촉된 J씨는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젊은 건축가상,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받은 젊은 건축사라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J건축사는 국건위 최연소 위원으로도 활동중이다.
국가기록박물관·디자인박물관·어린이박물관·디지털문화유산영상관 등과 함께 세종시 문화시설용지내 국립박물관단지에 들어설 도시건축박물관은 1만7174㎡ 대지에 전체바닥면적 1만7050㎡ 규모로 지어진다. 도시·건축 모형 전시·체험, 자료 수집·보존, 학술행사, 체험교육 등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총사업비는 1418억원으로, 국립박물관단지 전체 사업비 4287억원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J건축사는 완공때까지 도시건축박물관 건립과 전시부문 설계, 시공, 운영 등 사업 전반에 걸쳐 전문적인 검토와 자문을 할 계획이다. -
건설분야의 한 전문가는 공공건축가의 장점에 대해 "공공건축물의 수준을 높이고 신진건축가가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를 줄 수 있다"면서 "반면 설계과정에서 특정업체와의 유착으로 비리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사전에 막기 어렵다는 단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국토부가 중앙부처로는 처음으로 공공건축가를 위촉하면서 선정과정을 주먹구구로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위촉된 J건축사가 대통령 소속 위원회인 국건위 현역위원인데다 승효상 위원장과도 무관치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세종관가의 한 소식통은 "대형국책사업과 관련해 (J씨가) 쟁쟁한 건축가들을 제치고 공공건축가로 선정된 배경에 승 위원장이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J건축사 이력을 보면 2008년 자신의 건축사사무소를 열기 전 승 위원장의 건축사사무소인 '이로재'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승 위원장이 자신의 사무소에서 일했던 사람을 국책사업을 좌지우지하는 외부전문가로 밀어붙였다는게 업계의 불편한 시각이라는 것이다.
승 위원장은 부총리급으로 설립된 국건위 제5기 위원장으로, 업계에선 현 정부 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정평이 나 있다. 문 대통령과 경남고 동창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의 공간디자인을 맡기도 했다. 한 건축가는 "승효상씨는 공공건축가를 제안한 사람으로 현 정부 들어선 업계에서 건축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도시건축박물관 공공건축가 지정과 관련해선 "(국토부) 공무원이 공공건축가를 직접 추천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특정한 인맥을 통해 사업을 따고 활동하는 그들만의 집단이 있다"고 귀띔했다. 건축업계에선 이를 소위 공공건축 사단이라고 부른다. 서울대 건축학과 등 특정 학연이나 인맥으로 연결돼 관계가 돈독하고 여기에 소속되지 않으면 공공건축 부문에서 진입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다는 설명이다. J건축사는 자신의 건축사무소 공동대표인 남편을 이로재에서 동료로 만나는 등 승 위원장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J건축사와 승 위원장의 인맥은 국토부가 밝힌 J건축사 수상경력에서도 일부 드러난다. J건축사는 2012·2015년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을 각각 받았다. 승 위원장은 2015년 서울시 건축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것이 확인됐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랜 친구로 알려진 승 위원장은 당시 서울시가 공공건축물 수준을 높이고 신진건축가를 발굴·양성하려고 도입한 제1대 총괄건축가였다.
J건축사가 받은 2011년 문체부 젊은 건축사상도 들여다보면 한 다리 건너 승 위원장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는 설명이다. 문체부 설명으로는 당시 심사위원은 김인철 중앙대 교수를 비롯해 총 5명이었다.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온 L건축가도 심사위원 명단에 있었다. L건축가는 제3대 서울시 총괄건축가인 K건축가와 함께 승 위원장 라인으로 알려졌다. L건축가는 지난해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국내총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행사 운영위원장이 승 위원장이었다. 행사 전시기획자중 현장 프로젝트 담당자는 J건축사 남편이 맡았다. 승 위원장을 중심으로 학연·인맥으로 얽혀있는 셈이다.
J건축사가 현역 국건위 위원인 것도 논란거리다. 엄밀히 말해 공공건축가 제도는 국건위 사무가 아니다. 기본적인 공공건축가 지정 현황 자료도 없다. 다만 국건위는 건축기본법시행령 제21조(민간전문가 참여)에 건축사·기술사·교수를 민간전문가로 추천할 수 있게 돼 있다. 일각에선 국건위가 현업부서가 아닌데도 국책사업 공공건축가로 현역위원을 추천한 것은 자가발전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이에대해 국건위의 한 관계자는 "도시건축박물관 공공건축가 선정과정에 대해선 말할 수 없다"면서 "(다만) 국건위에 민간전문가 추천 기능이 있다"고만 했다.
일각에선 한국 건축계의 좌장격인 승 위원장이 후배를 키우는 것을 나쁘게만 볼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재능을 보고 순수하게 추천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배에게 문이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과 문까지 데리고 가서 열어주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세종시의 한 건축가는 "공공건축가를 신청해도 아무나 선정되는 게 아니다"면서 "지방에 있는 건축사는 역량이 있어도 특정 인맥에 밀리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
국토부의 주먹구구식 보여주기 행정이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토부 설명을 종합하면 국토부는 도시건축박물관 공공건축가 지정을 위해 새건축사협의회, 건축도시공간연구소, 건설을 담당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등에 추천을 요청했다. 50여명 넘게 추천이 들어오자 국토부는 자체 논의를 통해 15명쯤으로 후보자를 추린 뒤 명단을 가지고 국건위에 가서 최종 후보자를 압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후보군을 줄인 뒤 국건위에 가서 얘기했다. (국건위에서) 후보대상자에게 공공건축가를 할 수 있는지 물어봐 주기도 했다"며 "결정은 국토부가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국건위가 최종 후보자를 골라줬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다. 건설분야 한 책임연구원은 "승 위원장이 추천을 했다면 (국토부) 공무원들이 이를 반대했겠느냐"고 되물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공공건축가를 위촉하기 위해 공모를 할 때가 많다고 했다. 국토부는 이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모를 통해 객관적인 심사기준을 마련하고 평가를 거쳐 고득점자를 위촉한 건 아니다"고 했다. 국토부는 관련 기관·단체에서 후보자 추천이 들어오자 내부 논의를 거쳐 신진건축사와 소위 명망 있는 인사를 먼저 배제했다고 설명했다. 사업을 진행하려면 공공건축가가 자문위원회도 구성하고 국토부와 실무회의도 해야 하는데 초짜는 경험이 부족해서, 이름 있는 올드보이(OB)는 행정업무를 국토부가 떠안을 가능성이 커 피곤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국토부가 외부기관에 애초부터 중견 건축가를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니었다. 뉴데일리경제가 수소문한 결과 행복청에서 추천했던 인사 중에는 역사박물관장을 지낸 인사도 포함돼 있었다. 국토부 잣대로는 1순위 탈락자로 분류됐을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국토부의 선별기준이 행정편의주의고, 공공건축가 제도 도입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건설분야 한 책임연구원은 "명망 있는 분 중에도 권위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다"면서 "(국토부로선) 결과가 나오면 책임은 공무원이 져야 하는 상황에서 공공건축가를 모시고 일해야 하는 게 싫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