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재개발 후보지 20곳 기획설계 용역 발주도시재생, 주거환경 개선 없이 ‘앵커시설’ 조성만
  •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길.ⓒ박정환 기자
    ▲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한 골목길.ⓒ박정환 기자
    서울시 주택공급정책의 핵심인 신속통합기획(신통기획)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기존에 추진됐던 도시재생사업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빠른 재개발을 위해 도시재생사업에서 이탈하는 지역이 늘면서 향후 사업이 폐지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9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최근 1차 민간재개발 공모를 통해 선정된 21개 후보지중 20곳에 대한 현황조사 및 건축 기획설계 용역을 발주했다. 

    기획설계 용역은 정비계획 도출을 위해 설계안의 밑그림을 그리는 과정으로 신통기획사업 절차의 하나다. 서울시는 8월중 업체 선정을 마무리하고 사업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신속통합기획은 정부 주도의 공공개발과 달리 민간이 정비사업을 주도하고, 서울시는 계획수립 초기 단계부터 각종 절차를 지원한다. 

    기존 정비사업은 사업구역 지정, 건축·교통·환경영향평가 등에 약 5년이 소요되는 반면 신통기획은 이를 2년으로 단축한다. 대신 기부채납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한다. 

    서울시는 이들 21개 사업이 모두 완료되면 약 2만5000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사업 초기만 해도 기존 민간 재개발·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흥행 실패를 점치는 목소리가 많았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가라앉으면서 빠른 사업 추진의 중요성이 강조되자 다시 주목을 받게 됐다. 

    지난 5월엔 신통기획 '재개발 1호'인 강동구 천호3-2구역이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지난달에는 신통기획 '재건축 1호'인 신향빌라가 조합을 설립하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자 사업 참여 지역이 늘고 있다.

    반면 기존에 서울시 노후지역을 중심으로 추진됐던 도시재생은 사업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특히 신통기획 등 민간 주도 재개발·재건축으로의 전환을 위해 사업지 선정을 철회하는 지역이 늘면서 존폐 위기에 놓였다.

    도시재생뉴딜사업은 2015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주도한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다.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과 달리 철거나 이주없이 기존 형태를 보존한채 지역활성화를 추진하는 게 특징이다.

    하지만 골목길과 도로 확장, 기반시설 확충 등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았다.

    '전국 1호 도시재생사업지구'인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거주하는 최모 씨는 "도시재생사업을 했다는데 백남준기념관과 아기자기한 카페 몇개가 들어온 것 말고는 체감되는 변화가 없다"며 "여전히 집들은 낡았고 도로는 좁아 주민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두운 골목길을 밝게 해주고 길을 넓히는식의 실질적인 주거환경 개선보다 지원센터나 박물관 같은 앵커시설 조성에 예산의 상당부분이 투입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관련업계에서는 향후 도시재생을 철회하고 신통기획 등 다른 정비사업으로 전환하려는 지역이 더욱 늘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도시재생사업이 사업성을 고려하지 않고 원형보존에만 매달리다보니 노후 지역 주민들의 선호도가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사업지 이탈이 가속화하면 사업이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게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은형 연구위원은 "도시재생의 경우 현 시점에서 토지소유주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원활한 합의점을 도출해내기가 쉽지 않아 사업이 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