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관리 아파트 복구도 빨라…일반주택 한전 처분만 기다려야야간작업 안한다?… 심야 출동·우천 작업 대책회의 사례도 있어한전, 중대재해법에 몸사려… 야간작업 매뉴얼 공개엔 "내부자료"
  • 아파트 정전.ⓒ연합뉴스
    ▲ 아파트 정전.ⓒ연합뉴스
    정전사고는 수시로 일어난다. 낡은 변압기가 문제이든 낙뢰·폭우 등 천재지변이든 정전은 발생한다.

    지난 4일 변압기 고장으로 열대야와 싸워야 했던 서울 관악구 행운동 일대 정전사고 이전과 이후에도 사고는 있었다.

    지난 7일에는 오전 3시쯤 광주 광산구 선운지구 아파트 3개 단지에 전기 공급이 끊겨 900여세대가 불편을 겪었다. 앞선 3일에는 오전 5시20분쯤 서울 은평구 신사동 일대 아파트와 빌라 973세대에 정전 사고가 발생했다. 선운지구는 전력설비 계통, 신사동은 낙뢰로 전선이 끊긴게 정전의 원인이라고 한국전력공사는 보고 있다.

    행운동의 정전 사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들의 경우 전기가 끊긴지 1~2시간만에 복구작업이 완료됐다는 것. 또한 이들 모두 동트기전 새벽에 정전이 됐지만 복구작업이 바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복구작업 시간이 천차만별인 것에 대해 한전은 아파트와 빌라, 다세대주택 등에 대한 전기공급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아파트는 한전에서 2만2900볼트(V)의 고압전기를 공급받아 자체설비를 통해 220V로 변환시켜 각 세대에 공급한다. 이에 비해 빌라 등은 자체 설비를 거치지 않고 행운동의 다세대주택처럼 집근처 전봇대에 설치된 변압기를 거쳐 220V의 전기가 공급된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변압기 등 전력 관련 설비를 관리사무소에서 일차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정전시 복구작업이 빠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한전의 설명은 돌려 말하면 행운동 다세대주택처럼 자체 설비팀이 없는 서민 밀집 거주지는 한전에서 서둘러 작업에 착수하지 않는한 복구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저 한전이 신속하게 복구에 나서주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 지난 4일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 관악구 행운동에 변압기 고장으로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다음 날 오전 복구작업 중인 한전.ⓒ제보자
    ▲ 지난 4일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는 서울 관악구 행운동에 변압기 고장으로 정전사고가 발생했다. 다음 날 오전 복구작업 중인 한전.ⓒ제보자
    한전은 행운동 정전사고의 복구가 늦어진데 대해 올 들어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도 영향을 미쳤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경기 여주시 신축 오피스텔 인근 전봇대에서 전선 연결 작업을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김모(38)씨가 고압전류에 감전돼 숨지면서 작업자 안전이 강화됐고 시기적으로 중대재해법 시행과 맞물리면서 일몰이후에는 야간작업 등 위험한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전으로 불편을 겪었던 주민들은 한전의 이런 대응 방식에 의문을 품는다. 주민불편은 아랑곳없이 경영진의 안위만 챙기려는 보신주의라고 지적한다. 행운동 변압기의 경우 한전은 다음날 아침 현장 출동 15분여만에 복구작업을 마치고 철수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야간에 작업등을 환하게 밝히고 조심조심 작업을 했으면 적어도 1~2시간안에는 복구하지 않았겠냐는 것이다. 행운동의 경우 정전된 일대 68세대 주민은 한전이 다음날 전기를 복구할때까지 9시간 가까이 불편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정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전 발생시 주야 대응 매뉴얼에 대해 작업자의 안전을 우선하지만 정작 이런 내용이 명문화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명쾌하지 못한 해명에 정전시 복구작업 매뉴얼에 관해 물었지만, 한전은 해당 매뉴얼이 내부자료이기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며 의혹만 키웠다.

    피해 주민들은 한전이 야간작업 매뉴얼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거나 매뉴얼 자체가 없는 것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한전은 정전사고를 신고한 행운동 주민 등에게 작업자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하다 보니 야간작업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는 현장에 따라 적용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지난 4월25일 오후 11시30분쯤 발생한 대구 남구 이천·봉덕동 정전사고(820세대 정전)의 경우 당시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도 한전은 즉시 현장에 출동해 긴급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777세대에 대한 전기공급은 20여분만에 재개됐다. 이에 대해 한전은 현장에서 안전조처만 했을뿐이라고 야간작업 시행에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당시 한전은 추가적인 작업을 해야만 정전 복구가 가능한 43가구를 두고 자정이 넘은 시각까지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업자 안전과 주민 불편 최소화 사이에서 고민했다는 얘기다. 행운동 한 주민은 "(행운동은) 비가 온 것도 아닌데 현장에 출동한 직원이 아무런 설명도 없이 현장을 떠났다"며 "(한전 설명대로) 일몰 이후에는 안전문제 때문에 작업을 못 한다면 (대구 사례는) 이해가 안 간다. 비가 내리는 중에도 밤 늦게까지 대책회의를 했다는 건 야간작업 강행까지 염두에 뒀었다는 것 아니냐"고 따져물었다. 그는 "신속한 복구가 어렵다면 하다못해 무엇이 문제이고, 언제 복구가 될지 안내라도 해줬으면 그나마 예측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