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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석유공사를 인수할 기업은 선경그룹입니다."
1980년 11월 박봉환 당시 동력자원부 장관이 이렇게 발표하자 재계는 '새우가 고래를 삼킨 격'이라며 크게 술렁였다. 재계 1, 2위 그룹을 제치고 10위권의 선경(현 SK)이 대한석유공사(유공) 인수기업으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의외의 결과가 아니라 선경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오랜 기간 쌓아온 사우디아라비아 왕실과의 관계가 밑바탕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선경은 유공 인수 7년 전인 1973년 일본의 이토추 상사, 데이진과 공동 투자로 정유공장 설립을 추진한 바 있다. 선경은 사우디로부터 하루 15만배럴의 원유 공급을 약속받는 등 정유사업 진출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1973년 10월 발생한 1차 석유파동으로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당시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한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이유로 한국을 석유 금수(禁輸)국가로 분류했다. 이어 석유수출량을 50% 삭감하고, 나머지도 10개월 내 중단한다고 통고했다. 당시 경제개발에 주력하던 박정희 정부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정부는 난국 타개를 위해 최 선대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가 이미 한 번 원유 공급 확약을 받았을 정도로 사우디 왕실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고 있었다. 그는 사우디 왕실과 접촉하는 한편, 야마니 석유장관과 우호적인 관계를 다져갔다.
1977년 최 선대회장은 야마니 장관의 초청으로 사우디를 방문하기도 했는데, 민간인 신분으로 석유장관의 공식초청을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국 1973년 12월부터 한국이 수입하는 원유 전량을 사우디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게 됐다.
5년 뒤 재차 위기가 찾아왔다. 1978년 12월 제2차 석유파동이 발발한 것이다. 견디지 못한 정부는 1980년 초 이를 타개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원유 도입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석유수급 조절 명령'을 발동했다.
대부분의 노력은 불발로 끝났다. 다만 최 선대회장이 직접 나선 선경만이 야마니 장관으로부터 하루 5만배럴 공급 약속을 받아왔다. 이후 1980년 7월 사우디로부터 첫 원유가 국내에 공급됐다.
이런 가운데 유공 지분 50%를 확보하고 있던 미국의 걸프(Gulf)사가 1980년 8월 지분 전체를 매각키로 결정했다. 정부는 1980년 10월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발표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아무도 선경이 유공을 인수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1억달러에 이르는 인수자금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야마니 장관으로부터 선경이 정유사업을 하게 되면 필요한 원유를 공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최 선대회장은 자금 조달에서 재차 수완을 발휘했다. 알 사우디 뱅크에서 1억달러의 대부 보증서를 받아온 것이다.
결국 정부는 유공 인수의 핵심인 '원유 확보 능력'과 '자금 조달 능력' 측면에서 우수하다고 판단한 선경을 인수 주체로 결정했다.
유공 인수 당시 재무장관을 맡고 있던 이승윤 전 부총리는 2008년 펴낸 최 선대회장 추모서적 <최종현, 그가 있어 행복했다>에서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을 기폭제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이는 사실상 '정부 대 정부'의 관계로는 석유 수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국도 '민간 대 민간' 베이스로 전환해야 하는 국면을 맞게 됐다. 미리 준비해온 최 회장의 SK가 인수하게 된 것은 사필귀정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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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을 인수한 최 선대회장은 종합 에너지·화학기업으로의 과감한 변신을 단행했다. 중동과의 교역 규모를 크게 늘려나갔고, 1조5000억원을 투입해 1991년까지 9개의 신규 석유화학공장을 설립했다.
이로써 석유화학산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원유정제에서부터 합성고무·합성섬유 원료 등 석유화학제품에 이르는 전 계열의 완전 수직계열화를 이뤄냈다. 16년 만에 이른바 '석유에서 섬유까지'의 꿈을 현실로 만든 것이다. 이는 선경의 역사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산업사에도 길이 남을 하나의 금자탑이었다.
이 과정에서 사명은 네 차례 바뀌었다. 선경그룹에 인수되면서 ㈜유공으로, 1997년에는 그룹 이름이 선경에서 SK로 바뀜에 따라 SK주식회사가 됐다. 2007년 그룹이 지주회사제를 도입했을 때 SK주식회사(지주사)와 SK에너지(사업자회사, 현 SK이노베이션)로 분사된 후 2011년부터 지금의 사명을 쓰고 있다.
국가 석유산업 기반의 역할을 수행하며 경제발전을 견인한 SK이노베이션은 2014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 이상 급락하면서 어닝쇼크를 겪었던 경험을 거울삼아 최근 끈질기게 사업다각화를 진행하고 있다.
2016년까지 영업이익의 과반을 차지했던 전통적 정유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종합 에너지·화학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전략 아래 비정유 부문을 강화한 결과 2017년부터 석유화학과 윤활유 등 사업이 석유 부문을 넘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SK이노베이션은 김준 대표이사가 이끄는 SK이노베이션 산하에 △SK에너지 △SK종합화학 △SK루브리컨츠 △SK인천석유화학 등 4개 자회사로 구성돼 있다.
각 사를 총괄하는 SK이노베이션은 현재 전 세계 주요 광구를 탐사하고 석유와 LNG를 생산해 대한민국의 에너지원을 확보하는 석유개발사업을 하고 있다. 차세대 먹거리 사업으로 꼽히는 전기자동차 배터리 사업과 배터리 분리막(LiBS)도 이곳에서 하고 있다.
자회사 가운데 매출이 가장 높은 SK에너지는 대한민국 최대 정유회사로, 울산 콤플렉스에서 생산한 다양한 석유제품을 국내외로 수출하고 있다. 휘발유, 경유, 등유, LPG 등을 생산하는 울산 CLX는 하루에 84만배럴의 원유를 정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
SK종합화학은 대한석유공사 시절부터 국내 최초로 방향족 제조공장(1970년)과 나프타분해시설(NCC, 1972년)을 가동해 국내 석유화학산업 발전의 기틀을 제공한 곳이다. 석유화학제품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과 일상용품, 가전, 섬유산업의 원재료인 벤젠·톨루엔 등을 생산하고 있다.
SK루브리컨츠는 최고급 윤활유를 생산하는 회사이자 고급 윤활기유시장 글로벌 1위로, 러시아·중국·미국 등 60여개국에 윤활유 완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부문별로 상호보완작용을 하면서 불리해지는 시황에 흔들리는 기조가 줄어들었고 정유가 부진할 때 비정유가 회사를 이끄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단순히 원유를 정제하는 회사에 불과했던 곳이 반 세대를 거치면서 ▲정유 ▲석유화학 ▲전기차 배터리 등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갖춘 국내 최대 에너지·화학기업이 된 것이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석유 기업 이미지가 강하지만, 최근에는 비정유를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고 있다"며 "외부환경 변화의 영향이 큰 정유사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차세대 먹거리인 배터리·화학에 대한 집중 투자를 통해 지속 성장이 가능한 구조로 바꾸겠다는 경영진의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