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바이러스 여파, 정유업계 실적 발목작년 미중 무역분쟁, 올해는 코로나복병 만나 국제유가 하락 여파… 재고평가손실 부담도
  • ▲ 자료사진.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자료사진. SK이노베이션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가 짙다. 지난해 정유업계 수익성 저하를 야기했던 정제마진을 또 다시 하락시켰다. 게다가 국제유가도 떨어뜨리면서 재고평가손실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운송량 감소에 따른 항공유·선박유 부진에 이어 업황 침체를 한층 더 가중시키고 있다.

    5일 업계에 따르면 2월 4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2.3달러로, 전주보다 0.7달러 하락했다. 정제마진은 1월2주 0.2달러를 기록한 이후 2월2주 4.0달러까지 4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했으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2월 3주부터 다시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정제마진은 정유제품 판매가에서 원유 구입가를 뺀 가격으로, 정유사 수익성을 나타낸다. 국내 정유업계의 정제마진 손익분기점(BEP)은 배럴당 4~5달러로, 그 이하를 기록할 경우 석유제품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올해 정제마진이 BEP를 넘긴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정제마진이 하락세를 그리는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 확산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미국과 중국의 1차 무역합의로 석유제품 수요 증가에 따른 정제마진 개선이 기대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최대 정유 시장인 중국에서 석유수요가 급감했고, 결국 정제마진 하락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른 소비 심리 위축, 물동량 감소 등으로 올해 전 세계 석유 수요가 11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지난해보다 하루 평균 15만배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당초 골드만삭스는 석유 수요가 지난해보다 하루 평균 55만배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제 여파를 반영, 이 같이 전망치를 수정했다.

    1958년 이후 석유 수요가 줄어든 해는 미국이 경기 침체를 벗어나던 1993년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2009년 등 세 차례에 불과하다.

    이에 앞서 컨설팅업체인 팩츠글로벌에너지(FGE)도 올해 석유 소비량이 하루 평균 22만배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중국의 국영 석유천연가스집단(CNPC)과 연계된 연구원들은 1분기 중국 석유 수요가 지난해 1분기에 비해 36%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국제유가 하락까지 겹치면서 정유업계는 재고평가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대개 정유사는 원유를 사고 2~3개월 치를 비축해놓는다. 유가가 높을 때 샀던 원유비축분들은 재고평가손실로 작용한다. 유가가 예상보다 크게 하락할 경우 재고평가손실도 더 커지는 만큼 실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3일 국제유가는 브렌트유 기준 전일대비 배럴당 0.04달러 떨어진 51.86달러를 기록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세계 경제 침체 가능성, 미 원유 재고 증가 전망 등으로 하락했다. 일각에서는 40달러대까지 하락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 자료사진. ⓒ정상윤 기자
    ▲ 자료사진. ⓒ정상윤 기자

    유가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추가 감산 여부 등에 따라 변동할 것으로 보인다. 4일(현지시간) OPEC과 주요 산유국 연합체인 OPEC+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석유 수요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생산량 추가 감축안 논의를 시작했다.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OPEC 회의에서 논의될 원유 감산안은 유가의 향방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여기서 의미 있는 규모의 감산 합의에 실패해 유가 하락세를 되돌릴 수 없게 된다면 업계가 떠안을 재고평가손실은 막대해진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서 OPEC의 좌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하루 150만배럴을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는 OPEC+ 기술위원회가 전날 권고한 감축량보다 많은 것으로, 러시아의 경우 감산 규모에 난색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기술위원회는 2분기 추가 감산 규모를 하루 60만~100만배럴로 제시했다. 현재 OPEC+의 감산 규모는 하루 210만배럴이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OPEC과 기타 산유국들의 모임이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한 유가 하방압력이 제어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코로나19로 감소한 석유 수요가 회복되지 않은 한 정제마진은 눈에 띄게 상승하기 어려울 것으로 점쳐진다. 여기에 유가 하락에 따른 재고평가손실까지 겹친다면 1분기 정유사들의 실적 부진은 불가피하다.

    삼성증권은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이 1분기에만 각각 4040억원, 3205억원의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영업손실 가운데 재고평가손실 규모는 SK이노베이션이 3550억원, 에쓰오일은 2800억원이다.

    지난해 정유사들은 미중 무역 분쟁에 중국발 경쟁 가속화까지 더해지면서 정제마진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등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여전히 실적 부진의 탈출구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한 해 동안 미중 무역 분쟁이라는 불확실성에 정유업계가 흔들렸는데, 올 들어서는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또 만났다"며 "국내 정유업체들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에 수출의존도가 높아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업계는 침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때 보다 실적이 미치는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1분기는 물론, 2~3분기에도 실적 개선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라고 진단했다.

    한편, 지난해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4사의 영업이익은 모두 3조1201억원으로, 전년 4조6523억원에 비해 32.9% 하락했다. 특히 2016년 7조8737억원 이후 3년 연속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