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집중호우에 농지 1.9만㏊ 피해·가축 56만 마리 폐사14일 청상추 4㎏ 도매가 91.4%↑·시금치 180.6%↑·깻잎 14%↑서울시내버스 300원·지하철 150원 인상 예정…政 물가안정노력 퇴색기준금리 4연속 동결 등 경기반등 기대에도 회복속도 둔화 우려
-
전국을 강타한 폭우로 인명피해는 물론 농경지 피해가 겉잡을 수없이 확산하면서 채소류와 과일류, 축산물까지 밥상물가가 들썩이고 있다. 이에 따라 하반기 경기부양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하려던 정부 계획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기대했던 'U자형' 경기반등이 더 완만하게 상승하는 '나이키형'으로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 10일부터 16일 오전 10시까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1만9927헥타르(㏊)의 농지가 피해를 당했다. 가축 56만1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조사됐다.가장 많은 피해를 본 것은 벼 농작지다. 1만3569㏊가 침수됐다. 콩 4662㏊, 수박 327㏊, 멜론 259㏊ 등이 물에 잠겼다. 가축은 닭 52만2000마리, 오리 4만3000마리, 돼지 4000마리, 소 2000마리 등이 폐사했다.문제는 피해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기상청은 오는 18일까지 충청과 경북 북부에 최대 250밀리미터(㎜) 집중호우가 쏟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농식품부는 농작지 등 피해면적이 수만㏊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이미 채소류 등의 가격은 계속된 장마과 불볕더위로 오름세를 보인다.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농산물유통정보(KAMIS)를 보면 14일 기준 청상추 4킬로그램(㎏)의 도매가격은 평균 3만6920원으로 1개월 전보다 91.4% 올랐다. 시금치는 4만5620원으로 180.6%나 상승했고 배추 25.7%, 얼갈이배추 54.7%, 깻잎 14%가 각각 올랐다.기상청은 이번 주에도 장마전선이 남북을 오가며 곳에 따라 호우를 쏟아붓겠다고 예보했다. 장마가 끝나면 채소류와 과일류, 축산물 등 먹거리 물가가 본격적으로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
먹거리 물가 불안은 경제당국을 곤혹스럽게 할 전망이다. 정부로선 하루라도 빨리 물가안정 기조를 확고히 하고 경기부양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해야 하지만, 집중호우와 서울시 등의 교통요금 인상 등으로 스텝이 꼬이게 생겼다.'관제 물가'라는 비판에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부터 공개적으로 라면가격 인하를 압박하고, 농식품부가 제분업계와 사료업계, 유업계 등을 차례로 만나 가격 인하나 동결을 요청한 것은 먹거리 물가를 시급히 안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7%를 기록했지만, 라면은 13.4%, 빵과 스낵과자는 각각 11.5%, 10.5% 오르는 등 가공식품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정부로선 국민생활과 밀접한 가공식품 물가를 빨리 진정시켜야만 다음 스텝인 경기부양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6월 물가가 21개월 만에 처음으로 2%대를 기록한 것과 관련해 시장의 기대도 큰 편이다. 반도체 수출 부진이 느리지만, 회복 중인 데다 중국 리오프닝(경제활동) 효과와 맞물리면 경기가 반등할 일만 남았다는 긍정적인 지표들이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개발연구원(KDI)은 지난 9일 내놓은 최근 경제동향에서 "우리 경제가 저점을 지나가고 있다"고 진단했고, 기재부도 지난 14일 경제동향에서 "경제의 하방 위험이 완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최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3.5%로 4연속 동결한 것도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금융권에선 이르면 연내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역대급 폭우와 공공요금발 물가 상승 요인이 경기회복 속도를 더욱 둔화시킬 거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교통요금의 경우 서울시는 다음 달 12일부터 시내버스 기본요금을 300원 올리기로 했다. 지하철도 10월7일부터 150원을 올린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이미 요금을 올린 상태다.
일부 전문가는 하반기 경기부양이 말처럼 쉽잖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경기부양의 전제는 물가가 안정돼야 한다"면서 "6~7월 물가는 지난해 기저효과로 떨어진 뒤 8월부터 다시 오를 수 있다. 조금 나아지긴 하겠으나 아직 물가가 안정된다는 확신은 없다"고 말했다. 정 실장은 "물가 잡기 목표 달성은 올해는 어려워 보인다"면서 "(수치상으로) 고용이 (지난해 말 전망보다) 나쁘지 않고, 내수도 그렇다.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해야만 하는지 의문"이라고 진단했다.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 14일 "기술적으로 인플레이션이 충분히 내려갈지 확신이 없다"면서 "(금리인하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