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비 26.3%→40% 감축… 政 "매우 도전적·정책의지 반영"연평균 감축률 4.17%… 英 2.81%·美 2.81%·EU 1.98% 수준석탄발전 축소·신재생에너지 확대 박차… 천문학적 설비투자 필요전문가 "제조업 근간 韓경제 위협" vs "기업 요구에 소극적 목표"
  • ▲ 석탄 이용.ⓒ연합뉴스
    ▲ 석탄 이용.ⓒ연합뉴스
    정부가 오는 2050년 탄소 배출이 없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기존 26.3%에서 40%로 대폭 상향하기로 했다. NDC는 기후변화 파리협정에 따라 각국이 스스로 목표를 정해 국제 사회에 발표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전문가 의견은 엇갈린다. 정부의 무리한 탄소중립 가속이 경제 근간을 흔들 수 있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견해와 선진국 반열에 든 만큼 '기후 악당'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게 목표치를 더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국무조정실과 기획재정부 등 정부 관계부처와 대통령 직속 2050 탄소중립위원회는 8일 탄소중립위원회 대회의실에서 2030 NDC 온라인 토론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는 정부의 NDC 상향안에 대해 각계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것으로 산업계·노동계·시민사회·청년·교육계와 관계부처,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참여한다. 정부는 오는 18일 탄소중립위원회 전체회의에서 NDC 상향안을 심의·의결한 뒤 국무회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한국은 다음 달 열리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NDC를 발표하고, 12월 중 UN에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 수정안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이뤘던 2018년을 기준으로 2030년까지 배출량을 40% 줄인다는 목표다. 기존 감축목표인 26.3%보다 13.7%포인트(P)나 높다. 정부는 그동안 국내외 감축 비율 조정 등 부분적으로 NDC를 수정해왔으나 대대적인 목표 상향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2015년 6월 처음으로 2030 NDC를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로 수립했다. BAU는 인위적인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없을 때 2030년에 배출할 온실가스 배출량을 말한다. BAU는 경제 상황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커 선진국들은 추후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하는 데 있어 BAU 대신 절대량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9년 12월 NDC를 BAU에서 절대치로 변경했다. 2017년 배출량을 기준으로 24.4%를 감축하기로 수정했다. 다만 기준만 달라졌을 뿐 총배출량은 5억3600만t으로 같아 비판이 제기돼왔다.

    정부는 이번 NDC 상향안은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 입법 취지와 국제 동향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법에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8년 대비 35% 이상 감축돼야 하며 정부는 정책역량을 총동원해 40% 이상 감축할 수 있게 적극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정부안의 연평균 감축률은 4.17%로, 영국 2.81%, 미국 2.81%, EU(유럽연합) 1.98%보다 높다. 정부는 40% 감축목표가 매우 도전적이지만, 정부의 강력한 정책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태도다.

    정부는 산업·건물·수송·농축수산 등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모든 부문에서 감축 노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부문별 감축량을 산정했다. 먼저 온실가스 배출 비중이 가장 높은 전환·산업 부문은 석탄발전 축소,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술 개발·혁신을 통한 에너지 효율화, 연료·원료 전환 등의 감축 수단을 우선 적용했다.

    건물 부문은 에너지 효율 향상과 청정에너지 이용확대, 수송 부문은 무공해차 보급과 교통 수요관리 강화, 농·축·수산 부문은 저탄소 농수산업 확대, 폐기물 부문은 폐기물 감량·재활용 확대, 바이오 플라스틱 대체 등을 적용하기로 했다.

    아울러 온실가스 흡수·제거량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산림의 지속가능성 증진, 도시 숲, 연안습지·갯벌 등 신규 탄소흡수원 확보,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CCUS) 확산 등을 들었다.
  • ▲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국무조정실
    ▲ 온실가스 감축목표 상향안.ⓒ국무조정실
    ◇설비 투자에 천문학적 비용 소요… "경제 근간 흔들릴 수도"

    정부가 스스로 평가하기에도 도전적인 감축 목표를 제시하면서 관건은 천문학적인 탄소중립 비용을 어떻게 마련하고 누가 부담하느냐에 달렸다.

    문제는 정부가 탄소중립에 필요한 비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탄소중립위는 재생에너지의 경우 비중을 61.9%까지 늘리면 에너지저장장치(ESS) 구축에만 최대 1248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산업계에선 자체적으로 부문별 탄소중립 비용을 추산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3개 업종에서만 비용이 최소 400조원이 들 것으로 추산한다. 한국석유화학협회는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27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철강업계는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 철을 만들 때 수소를 환원제로 사용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신기술(수소환원제철법)을 적용하는 데만 109조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한다.

    신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막대한 비용이 든다. 한국수력원자력 분석에 따르면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려면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설비 투자비 등으로 1394조원이 소요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재계는 패닉에 빠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탄소배출권거래제 참여기업 364개사를 대상으로 대응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배출권거래제 3차 계획기간(2021~2025년)에 '온실가스 감축투자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36.3%에 불과했다. 투자계획을 세우지 못하는 이유로는 59.1%의 기업이 '감축투자를 위한 아이템 부족'을 꼽았다.
  • ▲ 탈원전 정책 비판.ⓒ연합뉴스
    ▲ 탈원전 정책 비판.ⓒ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정부의 목표치 상향에 대해 여러 의미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적잖다. 먼저 정부의 무리한 감축목표 상향이 제조업 기반의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줄 거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가 세계 5위의 제조업 기반 국가인데 탄소중립을 강조하다 보면 기업의 에너지가격 부담이 커져 경쟁력이 떨어진다. 한국 경제의 근간을 흔들릴 수도 있다"면서 "탄소중립의 방향은 옳지만, 너무 과도하게 속도를 내는 것은 문제다. 다른 선진국들의 감축목표를 참작해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필리핀 제조업이 무너진 게 전기가 부족했기 때문으로 안정적인 전기공급은 산업에 있어 중요하다"면서 "전기나 재생에너지는 에너지를 저장할 설비가 필수적인데 ESS 구축에 10년간 1200조원 이상이 투입돼야 하는 상황이어서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이 적잖다"고 부연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강조하면서 탈원전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장은 "정부의 감축목표는 경제, 산업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치 않은, 시민사회단체의 대책 없는 선언 수준에 불과하다"고 평가 절하했다. 주 교수는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이려면 운영허가 종료 대상인 원자력발전의 계속 운전이 필요하다. 원전을 활용해야 5000만t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부작용은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일각에선 반대로 정부의 목표치가 낮아서 문제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다고 말하는 데 (그러려면) 기업들 요구를 들어주느라 소극적인 목표치를 내놓은 것 같다"면서 "우리나라가 국제무대에서 '기후 악당'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을 고려하면 감축목표가 50%는 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은행 등 일각에서 탄소중립 추진이 경제성장률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거라는 견해에 대해 "너무 보수적, 비관적으로 경제성장을 바라보며 과도하게 표현한 것 같다"면서 "앞으로 첨단산업화가 가속하고 각종 규제 등이 완화하면 우리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에 여력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제적 분위기 등을 고려할 때 불가피한 측면이 없잖다"면서 "다만 에너지원 조달방법이나 산업계의 추가적인 부담을 어떻게 완화할지에 대한 고민을 같이해야 한다"고 했다. 성 교수는 "정부가 목표치를 올려잡았으니 기업들은 알아서 따르라고 하기엔 산업 전반에 미칠 타격이 크다"며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