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4개 법원 공탁금 보관은행 자리 물러나, 점포폐쇄 가속 일반지점 3곳도 문 닫아, 하반기 9곳 폐쇄+자가점포 4곳 매각법원 17곳 보관은행 공개경쟁 막 올라…은행권 물밑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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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제일은행이 63년간 지켜온 법원 공탁금 보관은행 자리를 스스로 포기했다. 

    국내 점포의 절반을 없앤다는 SC제일은행의 계획이 본격화한 것인데 일반 영업점이 아닌 알짜배기 수익이 보장된 공탁금 관리은행 자리를 내놓은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은행권에서는 SC제일은행이 떠난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한창이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SC제일은행은 지난 6월 공탁금을 관리하고 있는 총 14개 법원(지원 포함)에 공탁금 보관은행 포기 의사가 담긴 공문을 발송한 것으로 확인됐다. 

    SC제일은행이 공탁금을 관리하고있는 법원은 춘천지방법원,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대전지방법원 홍성지원, 대전지방법원 공주지원,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창원지방법원,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창원지방법원 김해시법원,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거제시법원, 전주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 전주지방법원 남원지원,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익산시법원 등 총 14곳이다.   

    이 중 춘천지방법원과 전주지방법원, 강릉지원, 원주지원, 홍성지원, 정읍지원, 남원지원, 통영지원, 상주지원, 공주지원 등은 SC제일은행의 전신인 제일은행 시절(1958년)부터 63년동안 관리해온 곳이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현재 점포가 없는 거제시법원과 익산시법원을 제외한 12개 법원의 지점과 출장소를 내년 4월~5월까지 모두 철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법원은 SC제일은행이 공탁금 보관은행을 포기함에 따라 금전‧유가증권 공탁물을 수납·관리·지급하는 업무를 전담할 새로운 은행을 물색 중이다. 

    공탁금 보관은행은 은행들이 탐내는 알짜배기 사업이다. 보관은행으로 지정만 되면 5년 동안 수백억원에서 최대 수천억원의 공탁금을 관리하면서 저원가성 예금조달 효과와 민원인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탁금은 민‧형사 사건에서 당사자 간 합의금이나 배상금 규모에 다툼이 있을 때 최종 금액이 확정될 때까지 법원이 맡아두는 돈이다. 

    공탁금 보관은행을 거머쥐기 위한 은행들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SC제일은행이 기관영업의 알짜 자리를 스스로 내려놓은 배경에 이목이 쏠린다. 

    ◇점포 절반 폐쇄 본격화…철수 쉬운 법원부터 발 빼

    SC제일은행의 모기업인 SC그룹은 지난 5월 1분기 실적발표 후 컨퍼런스 콜에서 글로벌 점포 수를 절반으로 축소한다고 밝혔다. SC그룹은 현재 59개국에 진출, 776개 지점을 운영 중인데 최종적으로 지점 수를 400여개로 줄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그룹의 방침에 따라 한국법인이 직격탄을 맞았다. SC제일은행은 2020년 말 기준 전국에 199개의 점포를 보유 중인데 이중 100개만 남기고 절반을 없애는 절차를 진행중이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은행들의 점포폐쇄를 깐깐하게 살피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3월부터 은행들이 지점을 닫을 때 고객에게 미칠 영향과 대체 수단 여부 등을 분석한 사전영향평가를 은행으로부터 보고받고 있다. 

    금융거래 비대면 확산과 디지털전환을 이유로 은행들이 영업점을 빠르게 줄이는 과정에서 금융소비자의 접근성과 편리성이 악화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조치다. 

    평가 결과 소비자의 불편이 크다고 판단되면 점포를 유지하거나 지점을 출장소로 전환하도록 했다. 

    그러나 사전영향평가에서 법원 점포폐쇄는 비교적 넓게 허용하고 있다. 점포폐쇄가 금융취약계층의 금융접근성에 큰 영향을 주지 않거나 지자체‧학교‧기업 등과의 업무계약 종료로 인한 입점 점포의 폐쇄의 경우 외부 전문가의 평가 참여를 생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SC제일은행이 금융감독원의 사전영향평가에서 법원이 비껴간 점을 이용해 법원 점포부터 철수하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며 “일반 영업점은 임대계약 만료 전 철수시 위약금을 물어야 하지만 법원 출장소는 그런 게 없어 철수 부담도 크지 않다”고 전했다. 

    SC제일은행은 법원 점포와 별도로 일반 지점과 자가점포 매각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서울 구로지점과 충주지점을 폐쇄했으며, 하반기 전국 9개 지점 폐쇄를 검토 중이다. 또 지난 7월까지 자가점포 8개를 매각했고, 현재 자가점포 4곳도 매각을 진행중이다. 

    SC제일은행의 몸집줄이기에 속도가 붙으면서 직원들의 설자리는 부족해지고 있다. 

    이에 SC제일은행 노조는 지난 5일부터 서울 종로 본점 등에서 점포폐쇄 저지 투쟁에 돌입했다. 지난 17일에는 이기동 SC제일은행 노조위원장이 정은보 금감원장을 만나 사측의 일방적인 점포폐쇄를 중단시켜 줄 것을 요청했다. 

    이기동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노조와 협의도 없이 법원출장소 폐쇄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며 “이는 단체협약 중 ‘고용안정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것으로,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탁금 보관은행 빈자리 쟁탈전 치열, 역대급 공개경쟁 

    SC제일은행이 남긴 법원의 공탁금 보관은행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은행들의 물밑싸움이 뜨겁다.  

    공탁금 보관은행 선정은 주로 법원마다 기존 관리은행의 적격성만 심사한뒤 계약을 연장하는 수의계약 방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번에는 공개경쟁을 대거 도입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달 26일 SC제일은행이 맡고 있던 법원 14곳을 포함해 재지정 시기가 도래한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서부지방법원,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등 총 17개 법원의 공개경쟁을 공고했다. 

    일반은행과 특수은행들이 공개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데 복수신청된 경우 공탁금관리위원회에서 평가기준에 따라 심사, 평가한 후 대법원장이 최종 보관은행을 지정한다. 반면 단수 신청된 경우 신청은행과 수의계약으로 보관은행을 지정한다. 

    법원행정처는 오는 25일까지 신청서를 접수 받고, 보관은행 지정은 오는 11월 말 결정된다. 선정된 은행은 내년 3월~5월부터 오는 2026년 12월 말까지 공탁금 보관은행 자격을 얻는다. 

    평가항목은 재무구조의 신뢰성(30점)과 공탁 등 법원업무 수행능력(40점), 민원인 이용 편의성 및 사회공헌도(30점)로 총 100점 만점이다. 

    총 159개(본원, 지원, 시‧군법원)의 법원 중 현재 가장 많은 법원의 공탁금을 관리하는 곳은 농협은행으로 75개 정도를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공탁금 규모 면에서는 굵직한 지방법원을 챙기고 있는 신한은행이 월등하다. 

    시‧군법원은 농협은행이, 본원 등 규모가 큰 법원은 신한은행이 사실상 독식한 구조다. 

    은행권 관계자는 “법원행정처가 역대 최대로 공개경쟁을 공고하며 은행들에게 문호를 열어준 만큼 시중은행과 지방은행 간 치열한 국지전이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