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충분히 확보하라" 구두지시'충당금 적립률 상향 정책' 먼저 나와야결산 앞둔 은행들 답답… "5조 정도 필요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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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여파로 주택 거래량과 매매가가 급감하면서 과다 대출자의 채무불이행과 미분양 증가 등 금융권 부실우려가 커지고 있다.오는 3월 자영업자에 대한 코로나 금융지원도 종료 가능성이 커 리스크 관리를 위한 대손충당금 확대가 시급한 은행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그러나 문제 해결 카드를 쥔 금융당국은 은행권에 “잠재위험 대비를 위한 충당금을 충분히 확보하라”는 구두 시그널만 내비칠 뿐 뒷짐을 지고 있어 은행들이 제때 충당금을 쌓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현실화하는 분위기다.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고승범 금융위원장이 은행들의 대손충당금 확대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관련 정책 추진이나 지도는 감감무소식이다.고 위원장은 지난 13일 경제·금융전문가 간담회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져 (은행들이) 대손충당금을 위기대응 여력이 있을 정도까지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19일 열린 ‘소상공인 부채리스크 점검 간담회’에서도 “금융회사들이 자영업자 대출 부실 등에 따른 부정적 충격 발생 가능성을 감안해 대손충당금 등 손실 흡수 능력을 충분히 확충해 줄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다”고 말했다.대손충당금은 미래에 발생할 손실에 대비해 미리 쌓아두는 돈을 말한다.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르면 은행은 대출채권의 부실 위험을 5단계(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로 나눠 유형별로 일정 비율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3개월 이상 연체한 대출 가운데 회수 가능성이 있는 ‘고정’은 대출액의 20% 이상, 돈 떼일 우려가 큰 ‘회수의문’은 50% 이상, 회수가 불가능한 ‘추정손실’은 100%를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오는 3월 코로나19 금융지원이 종료되고, 기준금리 인상과 집값 하향세가 이어지면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장만한 이들 중 채무불이행이 생겨 가계와 은행의 동반 부실화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당국이 은행들에게 충당금 확대를 요청한 이유이기도 하다.그러나 19개 국내은행의 대손충당금 적립금 잔액은 지난해 9월말 18조6436억원으로 2020년 말 19조3526억원 대비 3.7%(-7090억원) 감소했다.지난해 코로나19 금융지원에 따라 연체율이 줄었다는 명분으로 은행들이 대손충당금 적립규모와 적립률을 줄여온 탓이다. 정상채권으로 둔갑한 부실채권을 계속 끌고가는 셈이다.문제는 금융당국이 금융사 스스로 충당금을 늘리라고 당부할 뿐 정작 필요한 ‘충당금 적립률 상향 정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금융권 안팎에서는 국내 은행들의 대출구조가 이자만 내는 비중이 높은 만기연장 중심이고, 전세자금대출과 중도금대출 등 정부 보증대출 비중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출채권 대비 충당금 적립률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일각에서는 은행권이 한분기 순이익(약 5조원) 정도를 충당금으로 추가 적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게다가 은행권의 2021년도 회계 결산에 충당금 추가 적립을 적용하려면 늦어도 이번주에는 금융당국의 추가적립 기준이 나와야 한다.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은행들이 2021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충당금을 적립하면 전년도 실적이 시장의 예상을 크게 밑돌 수 있으나 잠재적 불확실성 해소와 올해 충당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충격은 일시적일 것”이라며 “그러나 작년 회계 결산에 이를 적용하기가 시기적으로 촉박해 충당금 적립이 올해 상반기로 미뤄질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그는 “충분한 충당금 적립을 위해서는 은행권의 한분기 순이익(약 5조원) 정도를 충당금으로 추가 적립해야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금융당국의 충당금 적립 기준의 구조적 변경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말했다.그러면서 “충당금 적립률 상향은 은행의 위험 계수를 높여 대출금리를 높일 수 있어 은행 순이자마진에 긍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