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전진법' 사실상 강제해약준비금 덜 쌓은 삼성·메리츠화재만 유리금감원 "가이드라인 의미 잘 헤아려라"계리사 "과도한 보수적 가정은 준비금 줄여 배당 높이는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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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현재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험사 회계 방법은 IFRS17이다. 우리나라도 회계정보의 유용성과 재무정보 비교 기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0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올해 IFRS17을 처음 도입했다. IFRS17의 핵심은 원칙중심을 기반으로 사업비·해지율 등을 포함한 계리적 가정에 대한 자율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험사의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섰다. 원칙을 깨고 자율권을 무시한 것은 차치하고 특정회사 편들기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험사들간 이전투구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이 왜 논란이 되는지, 보험사들의 입장은 타당한지 등을 점검해봤다.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보험업계가 대혼란에 빠져있다. 

    당국이 권고한 가이드라인을 따를 경우 대부분의 손보사는 수천억원씩의 계약서비스마진(CSM)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감원이 제시한 전진법과 대다수 보험사가 선호하는 소급법 간의 회계추정치 간극이 너무 벌어져 있는 상태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K-IFRS 제1008호에 의거 회계 추정치의 변경일 경우 회계처리는 전진법 적용이 원칙이다. 회계상 변경 효과를 당해년도 및 그 이후 기간의 손익으로 전액 인식하는 게 골자다.

    반면 보험사들은 새롭게 제시한 가이드라인이 사실상 회계 정책이 바뀐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경우 회계처리는 소급 적용하는데 회계상 변경 효과를 과거 재무제표에 반영하는 게 핵심이다.

    금감원은 보험사들이 회계법인과 논의를 거쳐 적용 방식을 자율적으로 선택하라는 입장이지만 가이드라인이 갖는 의미가 정책이 아닌 회계 추정치의 변경이라는 입장만큼은 완강하다. 결국 전진법 적용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전진법을 적용하면 가이드라인과 유사하게 보수적 가정을 적용한 회사들만 유리한 구조라는 점이다. 보수적 가정을 사용한 보험사는 이익잉여금 내 법정 준비금으로 쌓아야 하는 '해약환급금준비금(이하 해약준비금)'을 미리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신설된 해약준비금은 IFRS17 도입에 따라 시가평가로 전환된 보험부채가 감소하면서 실제 해약환급금이 모자를 것에 대비해 만든 제도다. 회계변동 과정에서 적정 수준의 준비금을 쌓지 않아 이익잉여금이 유출되는 상황을 막자는 의도다.

    미리 손해율 가정을 보수적으로 적용한 보험사일수록 해약준비금서 차감 항목인 시가평가 보험부채의 규모가 늘어나 해약준비금을 덜 쌓아도 된다. 늘어난 보험부채는 향후 CSM에 반영돼 이익으로 돌아오고 자본 성격의 해약준비금을 미리 줄여 자본효율성(ROE)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전진법을 사용할 경우 회계상 변경 효과를 한번에 다음 실적에 반영해야 하기 때문에 CSM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자본건전성을 위해 해약준비금을 많이 쌓은 일부 보험사가 피해를 본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보험사 계리사는 "과도하게 보수적인 가정은 자본 내 해약준비금을 임의로 줄여 배당과 ROE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면서 "전진법은 충실히 해약준비금을 쌓은 보험사만 손해를 보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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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회계 변경이 불가피한 손해보험사의 경우 해약준비금 격차가 크게 발생했다. 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1분기 상위 7개 손보사의 해약준비금을 분석한 결과, 현대해상이 4조3916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KB손해보험이 2조3661억원을 해약준비금으로 쌓았다.

    다음으로 DB손보(2조1076억원), 한화손보(1조5704억원), 메리츠화재(3497억원), 롯데손보(3794억원), 삼성화재(2591억원) 등의 순이었다.

    오히려 자본총계가 가장 많은 삼성화재가 가장 적은 해약준비금을 쌓아 자본 내 비중이 2.0%에 불과했다. 메리츠화재(9.3%) 등도 비교적 낮은 비중이었다.

    삼성화재와 메리츠화재는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보수적 가정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보험사는 전진법을 적용하면 CSM 손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예실차 이익도 경쟁사 대비 크게 가져갈 수 있다. 실제 발생할 보험금 지급이 예상보다 적기 때문이다.

    반면 해약준비금을 많이 쌓은 보험사들은 소급법을 통해 과거 회계기준을 바꿔 해약준비금을 줄이는 게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올 1분기 실적발표에서 회사별로 해약준비금 규모와 예실차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면서 "이는 CSM과 ROE, 배당가능이익 확보 등 보험사별 전략적 선택이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