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친환경 규제 따른 수혜 전망중국 배터리 업체 위축 따른 반사이익도
  • ▲ LG화학 폴란드 브로츠와프 배터리공장. ⓒLG화학
    ▲ LG화학 폴란드 브로츠와프 배터리공장. ⓒLG화학

    전기차 배터리 공급 부족 예상 시점이 1~2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배터리3사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는 배터리 수급이 안 되면 공장 운영에 차질을 빚는 만큼 배터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공급자 우위 시장이 장기화될 가능성은 낮지만, 유럽의 친환경 규제에 따른 수혜와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위축으로 인한 반사이익 등 국내 업체에 '꽃길'이 열렸다는 분석이다.

    8일 업계 및 시장조사기관 등에 따르면 이르면 내년, 늦어도 내후년에는 배터리 물량 부족에 따른 '배터리 대란'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업체와 갑-을 관계가 바뀐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과거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을 거래처로 확보하기 위해 배터리 업체간 출혈경쟁까지 벌어졌던 상황과는 정반대가 됐다.

    업계에서는 당초 2024년을 배터리 공급 부족 시점으로 봤지만, 올해 완성차 업체들의 공격적 투자 발표를 볼 때 이 시점이 3년가량 앞당겨질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2023년 전기차용 배터리 공급량은 776GWh인 반면 수요량은 916GWh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본격적인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전환되는 셈이다.

    실제 완성차 업체들에게 안정적 배터리 공급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 됐다. 전기차를 만들어 팔고 싶어도 배터리를 제 때 공급받지 못하면 생산라인 자체가 멈춰 서기 때문이다.

    올 들어 영국 자동차 업체 재규어의 전기차 라인(I-Pace)이 LG화학의 배터리를 원하는 만큼 공급받지 못해 생산을 일시 중단했고, 아우디의 전기차 생산라인(e-tron) 역시 공장 가동에 일부 차질을 빚었다. 포르셰 전기차 역시 미국 내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배터리 공급이 여의치 않아 생산 물량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도 유럽과 미국 등에서 생산라인을 신설·증축하는 등 생산량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수급 상황은 여전히 타이트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당장 현대·기아차만 하더라도 2023년까지 최대 9종의 신형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기로 하는 등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사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서다.

    미래에셋대우증권은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가 지난해 약 320만대에서 2025년 1600만대 수준으로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이미 수주한 물량이 많은데다 이들의 신차도 내연기관 차량보다 전기차 위주로 발표되다보니 배터리 확보전이 거세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중국 업체의 경우 2022년 정부 보조금이 없어지면 투자 계획이 무산되거나 축소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향후 공급 물량이 예상보다 적을 수도 있다. 특히 중국 업체 중에는 유럽, 미국 지역 유력 완성차 업체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을 맞출 수 없는 기업도 많을 것이라는 게 업계 추정이다.

    이 관계자는 "이미 일부 완성차 업체는 배터리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며 "배터리 공장 실가동률을 고려하면 공급량은 통계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 배터리3사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기지 현황. 자료=각 사. ⓒ한국기업평가
    ▲ 배터리3사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기지 현황. 자료=각 사. ⓒ한국기업평가

    뿐만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에도 유럽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국내 업체들의 점유율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환경 파괴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면서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의 구매를 줄이는 대신 상대적으로 공해 발생 우려가 적은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커진 탓이다.

    인사이드EV 등 외신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전 세계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9% 줄어드는 동안 전기차 판매량 역시 12% 감소했다. 다만 지역별로 중국에서의 전기차 판매량이 51% 급감한 반면, 유럽에서의 전기차 판매량은 외려 60% 증가했다.

    유럽연합(EU)은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조로 만들겠다는 '그린딜'을 추진하면서 전기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자동차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유럽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종전 ㎞당 130g에서 95g으로 축소토록 강제하며 이를 어길 경우 자동차 제조사는 g당 95유로를 내야 한다.

    실제 EU 27개국에 4월 새로 등록된 차량의 연료 유형을 보면 휘발유 비중이 2019년 59%에서 올해 52%로, 경유 비중은 같은 기간 32%에서 30%로 떨어진 반면 전기차 비중은 7%에서 17%로 확대됐다. 4월 한 달 동안 유럽 자동차 판매가 지난해 4월에 비해 78% 감소하는 동안 전기차 판매 감속 폭은 16%에 그쳤다.

    배터리가 필요한 완성차 업체가 유럽, 미국 등으로 포진한 국내 업체로선 호재다. 전기차 절대 강자인 테슬라의 경우 파나소닉에 이어 LG화학이 CATL과 함께 배터리 공급사에 포함됐다.

    전기차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는 폭스바겐은 'MEB'를 추진하면서 유럽향에 LG화학과 삼성SDI를, 미국향에는 SK이노베이션을, 중국향에는 CATL을 각각 파트너로 선정했다. 아우디, 포르쉐, BMW, 르노, 현대·기아차 등에도 LG화학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를 공급한다.

    KB증권에 따르면 LG화학은 유럽 자동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이 70%에 달한다. LG화학은 폴란드 배터리 공장을 통해 유럽시장 지배력을 확보했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은 헝가리에 공장을 두고 있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과의 지리적 이점을 기반으로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의지다. 유럽 전기차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이 전망됨에 따라 공장 증설을 계획하는 등 생산 규모 확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유럽 전기차 시장은 올해 중저가 모델이 다수 출시돼 100만대에 육박할 것"이라며 "니켈·코발트·망간으로 이뤄진 삼원계 기술과 유럽 현지 공장에서의 대응력이 뛰어난 한국 배터리업체 점유율의 상승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반해 중국 전기차 시장은 역성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여파가 크다. 1분기 현지 공장들이 대거 정지하고 내수시장이 침체되면서 전기차 배터리시장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중국 업체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자국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타국가 배터리 업체를 견제했다. 적극적인 산업 보호정책이 독이 된 셈이다.

    SNE리서치는 중국의 4월 전기차 판매량이 9만3000대로, 지난해 4월보다 29.1% 줄었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 이후 9개월째 전년동월대비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전기차 배터리 업체간 점유율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 아직 4월 점유율은 나오지 않았지만, 1분기만 보더라도 중국 전기차에 주로 배터리를 공급했던 중국 배터리업체 점유율은 1년 만에 △CATL 23.4→17.4% △BYD 15.1→4.9% △구오싼(Guoxuan) 2.1→1.2% 등으로 내려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국 산업 보호정책 등에 따른 가격경쟁력이 내수시장 침체로 줄어들면서 기술 격차가 또렷해지고 있다"며 "유럽에 수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공장을 증설한 결실을 최근 맺고 있는 만큼 유럽시장에서의 한국 배터리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