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 ‘2년 유예’ 결정됐지만 의무화 자체가 논란외과계 “응급·고위험 수술 기피현상… 결국 환자 피해” ‘기피과’ 전락한 상태서 본회의 통과시 미래 외과의사 ‘전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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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30일) 오후 5시 국회 본회의에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상정된다. ‘위축된 의료의 시대’를 우려하는 의료계의 반대가 거센 상황이지만 이미 여야 합의가 이뤄진 상황으로 관련법 통과에 무게중심이 쏠리고 있다.

    이날의 변수는 언론중재법이다. 여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해당 법안을 야당이 저지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예고한 상황이라 본회의 파행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9월 본회의에 자동 상정돼 처리될 것으로 관측된다. 의료계 내부에 긴장감은 여전하다.

    ◆ 본 회의 오를 ‘수술실 내 촬영 의무화’ 

    지난 23일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3일 CCTV설치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안규백, 신현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보완해 복지위 의결안이 만들어졌다. 

    이후 25일 새벽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지만, 국회 본회의는 부의된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법안은 상정될 수 없다는 국회법에 따라 연기됐다. 30일이 결전의 날이 된 이유다. 

    CCTV설치법은 환자 요청이 있으면 의무적으로 촬영을 해야 하며, 열람은 수사·재판과 관련해 공공기관 요청이 있거나 환자와 의료인이 모두 동의했을 때 할 수 있다. 

    촬영할 땐 녹음 기능은 사용할 수 없지만, 환자나 의료진 모두의 동의가 있으면 녹음을 가능하게 했다. 법안 공포 뒤 시행까지 유예기간은 이례적으로 2년을 두기로 했다.

    수술이 지체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해지는 등의 응급수술이나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위험도가 높은 수술을 시행하는 경우 등 정당한 사유가 있으면 의료진이 촬영을 거부할 수 있게 예외조항을 뒀다.

    ◆ 외과계, 소극적 수술로 전환… ‘생존율 감소·쏠림현상 가속’ 

    이해당사자인 의료계와의 합의가 없었던 것이 CCTV 설치법이 가진 한계로 지적된다. 일부 독소조항은 빠졌다고 하지만 외과계 의사들의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대한신경외과학회, 대한외과학회,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비뇨의학회는 최근 공동성명서를 내고 “진정 세계 최초로 대한민국 외과계 의사들의 손목을 묶길 원하느냐”며 법안 철회를 주장했다. 

    이들은 일부 수술 과정에 대한 의혹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해 이 법안이 발의될 수밖에 없게 한 점에 대해 깊은 사과를 표명했지만, 이를 전체로 확대해 적용하는 것은 ‘방어적 수술’로의 변화가 이뤄지는 부작용이 발생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5개 학회는 “수술 과정을 CCTV 녹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향후 의료분쟁이 발생하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것”이라며 “이는 외과 의사가 소극적이고 문제가 없을 만큼만 수술을 진행하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례로 악성 암환자의 경우 환자가 후유증이 남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절제를 하는 것이 암의 완치율과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이 녹화되고 증거로 사용되면 안전하게 남기고 나가려는 경향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로 인해 암환자들의 재발률과 사망률이 증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응급수술이나 고위험수술은 기피하게 되어 상급병원으로 환자 쏠림이 심해지며 적절 한 시기에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도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흉부외과의 심혈관 수술이나 뇌혈관 수술의 경우, 예기치 못한 혈관 손상이 발생을 할 수 있다. 이러한 불가피한 상황 발생 가능성에 대한 동의 하에 수술을 진행하는 것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외과계 의사 환자 관계다. 

    그러나 수술 전 위험성에 동의한 수술 과정이 동영상으로 남겨져 검증의 수단으로 사용되면 고위험수술은 포기하는 병원이 많아지고 환자들은 상급종합병원로 보내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경우, 가뜩이나 심각한 쏠림현상이 가속화돼 상급종합병원에서는 고위험수술 누적이 심해져 수술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지적이다. 

    또 5개 학회는 “해당 법안은 환자의 신체가 녹화됨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2차적 피해에 대한 대안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뇨의학과 수술, 산부인과 수술, 대장, 유방 수술 등에서 환자의 민감한 신체부위는 수술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을 CCTV로 녹화하고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의 일탈 또는 해킹 등으로 유출되는 등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 지금도 부족한 외과계, 미래세대 전멸  

    젊은 의사들이 노동량 대비 보상이 부족한 외과계를 기피하는 경향은 국내 의료계가 풀어야 할 고질적 문제로 자리 잡았다. 소위 ‘기피과’로 전락한 현실 속에서 CCTV설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극심한 인력난에 시달리게 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흉부외과계 고위 관계자는 “힘든 수련 과정과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전문성과 노동량에 비해 보상은 별로 없고 수술로 인한 분쟁이 늘어나 신규 흉부외과 의사보다 은퇴하는 의사가 더 많아 그 수가 점차 줄고 있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여기에 수술실을 CCTV로 녹화까지 하겠다는 것은 잠재적인 의료 분쟁의 당사자가 될 가능성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앞으로 의사들은 외과계를 더욱 기피하게 될 것이고 전국에 외과계 의사가 부족해 수술을 못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내 수술 성공률은 세계 최고의 수준임이 입증되고 있는데 CCTV설치법이 발목을 잡게 될 것이라는 비판적 의견이 우세하다. 

    의료계 관계자는 “극히 일부 외과계 의사들의 잘못된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수술이 꼭 필요한 대다수 국민들의 생명에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의사들 스스로 자정 노력과 함께 극히 일부 의사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다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 대한의사협회, 대한병원협회, 대한의학회 등 의료계 대표 단체들은 본회의 부결을 위해 국회 정문 앞에서 CCTV설치법 반대 기자회견을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