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기술지원 범위 확대·무상 품질보증 등 피해구제 제안브로드컴 "삼성전자에 계약 강요한 적 없어"… 피해보상 거부과징금이 200억 상생기금보다 적지만, 제재 시 손배소에는 유리
  •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 공정거래위원회 ⓒ연합뉴스
    삼성전자에 스마트폰 부품 구매를 강요한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의 동의의결 시정방안이 기각되면서 앞으로 추이에 관심이 쏠린다. 동의의결 절차가 개시된 이후 시정방안이 기각된 것은 제도 도입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공정당국 안팎에선 삼성전자가 민사소송을 통해 피해구제에 나설 것으로 점친다. 이번 기각으로 브로드컴이 제재를 받는다면 삼성전자로선 판결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3일 브로드컴의 거래상 지위 남용 건과 관련해 최종 동의의결안을 기각했다고 밝혔다.

    브로드컴은 지난 2021년부터 3년간 자신들의 스마트기기 부품을 삼성전자가 매년 7억6000만 달러 이상 구매하고, 실제 구매금액이 이에 못미칠 경우 그 차액을 브로드컴에 배상하는 내용의 장기계약 체결을 강요한 혐의를 받는다. 브로드컴은 해당 계약을 하지 않으면 삼성전자의 주문과 관련해 승인이나 선적, 기술지원을 중단하겠다고 압박했으며 공정위가 심의에 착수하자 셀프 시정방안인 동의의결 개시 절차를 신청했었다.

    동의의결은 법을 위반한 사업자가 스스로 원상회복이나 피해구제 등의 시정방안을 제안하고 공정위가 해당 제안을 받아들이면, 법 위반 여부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신속하게 종결하는 제도다. 

    브로드컴은 공정위에 △불공정한 수단을 이용한 부품 공급계약 체결 강제 금지 △거래상대방의 의사에 반한 부품 선택권 제한 금지 △공정거래법 준법 시스템 구축 △반도체·IT 산업 분야 전문인력 양성 및 중소사업자 지원에 200억 원 기금 출연 △삼성전자 품질보증 및 기술지원 확대 등의 시정방안을 제출한 상태였다.
  • ▲ 공정위 ⓒ연합뉴스
    ▲ 공정위 ⓒ연합뉴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해당 시정방안에 대해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7일 열린 전원회의에서 브로드컴이 강요한 계약으로 4000억 원 상당의 과잉 재고를 떠안게 됐다며 직접적인 피해구제 방안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공정위도 브로드컴이 제안한 품질보증이나 기술지원 확대 등의 자진시정안이 무성의하다는 판단을 내놨다. 브로드컴은 품질보증을 1년에서 3년으로 확대한다고 했지만, 이는 유상으로 하겠다는 의미인 데다 2020년 3월 이전에 출시된 스마트폰에 탑재된 부품에 대해서만 기술지원을 하겠다는 태도다. 또한 자진시정안에는 기술지원 여부를 브로드컴이 자체적으로 판단해 이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에 공정위는 브로드컴에 기술지원 대상 범위를 넓히고 품질보증을 무상으로 전환하는 한편 삼성전자 주도로 기술지원을 받도록 하자고 제안했지만, 브로드컴은 이를 거부했다.

    공정위 설명으로는 애초 브로드컴은 동의의결 개시 신청 당시만 해도 삼성전자를 위한 추가 조치에 협의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던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도 개선의지가 있다고 판단해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했다. 하지만 브로드컴은 자진시정안 심의 과정에서 삼성전자에 계약체결 자체를 강제한 적이 없다며 피해보상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태도를 바꿨다.

    결과적으로 브로드컴의 동의의결 시정방안이 기각됨에 따라 공정위는 향후 브로드컴의 법 위반 여부, 제재 수준 등을 결정하기 위한 심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할 방침이다. 하지만 거래상 지위남용에 대한 과징금 수준이 브로드컴이 제시한 200억 원의 상생기금 출연 규모보다도 낮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브로드컴도 이를 알고 태도를 바꾼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정위의 제재는 시정조치 명령이나 과징금 부과 정도다. 과징금을 최대한으로 부과해도 200억 원을 넘을 수 없다"며 "직접적인 피해보상은 삼성전자에서 알아서 받아야 한다. 공정위가 브로드컴이 지위남용을 했다고 판단하면 삼성전자가 민사소송 등을 통해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도 공정위가 브로드컴의 시정방안을 인용했더라도 삼성전자가 브로드컴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민사소송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동안 삼성전자가 4000억 원대 피해를 봤다며 소송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겠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브로드컴의 시정안을 기각하고 법 위반 여부를 심의하는 절차에 돌입한 만큼, 삼성전자로선 민사소송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브로드컴은 앞으로 있을 심의에서 법 위반 혐의를 적극 부인할 것으로 보인다.

    브로드컴은 공정위의 기각 발표 이후 공식입장문을 내고 "공정위가 양측이 합의한 동의명령(자진시정안)을 승인하지 않기로 한 결정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자사의 혐의에 대해 적극적으로 변호할 것이고, 자사의 입장이 관철될 것을 확언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