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 물가↑, 임금↑, 경기↓, 성장↓"고인플레속 물가-임금 상호작용 더 크다""기대 인플레 낮추려면 통화정책 일관되게"
  • "지금 선제 대응하지 않으면 더 큰 피해가 올 수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13일 사상 첫 기준금리를 0.50%p 인상하는 빅스텝을 단행한 뒤 이같이 밝혔다. 이 총재가 밝힌 '더 큰 피해'는 단순히 고물가의 장기화가 아니다. 높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지 않으면 한국경제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음'이었다. 

    고인플레이션 속 물가상승이 임금인상을 끌어 올린다는 상관관계를 입증한 한국은행의 연구결과가 나왔다. 특히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돼 고물가가 고착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경제 전반의 경기 하락과 성장 저하까지 피할 수 없게 된다. 

    25일 한은 물가동향팀이 내놓은 '우리나라 물가-임금 관계 점검'에 따르면 과거 고인플레이션 속 물가가 오르면 1년의 시차를 두고 임금도 큰 폭으로 올랐다. 

    이러한 경향은 전체 소비자물가보다는 인건비 비중이 높은 개인서비스물가에 보다 뚜렷하게 반영됐다. 

    소비자물가와 임금 간 인과관계도 서로 간의 예측력을 지닌 것으로 분석됐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임금이 오르고 실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패턴을 보였다. 

    보고서는 "기대인플레이션 상승→임금 상승→ 실제 인플레이션 상승→기대인플레이션 상승 경로가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작동하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밝혔다. 

    충격반응분석 결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p 오를 경우, 임금 상승률이 4분기 이후부터 0.3~0.4%p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임금 상승률이 1%p 오르는 충격에 대해 개인서비스물가는 4~6분기 이후 0.2%p 오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이러한 조사는 고인플레 국면에서 더 긴밀한 상호작용을 보였다. 현재와 같이 물가 오름세가 높고 기대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시기에 기업들이 원가 상승 요인을 가격에 전가하는 정도가 커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또 물가 상승국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가격 인상 품목 비중도 커지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보고서는 "최근과 같이 물가 오름세가 크게 높아진 상황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와 임금 간 상호작용이 강화돼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면서 "이를 선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통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의 확산을 억제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어느 때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 향후 1년 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예측한 기대인플레이션률은 지난달 3.9%로 한달 새 0.6%p나 올랐다. 상승폭은 지난 2008년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높았다. 

    이 총재 역시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손실을 보상하기 위해 각 경제주체가 서로 가격과 임금을 올리는 상황이 반복되면 고물가가 고착돼 모두 피해를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인플레를 차단하지 않으면 물가 안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결국 우리경제에 악재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한은이 전례없이 빅스텝을 단행한 것도, 통화정책방향회의서 세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린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물가를 최우선에 두고 금리를 인상했으나 기대 인플레이션이 꺾이지 않은다면 정책효과는 거두지도 못한 채 실물 경기 타격만 이어지게 된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커져 소비와 투자가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역시 기준금리 1%p 인상에 따른 연간 경제성장률이 0.20%p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미 경기 침체 기류도 완연하다.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5월 전망치인 2.7%보다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 미국·유럽 등의 통화정책 긴축 기조 속 고물가까지 맞물려 2%대 성장도 턱걸이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7월호에서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과 물가 상승세 확데 등을 들며 두 달 연속 경기 둔화 우려 진단을 내렸다.  

    김정성 물가동향팀 차장은 "기대인플레이션은 중앙은행의 신뢰성과도 관련이 있는데 현재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은 높으나 장기 기대인플레이션은 목표수준인 2%대에 안착됐다고 보고 있다"면서 "일반 경제 주체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중요하지만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신뢰를 이끌어내는 게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