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1분기 영업손실 7천억대 전망가동률 낮추고 정기보수 앞당기고… '버티기'"경기 전망 불확실성 증폭… 감세 등 정부 도움 절실"
  •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 SK 울산 CLX. ⓒ성재용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석유수요가 감소하고 국제유가가 급락하자 국내 증시에서 정유·석유화학업체들의 실적 전망치가 하락하고 주가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실물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세제 감면 등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기준 증권사 3곳 이상의 실적 추정치가 있는 석유 및 가스, 화학업종 13개 업체의 1분기 영업손실 규모는 모두 660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3개월 전 전망치(영업이익 1조6490억원), 1개월 전 전망치(영업이익 4310억원)와 비교하면 실적 눈높이가 크게 하락한 것이다.

    특히 국내 최대 정유업체인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7326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다. 지난해 1분기 3311억원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서는 것이다. 에쓰오일도 1분기 477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전환할 것이라고 증권사들은 전망했다.

    대한유화와 롯데케미칼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지난해 1분기에 비해 93.7%, 86.1% 급감하는 등 13개사 중 11개사의 이익이 줄거나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봤다.

    연간 실적 눈높이 역시 낮아지고 있다. 13개사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는 작년보다 24.9% 감소한 4조398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3개월 전 전망치(7조9425억원)보다 49.1%, 1개월 전 전망치(5조7192억원)보다 29.3% 줄어든 것이다.

    SK이노베이션 등 대형 정유사들의 실적 부진은 정제마진이 줄어든 데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도 대폭 감소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지난 20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가 배럴당 마이너스(-) 37.6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국제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날 블룸버그는 "글로벌 원유산업에 괴멸적인 하루"라고 보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적인 수요가 급감했지만, 원유 공급이 넘쳐났던 것이 이번 유례없는 급락 사태의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WTI 5월물(선물)의 만기를 하루 앞둔 상황에서 일부 헤지펀드가 하루 뒤 원유를 넘겨받기보다 대거 손절한 후 6월물로 갈아타는 '롤 오버'를 선택한 점도 영향을 미쳤다.

    유가까지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정유업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정유사는 수입한 원유를 정제해 판매하는 과정까지 2~3개월이 걸리는데, 이번처럼 단기간에 유가가 급락하면 과거에 비싸게 산 원유비축분의 가치가 떨어지는 '재고평가 손실'을 보게 된다.

    정제마진도 반등할 기미가 안 보인다. 4월 1주 정제마진은 -0.1달러로, 3월 3주부터 5주 연속 마이너스다. 현 수준으로는 팔수록 손해가 나는 셈이다. 팔아도 손해인데, 코로나19로 수요가 급감해 팔수도 없다. 석유는 쌓이지만, 산유국과의 장기계약으로 원유는 계속 들어와 저장비용만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이다.

  • ▲ ⓒ정상윤 기자
    ▲ ⓒ정상윤 기자

    실적 부진 전망을 반영하듯 13개사의 평균 주가는 연초 이후 13.7% 하락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전날 종가가 9만8000원으로, 연초 이후 34.3% 떨어졌다. 이어 △에쓰오일 -29.5% △효성화학 -28.7% △한화솔루션 -23.6% 등의 순으로 하락 폭이 컸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품을 만들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인데 유가 급락, 수요 감소로 인한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며 "마이너스 정제마진도 당분간 계속돼 정유사들의 실적은 더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재 정유사들은 수요 절벽에 대비해 공장가동률을 85% 미만으로 낮추고 정기보수 앞당기기, 희망퇴직 시행 등을 검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공장가동률을 100%에서 85%로 낮췄다. 여기에 2분기 예정된 정기보수를 1~2주가량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보수에 들어가면 가동률은 현 수준보다 약 10%p 더 내려간다.

    현대오일뱅크는 제2공장 원유정제처리시설 및 중질유분해시설 가동을 다음달 22일까지 중단하기로 했고, GS칼텍스는 여수공장의 정제설비 정기보수를 예정보다 앞당겨 실시하고 있다. 연초부터 가동률을 일시적으로 80% 수준까지 낮춘 에쓰오일은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 실시를 검토하고 있다.

    정부도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재고로 고심 중인 정유사에 석유제품 저장창고를 개방하고 유동성 위기를 감안해 석유수입부과금 징수를 3개월 유예하기로 했다.

    업계는 정부 지원이 부족하다며 세금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세율 3%인 원유수입 관세를 한시적으로라도 폐지하거나 축소하고 원유수입부과금은 유예가 아닌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개별소비세나 부가가치세 등도 감면 혹은 탄력세율 적용 등의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한국은 비산유국 중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는 유일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다. OECD 비산유국들은 기초 원자재인 원유에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고, 산유국인 미국이 관세를 배럴당 5.25센트씩 부과한다. 정유4사가 지난해 정부에 낸 석유수입부과금은 1조4086억원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납부 유예를 골자로 하는 지원대책으로는 돈맥경화를 해소할 수 없다"며 "요즘처럼 시황이 나쁠 때는 한시적으로라도 원유 관세를 인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2일 정유업계 간담회를 개최해 업계의 애로를 청취하고 대책 방향을 논의한다.

    석유협회와 정유4사 최고경영자(CEO)가 모두 참석할 예정으로, 성윤모 장관과 정유4사 수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정유사들은 정부에 세제 혜택 등 사태 장기화에 따른 실질적인 대책을 요청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